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 해당되는 글 85건

  1. 2019.05.29 [사설]서훈·양정철 회동 어느 모로 보나 부적절하다
  2. 2019.05.28 [사설]한국당, 정녕 ‘민생’이 걱정된다면 국회로 복귀해야
  3. 2019.05.22 [사설]임금격차 개선한 최저임금, 취약업종 보완책 마련해야
  4. 2019.05.21 [양권모 칼럼]‘나라다운 나라’에 전교조는 없는 걸까
  5. 2019.05.14 [기고]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도전과 인내의 2년을 돌아보며
  6. 2019.05.13 [사설]문재인 정부 2년 - 양극화와 불평등 못 잡으면 경제 성공 어렵다
  7. 2019.05.03 [사설]정부, 재벌개혁 칼날 무디다는 고언 무겁게 받아들여야
  8. 2019.04.25 [경향의 눈]벚꽃은 한번에 시든다
  9. 2019.04.03 [사설]잇단 인사·검증 실패에도 ‘뭐가 문제냐’는 청 소통수석
  10. 2019.04.02 [김민아 칼럼]김의겸의 ‘각자도생’
  11. 2019.04.01 [사설]잇단 인사 실패, 청와대가 알아야 할 사실 두 가지
  12. 2019.03.29 [사설]청 대변인의 26억 건물 매입, ‘투기 엄단’ 구호가 무색하다
  13. 2019.03.27 [사설]지켜보기 낯 뜨거운 ‘죄송 청문회’
  14. 2019.03.13 [사설]색깔론에 비방으로 가득 찬 한국당 원내대표 연설
  15. 2019.03.11 [NGO 발언대]미세먼지에 ‘비상한 조치’는 없었다
  16. 2019.03.04 [기고]과기원 총장 선출 방식 바꿔야
  17. 2019.02.22 [편집국에서]송파 세 모녀, 우공이산
  18. 2019.02.19 [기고]포용국가, 농촌 복지가 필요해
  19. 2019.02.14 [사설]새해 들어서도 계속되는 고용난, 백약이 무효인가
  20. 2019.01.31 루비콘강 건너는 문재인 정부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지난 21일 저녁 비공개로 4시간30분 가까이 회동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자리에는 현직 중견기자 1명도 동석했다. 양 원장은 “사적인 지인 모임이어서 특별히 민감한 얘기가 오갈 자리도 아니었고 그런 대화도 없었다”고 했다. 그건 그의 주장일 뿐 두 사람의 회동은 여러 면에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양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최측근 친문 인사다. 그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해외로 출국해 2년간 유랑생활을 한 것도 현 집권세력 내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돌아오자마자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수장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는 건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외로 떠났던 초심에 비쳐보면 회동은 더욱 피했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양 원장은 현재 집권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연구원장에 취임하면서 “정권교체의 완성은 내년 총선 승리”라며 “민주연구원이 총선 승리의 병참기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총선을 10개월 앞두고 여야가 총력전에 돌입한 민감한 시기다. 설령 그의 말대로 정치 얘기는 없었다 하더라도 총선 전략을 짜는 여당 실세와 국가정보기관 수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여러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양 원장은 “제가 고위 공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공익보도 대상도 아닌데 미행과 잠복취재를 통해 일과 이후의 삶까지 이토록 주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양 원장 밑에 부원장으로 초선 의원 3명을 포함한 5명이 포진해 있다. 그를 재선이나 3선급으로 대우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의 정책연구소는 정책의 개발·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국고 보조를 받고 있다. 이런 자리에 있는 인사가 공인(公人)이 아니라면 누가 공인인가.  

민주당이 이번 회동을 두고 “개인적인 만남”이라고 감싸고 도는 건 몹시 안이한 대응이다. 이전 정권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어갔을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분야를 없애고 권력기관 개혁 차원에서 정치 관여를 제도적으로 막는 방안을 추진해 오고 있다. 아울러 전임 정권의 국정원장들은 정치개입 등의 혐의로 줄줄이 단죄를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두 사람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탈(脫)정치화 의지를 의심받을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이라도 회동의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사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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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국회 정상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정상화 선결 조건을 둘러싼 여야 갈등에 5월 국회는 소집조차 못한 채 ‘빈손’으로 끝날 판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여야 4당의 선거법·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해 장외로 나가면서 시작된 ‘식물국회’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당장 재난과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은 상정도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당이 지난 25일 광화문 집회를 끝으로 19일간의 장외투쟁을 일단락한 것을 계기로 여야 대화 복원의 기대가 컸으나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특히 황교안 대표의 조건 없는 국회 복귀 결단을 바랐으나 연목구어 격이 됐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겠습니다” 민생투쟁 대장정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황 대표는 27일 ‘민생투쟁 대장정’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폭정’이라고 비난하며 “한국당이 대안을 만들어 국민과 함께 정책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과 이제는 국회 밖에서 ‘정책투쟁’으로 싸우겠다는 선언이다. 국회 정상화에 대해서는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2일 의원총회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패스트트랙 유감이나 사과 표명은 안된다고 정리한 상황이다. 4당의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이고 이를 물리력으로 저지한 한국당은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여당으로서 국회 파행에 대한 유감 표명 정도는 몰라도 철회까지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협상을 깨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외투쟁에도 ‘민생 대장정’을 내걸고, 이제는 민생을 위한 정책투쟁을 선언하면서 정작 민생입법을 다룰 국회 마당을 외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국회법에 따라 짝수달인 6월에는 임시국회가 자동 소집된다. 하지만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 못하면 6월 국회 역시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 그 피해는 민생과 경제에 돌아가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여야 지도부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회 공전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교착 정국을 풀어야 할 일차적 책임은 여권에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황 대표 간 일대일 회동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당도 여당이 애초 받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어 절충의 기회를 봉쇄해서는 안된다. 한국당이 장외로 나가 국회가 겉돌면서 민생법안들은 먼지만 쌓이고 있다. ‘정책투쟁’ ‘민생정당’을 운위할 처지가 아니다. 정녕 민생을 걱정한다면 조건 없이 국회로 돌아와 민생·경제를 놓고 ‘박 터지게’ 싸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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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저임금 노동자 비율을 떨어뜨리고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최저임금제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음식숙박업 등에서는 고용을 줄이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으로 드러나 취약업종에 대한 보완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21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최저임금 현장 실태파악 결과’에 따르면,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인 고용형태별 지니계수는 지난해 0.333으로 2017년(0.351)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임금 상위 20%의 임금 총액을 하위 40%의 임금 총액으로 나눈 10분위 분배율도 지난해 2.073으로, 전년(2.244)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률(16.4%)이 임금 불평등 해소에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감소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21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최저임금 개악 피해사례 고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문제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으로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일부 취약 업종에서 고용감소와 노동시간 감소가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인건비 부담을 느낀 사업주가 고용을 줄이거나 영업시간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음식숙박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업종 내 과당경쟁과 온라인 상거래 확산 등 영업 외적인 요소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컸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일부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에도 실제 받는 임금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함께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은 아쉽다. 

