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검사가 검찰총장과 검사장급 고위간부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국민 고발’을 했다. 한국 검찰 사상 최초일 터다. 2월18일자 경향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쓴 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이야기다. 임 부장검사는 검사장 3인이 2015년 서울남부지검의 성폭력 사건을 덮었고, 문무일 총장은 이들을 징계·처벌하지 않았다며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 검사들을 고발합니다. 주권자 국민 여러분이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더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시민 반응은 뜨거웠으나, 검찰은 조용하다. 어떠한 공식 반응도 없다. 검찰 내부망에도 수사관 2인이 글을 올렸을 뿐, 검사의 글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임 부장검사는 전화 통화에서 “반응이 전혀 없어 당혹스럽다. 검찰 조직의 불건강성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참담하다”고 말했다. 지금 임은정은 ‘투명인간’이다.

검찰 내 성추행과 은폐 의혹 등을 제기한 임은정 검사가 참고인 진술을 위해 2018년 2월6일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꾸려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의 서울남부지검으로 가본다. ㄱ부장검사가 여성 검사를 아이스크림에 빗대 성희롱했다가 사표를 냈다. 감찰이나 징계 없이 ‘명예퇴직’ 처리됐다. 2억원 가까운 명퇴수당까지 챙겼다. 곧이어 같은 검찰청의 ㄴ검사가 퇴직했다. 전직 검사장의 아들이자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귀족 검사였다.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역시 징계를 받지 않고 옷을 벗었다. 미스터리는 지난해 서지현 검사의 ‘미투’를 계기로 풀렸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조사단이 재조사에 나서 두 검사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것이다. 하지만 대검 감찰라인의 은폐 의혹은 규명되지 못했다. ㄱ부장검사는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고, ㄴ검사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 중이다.

검찰 수뇌부는 뒤늦게나마 이들을 기소했다며 안도했을까. 그랬다면 성급했다.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온 임 부장검사는 사건 당시 은폐 의혹에 연루된 간부들에 대한 감찰을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비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임 부장검사는 김진태 전 총장 등 전·현직 간부들을 직권남용·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10개월이 지났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임 부장검사가 칼럼을 쓴 이유다.

1999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한 검사가 여성 기자를 성추행해 물의를 빚었다. 법무부는 ‘경근신’ 25일의 징계를 내렸다. “견책보다 무겁고 중근신보다 가벼운 것으로 매일 반성문을 쓰며 과오를 뉘우쳐야 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미 전주지검으로 ‘좌천성 전보’된 점을 감안했다고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솜방망이 징계였다.

스무 해가 흘렀다. 대통령이 네 번 바뀌었다. 국민소득은 1만282달러에서 3만1000달러(2018년 추정치)로 늘었다.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SBS에 따르면, 임 부장검사가 실명을 언급했던 한 간부는 “(해당 칼럼이) 사건이 잊히길 원하는 피해자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를 그토록 염려했다면, 사건 발생 직후 신속히 감찰·수사했어야 옳다. 그때는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서 이제 와 피해자 뒤에 숨으려 하나.

검찰이 제자리걸음인 건 젠더감수성뿐이 아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 사건에 관여했던 일부 전·현직 검사들은 조사를 거부하거나 민형사 불복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발해왔다. 용산참사나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폭력’ 사건의 진상조사 지연은 이와 무관치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검찰의 자치경찰제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의 수사·기소·영장청구권은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인데, 검사 개인이 누리는 천부인권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만의 성채는 여전하다.

