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주제에 대해 도전해 보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건설업자 윤중천은 강간치상과 사기 등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되었다. 유력 검사와 건설업자 간의 불법 커넥션, 김학의 이외 고위층 남성들의 리스트를 거머쥔 ‘윤중천 리스트’, 호화 별장과 성접대, 2013년 검찰수사와 재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 마약류를 먹인 후 성폭력을 했고 불법촬영으로 협박했다는 증언까지,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에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음험한 권력의 결탁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김학의, 윤중천의 구속 기소는 사건을 공개하고 증언한 피해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두 차례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검찰이 김씨가 여성들을 성폭행한 것이 아니라 성접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폭행·협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도리]2019년 6월 6일 (출처:경향신문DB)

첫째, 성폭력이란 폭행·협박을 사용했을 때 성립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지는 것일 때임을 입법부, 사법부, 경찰이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한 나라에서 마땅한 법의 해석이다. 최근 미투 운동은 폭행·협박이 행사되지 않은 강요된 성폭력이 만연했음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입법부는 성폭력 법제를 대대적으로 구조 개혁해야 한다. 

둘째, 성접대를 ‘한’ 사람은 피해여성이 아니라 윤씨이다. 굳이 여성을 주어로 쓰고자 하면 ‘여성이 성접대의 매개 혹은 대상’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성접대라는 용어 자체가 남성과 남성 간의 교류·결탁·형제애 등을 나타내고 여성은 철저히 소외·배제·타자(他者)가 된다. 제3자가 성접대를 ‘했다면’ 그 매개가 된 여성은 무엇을 했던 것인가. 이 사건의 피해여성이나 다른 피해여성들이 이후 어떤 대가를 받았건, 그렇지 않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야 했고, 이에 대해 거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면 그것은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일회성 성폭력보다 훨씬 더 중대한 성적 유린이자 인권 침해이다. 이것을 성접대라고 이름 붙인다면 피해여성들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어 그녀들에게 자행된 폭력·마약·불법촬영·협박 등 행위의 불법성을 따질 수 없게 된다. 법원과 검찰은 이 사건을 다시 보라. 

셋째, 이런 사건의 지독함은 그 체계적 성격에도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와 피해자(들)라는 2자관계를 상정하는 우리 형법의 성폭력 범죄와 달리 현실의 많은 성폭력은 제3자가 계획하고 조정하고 촉진하는 양상을 띤다. 김학의 사건이나 ‘버닝썬’, 장자연 사건에서처럼 말이다. 예컨대 독일형법 제177조 제2항에는 “타인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그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하거나 그로 하여금 제3자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제3자의 성적 행위를 수인하도록 만드는 자는, 범죄행위자가 타인이 반대의사를 형성하거나 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이용하는 경우, 범죄행위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수인하도록 느낄 수 있을 만한 해악으로 위협함으로써 강요한 경우”에도 처벌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독일형법의 성폭력에 대한 정의는 우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피해자는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매우 취약하여 문제된 성적 행위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그 성적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받을 해악으로 위협받는 경우 등을 상정한다. 또 제3자에게 성적 행위를 실행하게 하거나 그의 행위를 수인하도록 하는 입체적 관계를 상정한다. 이는 전시(戰時) 성폭력을 통해 본 법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윤중천과 김학의 간의 결탁, 이것이 다시 김학의와 다른 동료 검사 간의 유착관계로 확대된다면 이 성폭력의 발생과 지속, 은폐는 매우 체계적인 성질을 가진다. 

넷째, 성접대라는 표현은 적어도 법의 언어로 쓰여서는 안된다. ‘위안부’라는 표현처럼 가공할 폭력을 ‘위안’으로 덧씌우고 피해여성들의 위엄을 우롱하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국민의 인권보호에 흠결이 생길 수 있다’ 하였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 증거를 가지고도 그저 성접대쯤으로 호도함으로써 이 사건들을 남성들의 리그로 만든다면 여성국민의 인권이야말로 흠결 속에 남을 것이다. 존엄한 여성들을 기껏 교환대상으로 삼은 최근의 성폭력 사건들을 검경 수사권 문제로 몰고 가거나 이용하지 마라.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권력은 여성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니며, 여성들이 당한 피해는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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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에 대한 2013년 검경 수사가 총체적 부실·봐주기 수사였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한상대 전 검찰총장 등 전직 검찰 관계자들을 윤씨 비호세력으로 지목하고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과거사위는 29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의 최종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사위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과거 검찰 수사는 수사의 ABC도 지키지 않은 엉터리였다.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해선 계좌추적도 압수수색도 하지 않은 반면, 피해 여성들과 관련해선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해 e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하고 방대한 참고인을 소환조사했다. 과거사위 자료의 표현대로 “이율배반적 적극성”을 보인 셈이다. 과거사위는 부실수사의 원인으로 ‘박근혜 청와대’를 지목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앞서 과거사위는 지난 3월 곽상도 전 민정수석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토록 권고한 바 있다.

