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자기 부족에 충실하고, 어떤 부족에 속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부족끼리는 편의도 봐주고 서로 끌어줍니다. 계약도 쉽고 돈거래도 수월해집니다. 서로 참견과 잔소리도 주고받죠. 내부 위계질서도 중요합니다. 나이, 지위 등 권위가 귀할 수밖에요.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간 큰일입니다. 모난 놈이 되죠. ‘사회성’도 없는 놈이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길들였습니다. 개인으로 온전히 서기가 불안하고 그렇게 서 있는 개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일 겁니다. 게다가 판단마저 흐려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을 교환하기보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익숙하니까요. 우리 부족인지 저쪽인지, 우리 부족이면 내 밑인지 위인지 가늠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마저 달라지기도 하죠.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공무 연수 중 일행과 스트립바를 방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스트립바에 가서 옷 벗은 무희 춤을 즐겼다는 제보가 있었죠. 최 의원은 술집에 갔지만, 계산은 사비로 했다고 맞받았습니다. 공무 수행과 사적 행위의 구분은 따져볼 만합니다. 세금으로 묵은 호텔에서 사비로 술 마시는 것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술 문화 비교도 해볼 만합니다. 노래방 도우미랑 어깨동무하는 것과 옷 벗은 무희를 쳐다보기만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 노동의 소비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지만 치열하고 건전한 토론 대신 논의는 부족 따지기로 전락했습니다. 최 의원은 제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저쪽 부족이니 믿을 말이 아니라고 말이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관여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습니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1995년에 만들어진 뒤 단일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적이 없어서 충격을 줬죠. 하지만 이 판결은 놀라운 기술 변화에 따른 우리 사회, 그리고 민주체제에 대한 숙제 또한 주었습니다. 누구나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오늘, 이 법을 어떻게, 얼마만큼 적용해야 하나? 댓글 위력이 얼마나 큰가?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인터넷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당장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죠. 하지만 김 지사와 지지자들은 판사가 속해있다고 추측되는 부족을 도마에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을 지냈으며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적했죠. 저쪽의 판단이니 객관적일 수 없다며 말이죠.

저쪽의 보복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비생산적입니다. 첫째, 이미 지적한 대로 생산적 논쟁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둘째, 주장의 진위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동기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지만 마음속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죠. 그러니 논쟁은 보복이다, 아니다 사이를 맴돌기만 합니다. 자기들 분노 게이지를 한껏 높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뿐이죠. 문제 해결은커녕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셋째, 치열한 논쟁 대신 부족의 깃발만 가리다 보면 스스로도 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가리기는 쉽습니다. 증거를 살피고 주장을 가다듬는 게 어렵죠. 쉬운 해결책만 좇다 보면 지성은 마비되고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미국 버지니아는 정치 추문으로 요즘 시끄럽습니다. 주지사 노덤의 대학 졸업앨범에서 백인테러집단인 KKK 복장을 한 사람과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이들 중 하나가 노덤 주지사라는 의혹과 함께요. 분노가 폭발했고 사임 요구가 거셉니다. 민주당 진영에서도 말이죠. 인종 갈등 극복은 민주당의 주요 과제이고, 그런 만큼 좌시할 수 없죠. 보수 쪽 정치 공세로 볼 만한 정황증거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들먹이는 대신 대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혹을 제기했건, 그 동기가 무엇이건 민주당 정체성을 위협할 사태임을 직감한 탓이죠.

우리 편 잘못에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부족 마인드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큰 관심 없어. 우리는 이 정도로 퇴화한 부족이야. 우리는 그 정도 잘못은 잘못으로 보지 않아. 고백을 들었으니 선택을 해야겠죠. 부족 멤버십에 흡족하며 같이 퇴화할 것인가. 성찰하며 앞으로 나갈 것인가.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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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30일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댓글조작을 수동적으로 보고받은 데서 나아가 작업할 기사 목록 등을 주고받으며 지배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드루킹 일당도 줄줄이 유죄가 인정됐다. 아직 1심 판결이지만 댓글조작 공모 혐의가 사실이라고 법원은 본 것이다. 선고 뒤 김 지사는 “진실을 외면한 재판부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여권의 차기 주자로까지 꼽혔던 그의 구치소행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재판의 쟁점은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의 댓글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김 지사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김 지사가 댓글조작을 알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뿐만 아니라 6·13 지방선거 때까지 댓글조작을 계속하는 대가로 김씨가 추천한 사람을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앉히겠다고 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혐의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가 진술과 물증의 신빙성을 그만큼 높게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드루킹 사건은 민간차원에서 댓글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이나 군이 직접 나선 과거 정권 사건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여론을 조작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행위는 민관을 불문하고 중대범죄다. 김 지사의 유죄 선고로 드루킹 일당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둘러싼 의혹은 다시 불거지게 됐다.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이에 관여했거나 알았다면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자칫 당선의 정당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철저히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선고 이후 “사법신뢰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판결”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집권 여당이라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법원을 모독하기 앞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대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선 댓글조작의 ‘수혜자’로 지목된 이상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2016년 홍준표 경남지사가 1심 유죄를 받을 당시 “지사직 즉각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그 주장이 지금 김 지사에게 똑같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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