<PD수첩> 관련자 기소 지시를 거부하고 검찰을 떠난 임수빈 전 부장검사는 <검사는 문관이다>라는 책에서 고백했다. “검찰은 ‘무오류’ 신화 속에 산다. 검찰에 몸을 담았을 때는 전체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의 처리에만 문제가 있어 비판받는다고 치부했다. 떠난 뒤 깨달았다. 검찰권은 업무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었다. 검사들이 ‘버티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는 것 같은데 이제 그렇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은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대선자금 수사로 지지를 받았다. 검찰은 ‘국민검사’를 향한 갈채를 등에 업고 ‘개혁당할’ 위기를 돌파했다. 그 결과는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수사였다. “세계 최대 검찰청”(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이끄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으로 유명하다. 차용하면 “시민은 더 이상 ‘국민검사’를 믿지 않는다”. 믿을 건 법과 제도와 시스템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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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여성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 504곳을 대상으로 다음달 27일까지 성폭력 피해 실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 차원에서 여성 이주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점검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노동부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집중 점검해 법규 위반 사업장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 경기 화성시에서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문모씨는 태국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1월에는 경기 안성의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2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50대 남성의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 살해됐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는 농촌지역에서 더욱 심각하다. 올해 1월 경기 포천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은 농장주에게 수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의정부노동청에 제출했다. 농촌지역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도 신고는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201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농촌지역 여성 이주노동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지만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10% 미만에 그쳤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겪고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족쇄로 작용한 탓이 크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의 승인을 얻은 이주노동자에 한해 3년간 최대 3차례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성폭력을 당해도 가해자가 사업주이거나 동료인 경우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말이 서툴고 국내 법을 잘 모르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 구제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성범죄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는 엄벌에 처하고,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도 취소해야 마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종속되지 않도록 고용허가제를 개정하는 일이다. 더 이상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에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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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다닐 때 들은 얘기다. 인문대 신임 교수가 술자리에서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대학원생들이 그 교수에게 찾아가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노라 경고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예 술자리에 나타나질 않았단다. 그 교수가 누구인지, 그 후로도 문제가 없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30여년 전 흘려들었던 이 얘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음은 교수의 잘못된 행동에 즉각 응분의 조치를 취한 학생들의 행동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당시 음대에도 성추행을 일삼는 교수가 있었다. 학생회가 이 문제를 공식 제기했지만 학교는 그를 잠시 해외에 나가있게 하는 걸로 무마했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복귀했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교수의 성희롱을 고발한 한 조교의 용기로 대학 내 성희롱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학사회의 권력형 성범죄는 여전하고 피해자 다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최고 권력기관인 검찰 내 여검사들조차도 성추행 가해자를 폭로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에서, 하물며 아무런 힘도 없는 학생들이 교수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에 제대로 대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수년 전 교수들의 성추행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파면에 이른 경우도 있었지만, 성희롱을 가볍게 여기는 남성중심 문화, 성추행이 밝혀져도 기껏해야 정직 몇 달에 그치는 교수사회의 온정주의는 달라지지 않았다.

2016년 가을,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가 대두되며 피해자들이 발언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단, 미술계, 영화계는 물론이고, 예술학교에도 피해자들의 고발이 쏟아졌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계는 조용했다. 피해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 고발이 어려운 집단이어서다. 오랜 기간 일대일 레슨으로 형성된 교수와의 수직적 관계는 평생 음악 활동의 기반이고 그 관계를 벗어나 살아남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년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제자 성추행 문제로 파면에 이른 음대 교수를 제자들이 옹호하며 피케팅을 하고 거리음악회를 열었던 것은 이런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다.

일부 음대 교수들의 행태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지만, 영향력이 큰 인물일수록 학생들도 그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기에 내부 문제는 밖으로 발설되지 않는다. 지난 몇년간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음대 교수들의 폭언, 폭행, 티켓 강매, 성희롱, 성추행 사건들은 안에서 곪고 곪아 터져 나온 것들이었다. 문제가 드러나야 개선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런 논란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없다. 뼈아픈 반성을 하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으로는 그 집단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문제는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잘못된 관행들을 학생들이 당연시하거나 체념해버리고 가해자의 입장에서 침묵하도록 강요받는 데 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에 민감하지 못했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목소리 덕에 간과했던 문제를 깨달았고, 여전히 강고한 편견에 맞서 싸우게 될 그들 옆에서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하여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권력관계에서 약자에 놓인 수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인 것이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세계적인 노 지휘자 두 사람의 수십년 전 성범죄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대개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세월은 가고 세상은 바뀌며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화한다. 뒤늦게 잘못을 뉘우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다. 성추행과 성폭행 피해자 156명의 증언을 일일이 경청하고 격려하며 가해자에게 175년을 선고한 미국 여성 판사의 얘기가 단지 먼 나라의 일이 아니기를… 앞서 용기를 낸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우리를 일깨운다.

<이희경 음악학자·한예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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