김용민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이 29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사건 심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과거사위 발표 중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전직 검찰총장의 이름이 포함된 ‘윤중천 리스트’다. 윤씨가 원주 별장을 중심으로 다수의 검찰 간부들과 교류한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아무런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제 식구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고 윤씨를 봐주기한 것”이라고 봤다. 한 전 총장 등 거명된 인사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고위간부들이 ‘스폰서’를 위해 사건을 부당 처리했다는 의혹은 가벼이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윤씨의 범죄 행각으로 많은 여성들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 범행의 파렴치성을 고려할 때 더욱 엄정한 수사가 절실하다.

검찰은 지난 3월 과거사위 중간발표 이후 수사단을 구성해 결국 김 전 차관을 구속했다. ‘별장 성범죄 동영상’이 공개된 지 6년 만이다. 검찰이 이런 성과를 올렸는데도 시민은 여전히 ‘셀프 수사’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제 최종 결과가 나온 만큼, 배전의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비리를 은폐하고 범죄자를 비호한 세력이 있다면 전·현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수사해야 한다. 김학의·윤중천의 뒷배를 밝히는 게 사건의 본질임을 잊어선 안된다. 이번에도 과거의 치부와 단절하지 못한다면 검찰 조직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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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 및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9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김 전 차관이 검찰에 나온 것은 2013년 11월 1차 수사 이후 5년6개월 만이다. 당시 소환조사가 비공개로 진행된 만큼 언론의 포토라인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차관은 성범죄 혐의와 관련해 두 차례 수사를 받았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세 번째 수사가 이뤄지는 사실 자체가 과거 수사의 부실을 입증한다. 

2005~2012년 건설업자 윤중천(58)씨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고, 여성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김학의(62) 전 법무부 차관이 9일 오전 ‘김학의 의혹 관련 수사단’이 있는 동부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김 전 차관이 받고 있는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거액의 금품과 골프 접대 등 향응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다. 검찰은 윤씨 조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이 ‘목동 재개발사업을 도와줄 테니 사업이 성공하면 집을 싸게 달라’고 요구했다”는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관건은 공소시효다. 김 전 차관이 수뢰 혐의로 기소되려면 총 뇌물액수가 1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이 경우 시효가 15년으로 늘어난다. 김 전 차관은 특수강간 또는 불법촬영 혐의도 받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10일 (출처:경향신문DB)

‘김학의사건’이 오랫동안 공분의 대상이 된 것은 혐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시민은 1·2차 수사 때 검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했고 이 과정에 ‘박근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더 주목한다. 이번 수사를 앞두고도 김 전 차관이 ‘도피성 출국’을 시도하기 전 자신이 출국금지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고,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법무관 2명이 김 전 차관의 출금 여부를 조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아직도 검찰 내부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단은 그럼에도 부실수사 규명 부분에 대해선 뚜렷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만약 검찰이 김 전 차관의 비리를 밝혀내 재판에 넘긴다 해도 과거 수사의 잘잘못은 가리지 않은 채 넘어간다면 시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은 제 살을 도려낸다는 각오로 수사하는 것만이 오욕을 씻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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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이름을 적어놓았던 메모지도 지금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검사 하면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전해들은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 우연히 탄 택시의 기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낮에 한 검사에게 점심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 제조업체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까지 지정됐다고 하니 꽤 규모가 큰 회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월드컵 때의 투자로 부도가 났다. 그는 전 재산을 털었지만 빚을 다 갚지 못했고, 고소를 당해 그 검사를 만나게 됐다.

검사는 조사가 끝나던 날 “300만원 있느냐”며 “그 돈만 갚으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했다. 그에게는 300만원도 없었다. 검사는 “내가 빌려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며 3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는 검사에게 받은 300만원으로 채권자들과의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10만원, 20만원씩 갚아나간 그는 내가 택시를 탄 그날 검사를 만나 빌린 돈을 마지막으로 갚았다. 그는 “돈이 없어 5000원짜리 국밥밖에 사지 못했다”고 했다. 얘기를 들려주는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고마움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가 검사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많이 공부한 사람이라 역시 배려심도 깊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세상의 검사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밝아졌을까. 하지만 요즘 접하는 검사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자료를 모니터에 게시한 채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구속된 한 대기업의 검사 출신 부사장. 윤리경영부문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를 숨기려 자료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사 시절에는 ‘맷값 폭행’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피해자를 기소했다. ‘장자연 리스트’ 관련 수사 때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기소했다.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시끄럽다고 잡아들인 격 아닌가.