문재인 정부는 2018~2019년 2년 연속 최저임금을 두 자릿수로 인상했다. 이를 두고 경영계에서는 ‘수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등의 억측을 쏟아내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속도조절론에 인상유보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말해주듯,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보장, 임금 불평등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물론 도소매업 고용감소 등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최저임금의 인상부담을 공유하거나 임대료 인하, 카드수수료 완화가 대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이 아니라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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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2년이 흘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여전히 박근혜 정부가 씌운 법외노조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십명의 해직 교사들은 아직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적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2017년 2월)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약속은 간데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 때와 똑같은 ‘법외’ 처지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 국민의나라위원회와 민주연구원이 공동으로 작성한 국정운영 보고서(2017년 5월17일)에는 임기 초반 즉시 시행 가능한 ‘10대 촛불 개혁 과제’가 제시됐다. 대통령의 결단이나 행정부의 처분만으로 시행할 수 있는 개혁과 적폐청산의 목록이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자 인정, 교원노조 재합법화 선언, 세월호 선체 조사위 인력·재정 추가 지원, 4대강 복원 대책기구 구성,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재수사, 최저임금 공약 준수 의지 천명 및 근로감독 강화,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 폐기, 개성공단 입주업체 긴급지원, 박근혜 정부 언론탄압 진상조사,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금지 선언 등이다. 아직껏 유일하게 미시행된 게 교원노조 재합법화이다. 분명해진 건, 전교조 재합법화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 시민·사회단체 원로와 단체대표들이 20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박근혜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13년 10월 팩스 공문 한 장으로 전교조를 법 바깥으로 쫓아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9조2항)을 앞세워 조합원 중 해직자 9명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통보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인권위조차 “조합원 자격 때문에 노동조합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2010년)고 삭제를 권고했던 시행령을 들어 법외노조화를 밀어붙였다. 법률도 아니고 행정부 명령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박탈한 꼴이다. 이게 법정에서 바로잡히지 않은 까닭도 뒤늦게 드러났다. 전교조가 제기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효력 정지 신청’과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어 박근혜 청와대에 ‘선물’로 바쳐졌다. 전교조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맹렬한 적의를 감안할 때 그만한 진상품이 없었을 터이다.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정부가 나서 이전에 내렸던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는 것은 하등에 문제될 게 없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위반되고, ‘재판거래’마저 드러난 상황에서 명분도 충분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고용노동부 장관이 전교조와 만나 ‘직권 취소’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피력하자, 청와대 대변인이 나서 “정부가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고용노동부의 적폐청산위원회 격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지난해 7월 ‘법외노조 처분 직권 취소’와 ‘노조법 시행령 삭제’를 권고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과정에서 ‘외압’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직권 취소를 미룰 명분이 없어졌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직권 취소를 통한 법외노조 해결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대신 (3년 넘게 계류 중인)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고, ILO 핵심협약 비준에 맞춰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형식논리일 뿐 실은 ‘하지 말자’는 얘기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선거법’보다 전교조 재합법화를 위한 법에 더 결사 반대할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는 왜 전교조 앞에서 멈춰서는 걸까. 진즉 답이 나왔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2018년 11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국정감사 답변) 사회적 약자 여부와 법외노조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전교조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전교조 재합법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그림자를 짚어볼 뿐이다.

5월28일은 전교조 결성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0년 동안 체벌과 촌지가 일상이던 학교의 풍경을 바꾼 데는 전교조의 역할이 컸다. 혹독한 시절 ‘참교육’을 위한 전교조 교사들의 용기와 희생, 눈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는 참 남루했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전교조 결성 계기가 된 1986년 중3 소녀의 유서) 입시에 매이지 않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학생들의 삶을 위한 교육, ‘참교육’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30주년 교사대회는 ‘참교육’이 걸어온 길을 성찰하고 미래 교육의 비전을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한데 30년 전과 같이 다시 ‘전교조 합법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설 판이다.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교사들을 부정한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교육개혁을 이뤄나갈 수 있을까.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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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대북정책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는 듯하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힘주어 말하던 모습은 현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 이상의 전율을 느끼게 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 당시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 비난하며 자신의 버튼이 더 크다고 서로 협박했다. 

캐릭터 있는 북·미의 지도자들과 종신권력을 창출한 시진핑 주석,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가장 강경한 아베 총리까지, 한반도는 스트롱맨들의 전장 같았다.

한반도에서 한국은 분명 약한 고리로 취급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는 스트롱맨들과 적절히 조율하며 북핵 협상을 이끌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충돌의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띠와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꼽자면, 첫째,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어젠다로 복귀시켰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후 북핵 문제는 북한의 거부로 남북대화 의제에서 제외됐다. 2018년 4월의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25년 이상 논의 불가 영역이었던 북핵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었고, 북·미 협상에 시너지 효과를 제공했다.

