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연휴에는 예년에 비해 교통사고, 화재 등 안전사고가 크게 감소했다. 예컨대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한 응급의료인의 의로운 죽음을 접해야 했다. 설 전날인 지난 4일 저녁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누적된 피로가 죽음을 부른 것이다. 윤 센터장의 명복을 빈다.

윤 센터장이 어떤 의료인이었는지는 순직 당시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숨졌다. 책상에는 응급의료 관련 서류가 쌓여있었고, 사무실 한쪽에는 남루한 간이침대가 있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다. 이곳 책임자인 윤 센터장이 설 연휴에 퇴근도 못한 채 전국의 병원 응급실과 권역의료센터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족들이 설날 귀성을 약속한 윤 센터장과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고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자원한 이후 25년간 응급의료의 외길을 걸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난 뒤에는 응급의료기관평가 사업,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해왔다. 그는 평소 “부실한 의료체계 때문에 환자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진다”며 질타했다고 한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심쿵이’라고 부르며 누구나 친근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와 함께 국내 응급의료계의 양대 버팀목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응급의료체계만 생각하는 의사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말 정신질환자를 돌보던 임세원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데 이어 응급의료에 헌신한 의료인이 또다시 세상을 떴다. 환자만을 생각하다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의료인들의 잇단 순직은 척박한 의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윤 센터장은 생전에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응급환자를 위해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응급의료시스템을 완성해 경각을 다투는 환자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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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전국에서 떼죽음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에서 처음 신고된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에 퍼지면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2000만마리를 넘어섰다. 며칠 전엔 2014년의 H5N8형 고병원성 AI까지 다시 나타났다. 역대 최악의 피해다.

AI 확진 판정이 나면, 반경 3㎞ 내의 닭과 오리는 모두 죽인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으려면 ‘예방적’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살처분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03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3873만마리, 한번 확진 때마다 26만마리를 죽였다. 이번에는 하루 평균 60만마리를 도살하고 있다.

가축은 살처분 후 ‘매몰’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매몰이 살처분인 경우도 많다. 포대자루에 닭이나 오리를 몇 마리씩 집어넣고 구덩이에 파묻어버린다. 생매장이다. 2010년 말의 구제역 때는 돼지 300만마리가 대부분 생매장되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이번 AI 사태를 재앙 수준으로 키운 정부의 방역대책, 특히 ‘골든타임’을 놓친 허술한 초동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엄청난 피해의 근원은 ‘공장식 축산’이다. 대규모 사육이 아니면, 살처분 규모 자체가 이토록 커질 리가 없다. 게다가 축산공장은 AI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최적지다. 일단 AI가 들어오면 방사 사육되는 닭들과 달리 밀폐된 축사에서 밀집 사육되는 닭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런데도 AI를 막겠다며,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축산공장은 그대로 둔 채 멀쩡한 닭들만 엄청나게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만 반복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2일 (출처: 경향신문DB)

공장식 축산의 근본 문제는 생명을 물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마트 진열대 위에 놓인 정갈한 포장육과 계란 같은 상품으로 가축을 접한다. 상품이 되기까지 가축이 겪는 사육 과정, 그들의 일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엄연한 생명체인 가축에 대해 ‘공장’과 ‘살처분’이란 말을 무심히 사용한다. 하지만 공장은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지, 생명을 낳고 기르는 곳이 아니다. 처분하는 것은 물건이지 생명이 아니다.

상품으로 간주되는 가축은 이윤의 극대화에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 공간에서 사육된다. 효율은 학대의 다른 말이다. 극도의 밀집 공간에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로 가축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다. 닭은 ‘깃털쪼기’와 ‘동종포식’, 돼지는 ‘꼬리물기’를 하기 때문에, 태어나면 부리와 꼬리부터 잘리는 고통을 당한다. 가축들은 자신들의 배설물에서 나온 암모니아로 꽉 찬 공기를 마시며 일생을 보내다 폐기된다. 살처분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다. 어느 쪽이든, 참혹한 과정과 결말이다.

공장식 축산은 돈과 이윤에 집착하며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축은 돈 벌려고, 먹으려고 키우는 ‘것들’이라고 치부해버리지 말자.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회는 결코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을수록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능력도 잠식된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동물의 살처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끔찍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사람과 살처분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성탄절이 눈앞이다. 이래저래 올해는 ‘기쁜 성탄!’ 인사만 건네기는 힘들게 되었다. 2000년 전도 그랬다. 당시의 권력자 헤롯 대왕은 베들레헴 인근 두 살 이하의 사내아기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비명과 통곡소리가 진동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제거해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권력에 눈먼 탐욕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오늘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을 감수하면서도 공장식 축산을 고집한다. 우리도 무엇엔가 눈이 먼 것은 아닐까.

조현철 |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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