그리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건설업자의 별장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며 ‘육안으로도 (김 전 차관으로) 식별이 가능한’ 동영상을 찍었다. 한밤중에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이 제지된 그는 잘못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 사과가 없다. 그저 “힘들다”는 말뿐이다.

무엇이 검사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사권, 수사지휘권, 독점적 영장 청구권, 기소권을 독점한 그들의 막강한 권한 때문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착하고 순수한 프로도마저 반지를 보는 순간 눈빛이 변한다. 검사들에게 그들이 가진 절대적인 권한은 ‘절대반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에서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 파괴하듯 검사들의 절대적인 권한을 줄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이 처음으로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분수’를 배울 때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 연산에 그치던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는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분수와 도형을 접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 수학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수포자’가 되는 시점에 충분한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사들도 일을 하다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승진이라든가 보직이동을 처음 경험하게 될 때 같은. 만약 그렇다면 검사들에게도 어느 시점에 일을 떠나 윤리 교육을 다시 받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2009년 3월 ‘검사선서’를 만들어 새로 임용되는 검사들이 선서하게 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검사의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는 아닐 것이다. 검사로 취임할 때 선서한 바를 퇴직할 때까지 지켜주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검사선서’를 다시 읽어볼 것을 검사들에게 권한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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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성범죄 의혹’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도피성 출국’이 무산됐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2일 오후 11시쯤 인천공항 티켓카운터에서 23일 새벽 출발하는 태국 방콕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김 전 차관은 체크인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김 전 차관의 출국시도 사실을 법무부에 통보했고,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가 긴급출국금지를 지시했다. 김 전 차관은 항공기 탑승을 불과 몇 분 앞두고 탑승게이트 앞에서 출국이 좌절됐다. 김 전 차관은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경호인력까지 동원했다. 김 전 차관이 출국했다면 수사가 공전에 빠질 수도 있었다.

김 전 차관 사건이 시민들의 공분을 산 이유는 ‘증거가 뻔한데도 어떻게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릴 수 있는가’였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건설업자가 이권을 따기 위해 열었던 향응파티에 연루됐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향응에 여성 수십명이 동원돼 성범죄가 이뤄졌고, 김 전 차관의 모습이 동영상에 찍혔다. 경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인했지만, 검찰은 ‘인물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2014년에도 한 여성이 “여러 장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준강간했다”며 김 전 차관을 고소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죄를 짓고도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다수의 피해자 증언과 동영상이 무용지물이 된 배경에는 비호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새로운 증언도 나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김 전 차관 수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 23일 한 방송에 출연한 당시 경찰 수사 책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경찰청에 찾아와 “대통령이 불편해한다. 수사를 진행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뿐 아니라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도 수사팀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후 수사팀 지휘부는 모두 전보조치되었다. ‘윗선 개입’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전 차관은 지난 15일 조사단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서면 진술서 하나만 보낸 채 불응해왔다. 그러다가 18일 청와대에서 사건과 관련,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23일 야음을 틈타 출국을 시도했다.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숨어서 지내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기간은 오는 5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하기로 한 상태다. 조사단이 김 전 차관의 출국시도에 기민하게 대처했던 것처럼 의혹 역시 신속하게 그리고 낱낱이 규명하길 기대한다. 김 전 차관의 범죄는 물론 그를 비호해온 검찰 내 인사와 윗선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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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의혹과 부실수사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은 모두 성착취와 인권유린이라는, 한국 사회의 윤리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랜 시간 진실이 은폐되며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폭력은 반복돼왔다. 최근 벌어진 승리·정준영 사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폭력과 착취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제는 거대한 부조리의 사슬을 끊어낼 때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그 실무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부실수사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국회에서 “(2013년 수사 당시) 명확한 영상을 입수했는데, (김 전 차관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 감정 의뢰 없이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2013년 수사 당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으나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민 청장의 발언이 있던 날, 동영상 속 피해 여성도 KBS에 출연해 사건 당시 정황과 검찰 조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고 장자연 문건' 목격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장자연씨가 사망 직전 작성한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 윤지오씨는 10년간 해외에 체류해오다 최근 귀국해 공개증언에 나서고 있다. 윤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출석해 리스트와 관련된 언론인 3명과 정치인 1명의 이름을 진술했다. 그는 “이 사건은 단순 자살이 아니다”라며 공소시효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장자연 사건 재수사 국민청원도 60만명이 참여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문제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데 있다. 김 전 차관은 진상조사단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강제구인 권한이 없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또 이달 말로 끝나는 조사기한을 연장해달라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새로운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는데 연장을 거부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치부를 덮고 제 식구를 감싸려는 의도인가. 검찰권 오남용 의혹을 받는 대표적 사건들을 이대로 묻고 간다면, 검찰의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는데, 피해자들은 죽음을 택하거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진상조사단 활동기한을 연장하고, 이후 전면 재수사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의 은폐된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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