'강제동원 피해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8.06 [김민아 칼럼]유코, 넌 ‘아베의 일본’과 다르지?
  2. 2018.11.01 [여적]지연된 정의

유코!

오랜만에 불러본다. 22년 전 런던에서 만났을 때를 기억하니? 영어 실력이 뛰어나던 너는 사려 깊고 다정했지. 귀국 후 연락이 끊겼지만 늘 고마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너를 다시 떠올린 건 한·일관계 때문이야. 최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며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한국 정부도 상응 조치를 취하고, 시민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어. 아마도 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일본 시민은 지금 한국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잘 알지 못할 거야. 1965년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며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 문제는 마무리된 것 아닌가, 왜 뒤늦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가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한국 어르신의 삶에 대해 들려줄까 해.

신천수님은 17세이던 1943년 일본제철의 오사카제철소 노무자로 가게 돼. 돈도 벌고 기술도 배우리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달랐어. “기숙사 창에는 쇠창살이 끼워져 있고, 문에는 망보는 사람이 있었다.”(신천수님 진술서) 일본제철은 임금도 주지 않고 강제 저축을 시켰어. 통장과 도장은 사감이 보관했지. 일은 위험하고, 식사는 보잘것없고, 송금도 할 수 없으니 도망치고 싶어했다. 그런데 동료에게 ‘도망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것 같은” 폭행을 당하고 만다. 사실상 노예의 삶이었지.

1945년 해방 후 귀국한 신천수님은 1997년에야 다른 피해자 여운택님과 함께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게 돼.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패소했지. 신천수·여운택님과 다른 피해자 2명은 2005년 같은 취지의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어. 1·2심은 일본 법원과 같았으나, 2012년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며 원심을 파기하지. 2013년 서울고법이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지만 피고 기업이 불복하며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가게 돼. 일본 눈치를 본 박근혜 정권과 당시 대법원이 야합하는 바람에 재상고심은 5년이나 지연된다. 지난해 10월 현 대법원이 원고 4인의 승소를 확정하지만, 신천수님 등 세 분은 세상을 떠난 뒤였어.

일제 강제징용 생존 피해자 이춘식씨가 10월30일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대법원 청사로 향하고 있다. 소송은 13년 만에 피해자 승소로 확정됐다. 이준헌 기자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돌입했어. 이달 2일에는 전면적 화이트리스트 배제까지 강행했다. 입법·행정·사법권이 분립된 한국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정경분리 원칙을 외면한 행태이지.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징용공’(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명확하다”고 했어.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 우익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도 일괄 해결됐다’며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달라. 1991년 야나이 슌지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은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지난해 11월 고노 다로 현 외무상도 이를 인정했어. 약속을 어긴 쪽은 어딜까.

한국 시민의 'NO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신주쿠(新宿) 아루타 마에에서 반(反) 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옛 피식민국가 시민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는 일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역사와 정직하게 대면하고,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일은 품격 있는 결단이지. 독일은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을 수도 베를린에 세우고 거듭 반성함으로써 존경받는 국가가 되지 않았니. 난 ‘아베의 일본’을 거부하는 ‘다른 일본’에 희망을 걸어보려 해. 지난 4일 도쿄에서 한국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저명한 지식인들이 대한국 수출규제 철회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철지바동력차 노동조합도 아베 정권의 행태를 “폭거”라고 비판했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중단되자 일본 문화·언론계에서 분노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아직 소수이겠으나 이분들의 한마디, 한 걸음이 변화와 연대의 시작이 되리라 믿어.

보편적 인권을 부인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뜨리는 ‘아베의 일본’에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들의 망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생각이야. 가쓰시카 호쿠사이(19세기 우키요에 대가)와 구사마 야요이(현대미술가)의 미감(美感)을 사랑하지만, 도쿄에는 가지 않으려 해. 다만 약속할게. 혹여 한국인 누군가가 무고한 일본 시민을 혐오하거나 모욕한다면 강력히 비판할 거다. 폭력적·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 아래서만 승리할 수 있으니까. 아베의 방식으로는 아베를 극복할 수 없으니까.

언젠가 우리 함께 서울 북촌과 도쿄 우에노공원을 거닐 수 있기를 바란다. 너와 내가, 또 다른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정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그런 날이 곧 오리라 믿어. 그때까지 강건하기를.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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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지체된 정의는 정의에 대해 거부하는 것과 같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부정된 것이다.”(마틴 루서 킹 <버밍햄 감옥에서의 편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꺼내기도 무참하리만큼 참으로 너무 ‘오래’ 걸렸다. 청춘의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몸과 마음이 병든 채 해방 조국에 귀국한 이래 일흔세 해가 흘렀다. 일본에서의 법정 싸움까지 포함하면 소송 제기 21년, 국내 소송 기간만 따져도 13년이 걸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제야 나왔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늦어도 너무 늦었기에 소송을 낸 강제동원 피해자 4명 중 3명(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은 ‘제사상 판결문’으로 받아보게 됐다. 이춘식 할아버지(94) 홀로 승소가 확정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할아버지는 강제징용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오랫동안 힘든 법정 싸움을 벌여온 이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이날에야 알았다. “같이 이렇게 살아서 봤더라면 마음이 안 아플 텐데, 나 혼자라서 눈물 나고 슬프다.” 할아버지의 오열이 ‘지연된 정의’의 책임을 아프게 묻고 있다.

사실 몇 해만 앞서 재판이 이뤄졌어도, “한이 됐던 피멍울을 안은 채” 징한 세상을 하직하는 참혹은 막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 천금 같은 ‘몇 해’를 지연시킨 것이 박근혜 정권의 무도한 국가폭력이다.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 자리를 맞바꿔 거래 대상으로 삼는 바람에 대법원 판결이 지체되었다는 야만이 드러나고 있다.

대법원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무려 5년을 흘려보낸 동안 20여년을 힘들게 싸워온 피해자 할아버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2012년 대법원 판결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신고건수는 15만건에 달했다. 이들 소송 당사자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신규 소송은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없다면 정의가 세워진들 무엇하랴. 현재 남아 있는 10여건의 강제징용 재판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이제 지연된 정의라도 하루속히 세워야 한다. 지금도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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