둘째, 한국은 남·북·미 정상외교를 주도하며 북핵 협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북핵 협상은 2017년 말과 2018년 5월, 그리고 2019년 2월 등 세 차례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주도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판문점선언과 남북 정상의 긴급 회동, 그리고 조기에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과 적절한 전화 외교를 통해 북·미 양국의 이탈을 방지하고 협상공간을 창출했다.

셋째, 정부는 북한과 9·19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군사위협을 제거해왔다. 동 합의서에서 남북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GP)를 철수하고 판문점을 비무장화하는 등 종전선언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다만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미 간 양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톱다운 협상의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으며, 강력한 대북 제재하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 상황 역시 숙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시계는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가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이 인내의 시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 전략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미의 시·공간이 중첩되는 순간을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신경질적인 도발에 한·미 양국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지지한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소 거친 샅바 싸움과 유화 제스처 속에 협상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한반도의 운명을 건 본게임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정일영 | IBK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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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경제정책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내걸었다. 저소득·서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소비가 일어나고 매출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것이 투자로 이어지면서 경제를 성장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50년간 대기업과 수출 위주의 성장정책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고, 소외층을 양산했다고 보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기존의 틀로는 심화되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봤다. 고도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된 저소득·취약계층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 후 2년이 흘렀다. 기대와 달리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고소득층의 소득은 늘어났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일자리는 연 30만명 수준의 증가에서 10만명 수준의 증가로 하락했다. 정규직·대기업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은 감소했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포함한 가구 간 소득불평등은 확대됐다. 일자리 감소의 충격이 소득하위 계층에 집중된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처방전이라도 용량을 초과해 투여했을 경우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과속이 문제였다. 이는 취약한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호하려는 계층이다. 이상을 현실정치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부분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KBS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문재인 정부 2년 특집 대담-대통령에게 묻는다>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3년이 남았다. 우려되는 건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최저임금 논쟁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과제는 산적하다. 가장 심각한 것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털어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데 나서야 한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이후 가파르게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5번째로 높다. 상위 1% 계층의 소득 집중도도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문재인 정부에서 더욱 심화됐다. 수수방관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한국의 불평등 심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규모별 격차와 이중구조,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중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순간 ‘철밥통’이 되고 나머지는 ‘루저’가 되는 사회가 정상일 수 없다. 정부는 기업 간 취업형태 간 임금격차와 이중구조의 해소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 문제도 정밀한 고려가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력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제한적으로라도 인력 구조조정을 허용하되 보완하는 방안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실업급여와 재교육을 받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불평등 확대는 소득뿐만 아니라 부의 상속에도 기인한다. 누진세제를 포함한 재분배 정책도 확대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곤란에 빠진 개인이나 가구의 재출발을 지원해 재기할 길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소득양극화와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박탈감으로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가속화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이는 해체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문제의 개선 없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공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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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2일 열렸다. 진보·개혁 지식인들의 모임인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떻게 되었나’를 주제로 연 이 행사에서는 지난 2년의 경제정책에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발제자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공정경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재벌개혁에는 소홀히 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포기했다’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회귀했다’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강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재벌개혁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재벌개혁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중심 경제는 경쟁의 기회와 혁신의 유인이 적은 구조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도전할 기회가 줄고, 기술 탈취도 빈번히 일어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벌개혁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정부의 개혁열차는 2년 전 출발점에서 크게 전진하지 못했다. 재벌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상법개정은 교착상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보수야당과 재계의 저항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재벌의 사익편취를 방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는 상법 개정안의 ‘우선순위 조정’, 공정거래법 ‘부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상법 개정, 공정경제의 최우선 과제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반쪽 개혁’이라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칼날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4%는 ‘재벌이 한국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 불평등을 야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은 86%에 달했다. 재벌개혁이 ‘정권 출범 초기 개혁 드라이브 기회를 놓쳤다’거나 ‘예상치 않았던 경제 부진에 발목이 잡혔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집권 3년차인 올해마저 그대로 넘어간다면 재벌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위한 방안을 찾아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로 뒷걸음치지 않고 경제체질을 바꾸고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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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벚꽃 대선을 치르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보면서 ‘대통령이 복이 많다’고 했다. 성장률도 높아지는 데다 시민들의 높은 지지까지 있으니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수요를 일으키고, 혁신성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경제시스템도 공정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소득 증가를 수요와 공급,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늘리기’를 청와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일자리 전광판까지 세웠다.

그런 뒤 2년이 흘렀다. 기대는 빗나갔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과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혁신성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실상 ‘공회전’ 중이다. 경제성장률도 직전 정부의 성장률에 못 미친다. 전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2017년 GDP성장률이 3.1%로 가장 높았고 지난해 2.7%, 올해는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성장률 하락 시점이 같다는 점은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일자리 실적은 극히 부진하다. 30만명대 증가에서 지난해에는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인구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구 감소 영향도 있으나, 일자리 감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경제의 허리층인 30·40대와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뼈아픈 부분이다. 벚꽃이 떨어지듯 지지도도 하락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피해왔다. 지난달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 증가세가 확대되고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각종 지표나 현장의 목소리와 다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정말로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심리인 만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한번 밀리면 끝까지 공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추경예산안을 내면서 스스로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높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무엇이 문제인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어젠다를 실행할 준비가 부족했고 책임감도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행에 앞서 고용시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처방전이라 해도 약물을 과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처음 처방이 과도했다면 조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책임자였던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도 최저임금을 그렇게 많이 올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럼 누가 책임지라는 말인가.

