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유물을 왜 기어코 부활시키려는 겁니까?” “정말 그 이유를 모르세요?”

황교안 국무총리는 답답해했다. 2015년 10월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그날 아침 보수신문 두 곳에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최종 결정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수 여론이 반대하는 국정화를 유보하고 ‘검정 강화’로 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마침 중견 언론인들의 총리 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국정화 강행으로 선회한 배경에 질문이 집중됐다. 경향신문은 특히 국정화를 강력히 비판해온 터다. 그래서 비슷한 질문을 거듭했던 것 같다. 즉답을 피하던 총리가 결국 한마디 했다.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뜻이 확고한데 누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가 생략됐음을 알았다. 내각을 통할하는 정권의 2인자가 당당하게 ‘무소신’을 피력하는 데 놀랐다.

황교안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당대표 선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2022년 대선을 향해 시동을 건 모습이다. 그의 정치활동은 자유다. 다만 면면을 톺아볼 책임감은 느낀다. 입당 이후 공개적으로 밝힌 생각부터 살핀다(괄호 안은 질문이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국회 본청 자유한국당 회의실에서 입당식을 하기 위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입당 기자회견 “(국정농단의 공범 아닌가) 지난 정부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국가적 시련으로 국민들이 심려를 갖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잘못됐다고 보나) 지금 꼭 필요한 건 국민통합이다.”

16일 조선일보 인터뷰 “(탄핵에 대해 어떤 생각인가) 박 전 대통령이 법적 조치를 받아 수용된 상황은 안타깝고 불편하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총리였는데 책임을 느끼지 않나) 용서를 구할 부분은 구하며 진정성 있게 나가겠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공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가 내려져야 미래로 갈 수 있다.”

발화자의 고뇌가 짐작된다. ‘국정농단 공범론’을 비켜가고 싶지만 ‘태극기 세력’의 표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막연하고 모호하다. 송구스럽다면서도 두루뭉술하고, 탄핵이 잘못이냐 묻는데 통합이 필요하다고 동문서답한다. 왜 정치를 하려는 건지, 한국당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건지, 통합 대상은 누구인지도 분명치 않다. “자신을 낮춰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조선일보 인터뷰)는 약속을 내놓긴 했다. 시민은 기억력이 좋다. 총리 시절 관용차를 탄 채 서울역 KTX 플랫폼에 진입하고, 노인복지관에 갔을 때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잡아놓는 바람에 노인들이 불편을 겪은 일을 잊지 않고 있다.

황교안은 박근혜 정권을 떠받친 핵심 조연이었다. 주역 최순실에야 못 미친다 해도, 그를 ‘아바타’나 ‘가게무샤(대역)’로만 치부하는 일은 실례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막았다. 수사팀의 울타리이던 채동욱 검찰총장도 찍어냈다. 혼외자 의혹이 터진 후 채동욱을 만난 황교안은 “변호사가 먹고살 만큼 돈벌이는 된다”며 사직을 압박했다(한겨레 2017년 12월23일자). 그래도 사표를 내지 않자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 지시를 내렸다. 그는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도 진두지휘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가 ‘유병언을 못 잡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질책하자 당일 검찰에 대책회의 개최를 지시했다. 회의 결과 유병언 수색에 군이 동원되고 반상회까지 열렸다. 

남다른 충성심을 인정받아 총리에 올랐고, 총리가 된 뒤에는 더욱 충성스러워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가 발표된 직후 박근혜는 “불필요한 논쟁을 멈추라”는 지침만 내리고 출국했다. 그 이튿날 성주에 간 황교안은 달걀과 물병 세례를 받았다. 보수언론에 ‘외부세력론’을 꺼내들 명분을 준 셈이다.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정농단을 수사해온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요청을 거부하며 끝까지 박근혜 편에 섰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황교안이 장관과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저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없다는 데 있다. 만약 최순실의 행각 자체를 몰랐다면 무능의 증거다. 홍준표는 “황교안은 박근혜가 탄핵될 때 정치적으로 같이 탄핵된 사람”(월간중앙 인터뷰)이라고 했다. 말에 사심이 섞여 있음을 알면서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황교안의 귀환은 박근혜의 귀환이다.

황교안은 “지금 대한민국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4년 전 들은 이야기를 돌려드린다. “정말 그(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세요?” 생략한 뒷부분도 알려드리겠다. ‘당신이 보고자 하는 미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6일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무사의 사찰은 2014년 6·4 지방선거 정국이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의 사전 계획과 청와대의 승인에 따라 지역 기무부대가 실종자 가족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찰 첩보를 수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에 대해 불법감청을 한 사실도 새로이 확인됐다. 밝혀진 것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더 많은 불법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다.

전익수 국방부 특별수사단장이 6일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수사는 기무사가 얼마나 철저히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박근혜 정권에 봉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무사가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 및 세월호 인양 포기를 정국 전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초 목적이 엇나갔으니 이후 활동의 불법성은 불문가지다. 기무사는 유가족은 물론 안산 단원고 학생까지 전방위로 사찰했다. 사이버 사찰도 서슴지 않았다. 적발되면 ‘실종자 가족으로 신분을 위장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기무사가 수사기관이 해야 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까지 나섰다는 점이다. 유 전 회장을 찾기 위해 은신처 근처에서 무차별적으로 무전을 감청했다. 간첩 잡는 장비를 엉뚱한 곳에 쓴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기무사를 향해 “최고의 부대”라고 칭찬했다. 이런 행태를 감안하면 기무사의 계엄령 발동 검토 문건은 단순한 서류상의 검토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고 나선 기무사가 시민을 총칼로 제압하겠다는 발상을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 (출처:경향신문DB)

아직도 기무사 해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수사결과를 보고도 기무사의 행위를 두둔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과거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지만 불법활동은 근절하지 못했다. 정권이 기무사 정보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해체한 취지를 견지해나가야 한다. 남은 것은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수사다. 미국에 체류 중인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을 하루속히 국내로 데려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한 판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먼 이국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와 후손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확정 판결이 5년이나 미뤄진 것은 유감스럽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판결의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원합의체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임을 전제로 내려진 일본 판결은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2012년 이 사건 첫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제1부도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또 다른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있는지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주권국가로서 지극히 온당한 결론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이다. 2012년 대법원이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이듬해 서울고법은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고 측의 재상고 이후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를 미뤘다. 그사이 피해자 4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선고공판에 나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씨(94)는 “혼자라 슬프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심리 지연 배경은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꾼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뒤늦게 결론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이 사건은 사법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은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속죄해야 옳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강제징용 손배 소송을 심리 중인 법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