1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열린 '2019 용인시 일자리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청와대는 독주했고 소통은 부재했다. 출범 초기 청와대와 경제부총리의 불협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어 경제수장이 바뀐 뒤에는 잡음은 없어졌으나 정부가 청와대의 실행부서가 되었다. 각 부처가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는 늦어진 데다 11개 부처는 서면보고로 대체했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지만 사라졌다. 또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기업은 좋든 싫든 대화의 상대다. 그런데 적폐라는 프레임으로 대화는 실종됐다. 간간이 ‘보여주기용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재벌개혁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와 대통령의 대화가 이뤄진 건 올해 들어서다. 대화와 소통으로 의견을 나누고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 수 있으나 그 길이 막혔다.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서 조급증에 빠졌다. 한방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게 토건사업이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해 54조7000억원, 생활SOC 사업에 48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을 돌면서 요청받은 지역개발 사업이 134조원에 이른다. 다음 세대에 짐이 될 사업들이다. 4대강 사업 22조원을 비난하던 여당이 맞는지 싶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건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홀대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4분기 빈부격차는 분기 기준으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피해를 입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두번째 벚꽃이 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사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한번 해체된 가계의 ‘경제적 부활’이 힘들다는 것은 이미 외환위기가 교훈으로 남긴 바 있다. 경제는 고상한 구호가 아니라 밥의 문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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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의 장관 후보자 중 2명이 낙마했으면 ‘인사 참사’에 가깝다. 다주택 보유 논란에 휩싸인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고, ‘해적 학회’ 참석·자녀 호화 유학 의혹 등이 불거진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지명을 철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공직 후보자에 대해 지명 결정을 번복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흠결 사유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 인정한 셈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비리의혹 백화점이 된 장관 후보자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실망감을 헤아렸다면, 진정 어린 사과와 함께 엄격한 검증 체계를 마련해 다시는 ‘인사 실패’가 없도록 하겠다고 벼렸여야 할 터이다. 하지만 인사 실패에도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자기합리화와 면피성 해명을 사흘째 되풀이하는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은 보기에 한심할 지경이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3월 31일 오전 청와대에서 인사청문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동호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최정호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 수석은 인사검증 부실을 둘러싼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 책임론에 “특별한 문제가 파악된 게 없고, 문제가 없으니 특별한 조치도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에게 제기됐던 부동산 투기나 자녀 호화 유학 논란 등에 대해서도 “지명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나 ‘국민 정서’ 탓에 낙마했다는 투의 어이없는 주장을 폈다. 최 후보자의 다주택 보유에 대해선 “주택 세 채를 보유했다는 것 자체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것인지 이론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론’을 말하는 것인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자기들만의 ‘이론’을 국민 정서와 견주는 것이라면 오만의 극치다. 윤 수석은 조 후보자의 자녀 호화 유학 논란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조 후보자 아들이 보유한 포르셰 가격이 3500만원이 안되고 벤츠도 3000만원이 안된다고 설명하면서 “가격 기준으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벤츠·포르셰를 타는 것이 무슨 문제였겠나”라고도 했다. 윤 수석의 주장처럼 별문제가 아니라면 왜 자진 사퇴에 ‘지명 철회’ 조치까지 취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검증 라인의 문책론을 모면하려 대통령의 지명 철회 결단조차 희화화하고 있는 꼴이다.

잇단 인사 실패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눈높이, 상식과 거꾸로 가는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다.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이 ‘뭐가 문제냐’고 대거리하는 걸 보면, 결국 기존 방식과 라인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인사 실패’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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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기자 김의겸은 견결한 진보주의자였다. ‘함께 잘사는 길’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런 김의겸도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택했다. 14억 재산으로도 안심하지 못했다. 은퇴 이후 인생을 서울 흑석동의 낡은 건물에 걸었다. ‘갓물주(God+건물주)’의 유혹에 ‘대통령의 입’이란 본업을 잊었다. 사퇴는 불가피했다.

한국은 부자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모두가 전전긍긍이다. 서민층은 물론 김의겸 부부 같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민의 평균 행복지수(10점 만점)는 5.895점이다. 조사 대상 156개국 중 54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무엇이 우리를 ‘집단 불행 증후군’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행복지수는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기준 GDP)과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내 삶을 선택할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등 6개 지표를 측정해 종합 산출된다. 한국민은 건강 기대수명(9위)과 1인당 GDP(27위), 관용(40위)에선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사회적 지지(91위), 부정부패(100위), 선택의 자유(144위)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회적 지지가 취약하다는 건, 연대 가능성이 낮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택의 자유가 좁다는 건, 개개인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의미다. 부정부패는 반칙과 불공정이 판치는 시스템을 드러낸다.

행복지수는 유의미하다.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각자도생은 백전백패임을 일러준다. 중산층이 불안과 질투를 동력삼아 피라미드를 한 층 두 층 오르는 동안 서민층은 바닥에서 신음해야 한다. 중산층이라고 꼭대기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압도적 자원을 보유한 ‘1%’는 이미 꼭대기를 차지한 채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서로 치고받고 상처 주며 피라미드를 기어오르는 ‘각자도생의 무한 루프’는 끊어야 한다. 피라미드를 깨부수고 항아리 구조로 바꿔야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없다. 정치의 몫이다.

구조를 바꾸려면? 담대한 상상력과 강한 추진력이 필수다.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상상력의 모범사례다. 29세로 역대 최연소 의원인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린 뉴딜’로 워싱턴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그린 뉴딜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불균형까지 완화하자는 야심찬 계획이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타임지 인터뷰에서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말했다. 추진력의 모범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에게서 찾고 싶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테러가 발생한 지 72시간 만에 내각 차원의 총기규제 강화 방침을 이끌어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재개발 지역 내 25억여원대 복합건물 매입 논란에 휩싸인 지 하루 만인 29일 전격 사퇴했다. 연합뉴스

미 상원이 그린 뉴딜 결의안을 논의할 무렵, 한국 국회의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종교인의 퇴직소득세를 깎아주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혜택은 대부분 초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돌아간다. 한국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문재인 정부가 다음달 10일 출범 2년을 맞는다. 향후 3년간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가 깊고 넓음도 안다. 그럼에도 ‘각자도생’이라는 대세를 ‘공존공생’ 쪽으로 방향타만 돌려놓을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생부터 청와대 대변인까지 건물주를 꿈꾸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보유세를 강화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 부동산 불패 신화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동체의 ‘신뢰 인프라’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과감한 증세가 절실하고, 필요하다면 사회보험료 인상도 논의해야 한다. 각자도생을 방치하는 건 정치의 직무유기다.

두 달 전 왼쪽 손목을 접질렸다. 정형외과에선 1~2주 물리치료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손목 보호대를 차고, 물리치료도 꼬박꼬박 다녔다. 3주가 지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는 비급여 진료인 체외충격파 시술을 권했다. 효과는 좋은데 비싸다며 실손보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 건강보험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온 나는 실손보험에 들지 않았다. 1회 7만원씩 내고, 네 번 시술받았다. 손목 상태는 상당히 나아졌다.

이제라도 실손보험에 들어야 할까? 버티고 싶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당당하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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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2기 내각 장관 후보자 7명 가운데 2명이 낙마했다. 정부의 국정철학과 배치된 ‘내로남불’ 인사라는 비판 여론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아들의 ‘황제 유학’, ‘군 복무 특혜’ 의혹 등은 시민 정서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여기에 해외의 ‘해적 학술단체’와 관련된 학회에 참석한 새로운 의혹이 더해졌다. 최 후보자 역시 잠실·분당·세종에 아파트와 분양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23억원이 넘는 투자 이익을 얻는 등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딸 부부에게 집을 팔고 월세로 사는 쇼까지 벌였다.

조동호(왼쪽), 최정호. 출처:경향신문DB


사실 이들의 낙마는 청와대만 빼고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도 청와대는 지명 철회 발표 자리에서까지 안이한 인식을 내보였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조 후보자의 해외 부실학회 참석에 대해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 부실학회 참석 사실을 제외하고는 청문회 과정에서 지적된 흠결은 인사 검증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예의 사전 파악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변명은 구차하고, 흠결을 알고도 지명했다는 건 오만하게 들린다. 어느 쪽도 시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사실패로 낙마한 장차관급만 벌써 10여명에 이른다. 장관 후보가 낙마하면 차기 장관이 나오기까지 수개월간 국정공백은 불가피하다. 이런 국력 낭비는 청와대가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한두 번이면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개각 때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건 청와대 인사 추천·검증 시스템에 단단히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말 인사라인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 인사 잣대가 내편에만 관대한 온정주의는 없었는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책임자에 대한 문책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매번 책임을 묻지 않고 감싸고 도니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사 때마다 시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뼈저린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두 사람의 낙마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내편, 네편 가르지 않고 인사의 폭을 넓히는 등 인사정책의 과감한 반성과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제2, 제3의 인사참사는 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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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1억원을 빌려 공시가격 26억원에 달하는 재개발지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서울 집값이 폭등하던 지난해 7월 서울 흑석동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을 샀다고 한다. 이 지역은 매입 두 달 전 롯데건설이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흑석뉴타운 9구역’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는 이 건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 외에 은행에서 배우자 명의로 10억2080만원을 대출받았고 지인에게 1억원을 빌렸다. 은행금리 4%를 적용하면 매년 이자만 5523만원을 내야 한다. 김 대변인 연봉의 절반 이상이다. 말 그대로 부동산에 올인해 재테크에 나선 셈이다. 

김 대변인은 28일 상가 매입을 놓고 파문이 일자 “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자리고, 제 나이에 전세를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전날엔 “노후 대책용으로 건물을 매입했다”고 했다. 폭등한 집값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세대나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꿈 같은 얘기다. 군색한 변명은 도리어 시민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대책과 지난해 9·13대책 등 각종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하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흑석동은 8·2 부동산 대책 때 투기과열지구로 분류돼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 곳이다.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투기 억제에 집중할 때 청와대 대변인은 거액의 빚을 내서 재개발지역 노른자 땅을 산 것이다. 투기를 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요, 투기가 아니라 해도 공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이 정부는 다를 거라 믿어 온 시민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매일 시민 앞에 나와 대통령과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다. 앞으로 김 대변인의 국정 설명을 과연 신뢰하겠는가. 무엇보다 시민이 정부 정책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 국정이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해 약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구역의 한 복합건물. 김영민 기자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나설 때는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시민은 비 새는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는 청백리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말과 행동은 맞아야 한다. 이번 재산공개에서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86명 가운데 25명(29.1%)이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 전체 가구 중 다주택가구는 14% 정도다. 고위공직자가 일반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시민을 우롱하는 행태다. 이러니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고 한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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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물화처럼 익숙해진 풍경이 있다. 인사청문 대상자들은 각종 도덕성 의혹에 휘말리고, 막상 청문회에서는 해명은커녕 ‘죄송·불찰·송구’를 읊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면이다. 아무리 결격 사유가 등장하더라도 “죄송하다”고 납작 엎드려 인사청문회 순간만을 모면하면 된다는 경험칙의 산물이다. 25일부터 시작된 ‘3·8 개각’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이러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2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26일 청문회에서 배우자·자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송구하다”고 했다. 문 후보자의 배우자와 두 자녀는 1998년 위장전입했고, 2006년에는 한 달에만 총 3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에 줄줄이 걸리자 2017년 말 병역기피·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 등 소위 ‘5대 원칙’을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포함한 ‘7대 원칙’으로 확대하면서 위장전입의 문턱을 낮춘 인사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위장전입은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자녀 학교 배정 등 목적으로 2회 이상일 경우로 완화했다. 2006년 자녀 학교를 위해 3차례 위장전입을 한 문 후보자는 이 기준에 예외인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딸 증여세 탈루, 업무추진비 소득신고 누락 등과 관련해 뒤늦게 증여세를 납부한 것에 “정식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 하루 전인 25일 65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청문회에서 과거 ‘막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사과드린다”는 답변을 되뇌었다. 앞서 25일 청문회를 거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다주택 보유와 꼼수 증여, ‘갭투자’ 등에 대해 실체적 해명 없이 ‘죄송·반성·송구’를 수없이 반복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으로서 적격성에 의문이 찍히는 부동산 문제들에 대해 소명은커녕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후보자를 보는 서민들의 상실감은 너무 크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일탈과 편법 행위가 면피성 사과 한마디로 아무 일 아닌 듯 넘어간다면 ‘공정’ ‘정의’ 사회는 헛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죄송·송구’로 점철되는 청문회를 마냥 지켜봐야 하는 이 열패감을 인사권자가 진지하게 새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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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연설에선 ‘좌파정권’이란 말만 5차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에서는 삿대질과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여야 의원들끼리 몸싸움까지 벌이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나 원내대표는 도를 넘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 “먹튀정권, 욜로정권, 막장정권”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연설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원이 아니라 시민을 상대로 한 연설이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품격이 따라야 한다. 2015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은 상대 당으로부터도 보수의 지평을 넓혔다는 극찬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의 ‘네거티브 연설’은 건강한 보수를 기대해 온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며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올리며 웃고 있다(위 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나 원내대표 연설에 항의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권호욱 선임기자

연설 중엔 ‘초당적 경제원탁회의’ ‘국론통일을 위한 7자회담’ 등 정부·여당이 경청할 만한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도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에 다 묻혔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하며 “반대정당이 아닌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연설은 그런 다짐과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윤리위 회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거꾸로 연설을 방해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처음 개원한 3월 임시국회는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 때부터 마치 릴레이를 하듯이 저급한 색깔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아침 회의 때마다 ‘좌파정권’이란 말을 달고 산다. 아마 이날 연설도 이런 당내 극우화 기류에 최근 지지율 상승에 따른 자신감이 어우러져 나왔을 것이다. 험한 말을 골라 쓴다고 야당성이 부각되는 게 아니다. 한국당이 지난 대선·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건 케케묵은 색깔론, 막무가내식 반대로 중도층의 외면을 받았던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보면 수권정당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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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런던 스모그 사건이 떠오른다. 단 7일 동안 석탄 연소에 따른 스모그 현상으로 1만2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환경 재앙.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었고 수도권과 세종, 충청도에는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7일 연속 발령되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가능한 방안 총동원’을 주문하였다. 7일의 먼지 지옥. 국제암연구소는 미세먼지를 발암물질 1군으로 분류한다. 그 위해성이 명백하다. 1952년 런던의 재앙이 2019년 한반도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비상한 재앙’에 ‘비상한 조치’를 취했는가. 작년 한국 정부와 미국 항공우주국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의 52%가 국내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또한 ‘2차 미세먼지, 즉 오염원으로부터 배출된 이후 화학반응을 통해 크게 증가하는 미세먼지는 지역 내 오염원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단일 배출원으로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범은 석탄화력발전소이다.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별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국내 ‘지역 내 오염원’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곪은 환부를 도려내야 할 큰 수술인데 감기약만 처방하는 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6일 (출처:경향신문DB)

미세먼지 재앙은 석탄화력과 경유차, 나아가 화석연료 퇴출에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똑같이, 미세먼지는 화석연료의 불편한 찌꺼기 때문에 발생한다. 화석연료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을 선택해야 한다. 인공 강우를 뿌리고, 대형 공기청정기를 달고, 거리를 청소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선포하고 6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며 강제 차량 2부제, 내연기관 퇴출만이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비상조치인 것이다. ‘탈석탄화력, 에너지 전환’의 정책 기조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 차원의 ‘탈석탄위원회’ 구성은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을 국정과제로 걸었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임기 내 폐쇄,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건설 중이거나 계획 단계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무려 20곳이다. 정부는 석탄발전량 비중을 2017년 기준 45.5%에서 2030년 36.1%로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오염물질 배출량은 꾸준히 늘 것이다. 향후 10년, 아니 그 이상이 지나도 우리는 미세먼지 공포 속에 허덕거려야 한다. 독일은 2030년 재생 발전 65%를 목표로 하고, 유럽연합은 2050년 전력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생산·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는 2022년까지 석탄발전을 모두 폐쇄한다. 영국은 2040년부터 가솔린과 디젤 차량의 판매를 금지한다. 폭스바겐은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한다. 한국은 어떤가. 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에 따르면,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5~40%로 제시되었다. 석탄화력은 늘고 재생에너지는 더딘 상황, 한참 잘못되었다.

탈석탄화력, 태양과 바람의 길을 갈 것인지 미세먼지 지옥에서 살 것인지, 우리의 삶과 지구의 운명이 걸린 절박한 갈림길이다. 국민 생존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야 정치인, 환경 관료가 책임지지 않는다. 미세먼지는 민감·취약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와 시민,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사회 대변혁을 강하게 요구할 때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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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울산과기대가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으로 전환되면서 초대 총장 선출이 있었다.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 중 어느 누구도 총장 후보자들이 누구였는지, 총장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관에 따르면 총장은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에서 추천된 후보자를 이사회가 선임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승인하는데, 총추위는 물론 총추위 규정 자체도 없었다. 귀신이 유니스트 총장을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곧 유니스트는 과학기술원(과기원) 전환 이후 두 번째 총장을 뽑아야 한다. 2018년 5월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은 다른 과기원과 대학의 총장 선출 규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후, 모든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추위 구성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비공식 면담에서 과기정통부는 다른 과기원, 즉 한국과기원(카이스트), 광주과기원(지스트), 대구경북과기원(디지스트)의 규정처럼 “학생과 직원은 총추위에 참여할 수 없으며, 교수 참여도 최소한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과기원은 공공기관으로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니 총장은 기관장에 해당하며, 기관장인 총장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유니스트에는 국내외 석학들을 포함, 유니스트의 발전을 고민하는 많은 교수들이 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본인들이 유니스트 발전에 대해 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 연구의 자유는 어디 있냐고 묻고 싶다. 

카이스트 등 다른 과기원에서도 정부의 일방적 총장 선출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2018년 디지스트 총장은 내부고발로 장기간의 과기정통부 감사를 받고 결국 사임했다. 그는 정부가 임명한 이사와 이사장이 추천한 인사, 그리고 과기정통부 관료로 구성된 총추위에서 총장 후보자가 된 후 이사회가 선임하고 과기정통부 장관이 승인한 총장이었다. 현 카이스트 총장도 2017년 초에 유사한 제도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소위 ‘친박’이라서 총장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그 역시 디지스트 총장 재직 시의 문제로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받는 등 사임 압박을 받았다. 이런 식이라면 현 총장 선출 제도하에서 과기원 총장들은 본인을 선택한 정권의 눈치만 보게 된다. 결국 구성원의 ‘참여’와 지지에 기반하지 않은 총장은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이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에 절망하고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가 탄생에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과기원의 총장 선출 건만 놓고 보면 과연 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작금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소통과 민주적 참여를 요구한다.

과기원은 국민의 자산이며, 학생은 미래의 인재로, 신임 교수는 석학으로, 오늘의 스타트업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열매는 국민의 몫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과기원도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총추위를 구성하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을 이끌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것이 유니스트 초대 총장을 선출했던 귀신을 다시 찾아가 훌륭한 총장을 보내달라고 매달리는 것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길임이 분명하다.

<나명수 | 유니스트 교수·총추위 규정 제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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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고 정운영씨(1944~2005)를 나는 교수로 기억한다. 큰 키에 중후한 목소리, 조리 있는 말솜씨.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결혼도 못했을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유머로 답하던 여유까지. 30여년 전 강의실에서 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무슨 얘기를 했을까. 요즘의 상황이 답답해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그가 198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 눈에 띄었다. ‘성장, 안정, 복지…그래서?’라는 제목이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에게 각기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가지는 걱정, 그것은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지닌 고민의 내용을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데 고루 이로운 날씨가 없듯이, 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 두루 유익한 경제정책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좋고, 노동자도 좋은 정책이 있으면 세상에 다툼이 없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십수년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파이를 키워야 한다”였고,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낙수효과)이었다. 요지는 ‘대기업이 잘되면 노동자까지 혜택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대기업이 많이 성장했고, 파이가 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헬조선’이란 말은 일상어가 됐다. 그 영향으로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폈다. 낙수효과 대신 분수효과를 노린 정책이다. 공약대로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다.

보수의 불만이 엄청나다. 기승전-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모양새다. 최근 고용 사정이 나빠지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1% 인상되면 고용이 0.05%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3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0.7명 순증시키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이 제조업과 도소매업에서 고용을 감소시켰지만 전 산업 고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25~65세 일자리 21만개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만 강조한다. 경기변동이 고용에 미친 영향 역시 이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출처:경향신문DB

며칠 뒤면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된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5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지난달에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주택가의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에게는 노인기초연금 25만원 외에 받은 정부 지원금이 없었다. 한국 경제는 지난 5년 동안에도 성장했지만 이들에게는 온기가 미치지 않았다. 성장 없이 복지 없다는 주장을 배척할 수는 없지만, 무너진 낙수효과의 신화에 다시 기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운영 교수는 칼럼에서 “이제 사회의 생산력은 같이 나누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발전했고, … 복지에 관한 한 정치 권력의 의지와 결단만이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다”며 당시 정부에 대해 ‘의지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다시 ‘의지의 점검’을 당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지’ 하면 떠오르는 얘기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90세 노인 우공은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라는 말로 천제를 감동시켜 산을 옮기게 한다. 이 정권에서 안되면 다음 정권, 아니면 그다음 정권에서는 원하는 사회를 이룰 것이라며 밀고 나가면 최소한 지금보다 세상이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건은 있다. 정운영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우파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느냐.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맞는 말이다. 가진 사람들의 것을 못 가진 사람들과 나눠 갖게 만들려고 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을’인 가맹점주와 또 다른 ‘을’인 아르바이트생 사이의 싸움으로 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히 교묘하다. 이들과의 논쟁에서 실력으로 이기지 못하면 사회를 바꿀 동력을 얻을 수 없다. 다행히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보다 공부를 훨씬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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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 1960년대 초 10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산업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수도권 집중화 문제는 물론 지역 간 발전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소득 양극화와 부의 편중 현상도 심화되었다.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제조업 중심,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정책이 낳은 결과물들이다. 불균형 성장이 남긴 상흔은 농업과 농촌에서 특히 현저히 나타났다. 농업이 장기 성장정체에 빠지면서 농가소득은 도시의 60% 수준까지 추락했다. 텅 빈 농촌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기고,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지도 오래다. 전국 읍·면 농촌지역의 43%가 소멸위험지역이라는 암울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들 불균형 성장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그래서 역대 정부마다 국가균형발전을 국정 핵심과제로 내세워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산업화 시대의 효율성과 경쟁력, 시장논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벌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 지속되고 수도권의 신도시 건설과 아파트 공급사업이 반복돼왔다. 그러나 효율성과 경쟁논리에 따라 정책의 초점을 수도권과 도시지역에 집중하는 한 계층 간 소득 불평등과 지역격차 해결은 어렵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정비전으로 설정하고 포용적 성장을 통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포용국가 비전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의 균형적 발전이 중요하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는 물론 교육, 의료, 문화, 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계층 간, 지역 간의 합리적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에는 국토의 80%를 차지하는 농·산촌의 균형적 발전과 농촌주민들의 삶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처럼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 그리고 도시민 중심의 성장과 발전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국가균형발전이 아니다. 일찍이 토다로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통합적 농촌개발정책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다시 농·산촌으로 오도록 만드는 균형성장, 균형발전이어야 한다. 농업과 농촌에 더 많은 투자와 범국가적 관심이 집중되어야 하고 국가예산도 대폭 늘려 종합적인 농업·농촌 발전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자원을 이용한 융복합산업화 정책 추진과 마을기업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도시의 60%까지 추락한 농가소득을 다시 과거 수준으로 회복시키고 청년들이 찾는 복지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고 세상은 인간과 기계가 상존하는 초연결·초지능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구조화되는 뉴노멀 시대에 드론과 로봇, 무인트랙터가 상용화되는 미래에는 농업·농촌이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최근 몇 년 사이 귀농·귀촌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농촌지역의 고용도 늘고 있다. 농업·농촌의 가치에 대한 국민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정밀농업과 스마트팜 기술시대를 앞당기고,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조화된 농·산촌을 가꾸어 함께 잘살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그런 국가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균형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잘살고자 하는 공동체적 가치이고 철학의 문제이다. 포용국가로 가기 위한 국가균형발전의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용기 | 영남대 교수 식품자원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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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13일 ‘2019년 1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월 취업자 수는 2623만2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9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수는 재작년 30만명 수준의 증가에서 지난해 10만명 정도로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올해 15만명 증가를 목표로 했는데, 첫 달부터 암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연히 실업자 증가와 실업률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실업자는 20만명 이상 급격히 늘면서 122만4000명에 달해 2000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1월 기준)를 기록했다. 실업률도 4.5%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취업자 수가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기저효과에, 노인일자리사업 조기실시에 따른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고용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는 모습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한국 경제의 ‘허리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와 40대의 고용 악화다. 경제 버팀목들의 실업이 늘어나는 것은 가계를 불안하게 하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악재다. 이번에 청년층의 실업률 하락이란 긍정적 지표도 나왔지만 허리층 붕괴의 충격을 상쇄하지는 못한다. 제조업 분야의 취업자 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해 4월 감소로 전환된 뒤 그 폭이 확대되고 있다. 올 1월에는 취업자 수가 17만명 줄어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작금의 국내외 경제 여건으로 볼 때 조기에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고용정보원은 올해 실업률이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실업률 4%를 면하기 힘들게 된다. 홍남기 부총리는 일자리 사정 악화가 엄중한 상황임을 피력하면서 “일자리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일자리 창출을 위해 산업별 경쟁력 제고방안과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정부가 일자리위원회까지 만들어 최우선으로 일자리 늘리기를 추진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면서 혁신성장 정책을 통해 성장과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해를 넘겨서도 성장과 일자리 지표 모두 역주행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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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어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 내용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 고향 촌구석에 고속전철역이라니! 9년 뒤면 설, 추석에 편히 갈 수 있다며 설레야 하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게 필요한 짓인가 싶어서다.

자, 대한민국 지도를 펴보자. 당신이 대통령, 장관이라면 어디에다 뭘 만들어주겠는가. 일차적 기준점은 비용·편익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그중에서도 강남권에 뭐든 깔아야 손해를 안 본다. 지방도 대도시 중심으로 엇비슷하다.

왜냐. 가장 욕을 덜 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는 사람이 가장 많다. 비용·편익이 높게 나온다. 이렇게 개발해온 게 그동안의 관성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남 골짜기를 관통하는 고속철이라니,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다. 균형발전을 향한 원대한 기러기, 고니의 뜻을 어찌 제비, 참새가 알겠냐마는.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결국 문재인 정부도 “구시대적 토건공화국”이니 하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일단 경제가 안 좋다고들 난리니 몸이 달았다. 사실 지금 경제 문제라는 게 굉장히 구조적인 거란 사실은 솔직히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재인 정부 잘못만이 아니다. 반도체 고점론이 나오지만 워낙 ‘비정상적 호황’이었다. 위기론에 떠밀려 삼성에 너무 끌려가지 마라. 자동차 산업이 힘든다는 것 또한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논란의 근원도 실은 따로 있다. 과도한 자영업 비중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마치 이런 일들 때문에 경제를 망친 정부라는 ‘누명’을 자처하고, 왼쪽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려는 게 아닌가.

요새 정부·여당 쪽 인사들 움직임을 보면 심히 걱정스럽다. 툭하면 “우리는 반기업이 아니라 친기업”이란 말을 달고 산다. 즉 재벌개혁 하랬더니 그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기억한다. 참여정부는 관료와 재벌에 포섭돼 뜻하던 바를 채 이루지 못했다고.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교육을 개혁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로 대한민국호 방향키를 틀자는 게 2년 전 겨울에 터져나온 서민대중의 절규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이 얼마나 뛰었는가. 근래 좀 가라앉았다고 안도하고, 성장률 숫자 올리겠다고 땅부터 파겠단다. 성장률 3%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든, 누구를 위한 숫자인가.

국토에 삽질을 해대면 당분간 일자리가 늘고 성장률도 올라갈 것이다. 그걸로 총선과 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도 있다.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 명분도 균형발전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쓸 종잣돈을 4대강에 쏟아부었다”며 비판해온 세력이 누구더라. 이런 식이면 유권자들 선택은 늘 빤하다. 그냥 자기 지역에 도로, 철도 많이 깔아주겠다는 놈 찍을 뿐이다. 진보·보수가 무슨 대수냐.

한번 짚어보자. 이른바 7호선의 양주신도시 연장이 왜 필요한가. 광역고속전철인 GTX는 3개나 깔아야 하나. 원인은 베드타운을 너무 크게, 외곽에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지역균형발전은 안 해놓은 채 잠자는 도시만 잔뜩 만든다. 그러곤 ‘균형발전’이란 억지논리를 내세워 도로, 철도를 까는 짓거리를 해온 게 역대 정부다. 예컨대 GTX-B 노선을 깔 게 아니라 인천 남동공단이나 마석 등지에 판교 2테크노밸리 같은 걸 만들어야지. 현실은? 또 GTX 공약을 총선, 대선용으로 우려먹을 일만 남았다. 유권자에겐 ‘희망고문’의 시작이다. ‘이부망천’이란 말이 다시 나돌도록 시민들 판단을 흐리는 정치다.

겉은 생채기가 나도 금방 낫는다. 그러나 속이 허물어지면 간단찮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친기업 행보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루비콘강을 건너는 신호로 보는 이들이 적잖다. 몇 발짝 더 내디디면 돌아나오지 못할 게다. 그 후과는 누구의 몫인가.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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