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70주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12.10 [NGO 발언대]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
  2. 2018.08.20 [정동칼럼]수많은 ‘안희정들’에게

오늘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선언문 1조인 이 짧은 문장을 쓰면서 모든 사람이란 말을 반복해 되뇐다. ‘모든’에서 제외된 사람과 장소를 떠올린다. 인권을 거리와 농성장, 삶의 현장 곳곳에서 매일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투, 청소년 참정권, 난민 혐오와 인종차별 반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반대,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사람들. 또 높은 굴뚝에 선 파인텍 노동자와 최근까지 청와대 앞에서 단식노숙했던 잡월드 노동자…. 인권을 말하기 위한, 지키기 위한 무수한 싸움은 칼바람 부는 12월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은 제정이 지연된 채 11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페미니즘을 다시 쓴 인권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페미니즘으로 쓰는 인권선언 추진단 관계자들이 소수자에게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11월엔 1심에서 2명의 피고인이 각각 10년과 8년을 선고받았던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해 2심 고등군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2심 무죄 판결문엔 “실제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표현하지 않는 바, 다른 폭행 내지 협박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판결문은 피해자가 일관되게 진술하는 피해 사실을 믿지 않고 왜 피해자답게 저항하고 맞서지 않았는지를 질문한다. 폭행과 협박을 협소하게 해석하며, 상명하복이란 권위적인 군 조직문화와 남성 중심으로 젠더화된 공간에서 여군이 경험해야 하는 차별적 구조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군대 내 성폭력 사건 사법처리 및 징계 실태에 대한 직권조사’에 따르면 군사법원이 선고한 여군 대상 성폭력 사건 173건 가운데 10.34%가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는 일반법원의 1심 판결 선고유예비율 1.36%의 7배가 넘는다. 군사법원이 군대 내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와 역량이 없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반면 군형법은 92조의 6에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며 합의된 성관계일지라도 동성 간이면 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한다. 2017년엔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색출을 지시하는 인권침해가 벌어졌다. 군내 성폭력은 해결하지 못하지만 성소수자는 합법적으로 색출하며 차별해 왔다. 성소수자 여군은 복합적 차별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고인 ㄱ대위는 피해자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았고 “남성을 알게 해주겠다”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전환치료와 같은 폭력이며, 군내에서 성소수자 존재가 불법화될 때, 그가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도 정당화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 군인이고 싶다.” 피해자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럴 수 있으려면 가해자를 합당하게 처벌해야 하며, 군대도 인권에 예외없는 ‘모든’ 장소여야 한다. 군대가 인권에서 예외가 될 때 어떤 존재는 부정당하게 된다. 자신을 부정당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계속 장애인으로, 청소년으로, 난민으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노동자로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치료를 강요당하지 않고, 취약하다며 무조건 보호받지 않고, 위험한 존재라고 격리당하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요술봉일 순 없겠지만 ‘모든’에서 제외된 사람과 장소를 당당히 드러내는 기본적인 출발점임은 분명하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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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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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던 그래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폭력과 강간캠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 인권규약을 다시 쓰기 시작했던 그날, 그 정신을 기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국가기림의 날로 지정된 그날, 대통령이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전체 여성들의 성폭력과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한 그날, 대한민국은 당사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빚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선언한 그날,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고,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뻔뻔하게 선언했습니다. 사회적 타살을 감내하며 어렵게 나온 피해자들의 입을 다시 봉하는 판결을 감행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첫 정부 기념식을 마친 뒤 피해자인 김경애 할머니에게 인사하자 김 할머니가 문 대통령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날은 코소보, 예멘, 우간다, IS 성폭력 생존자들이 기림일을 맞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해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고 손잡던 날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이 나서서 조직적 성폭력의 의미를, 현실을, 그 참혹한 결과를 알리고 저항하며 세상을 바꾸자고 결의하던 날이었습니다. “한국의 강인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분들은 저희의 영웅이십니다. 견디기 힘들고, 가슴이 찢어질 듯하고, 끔찍하고, 고문과 같고, 위안이 되기 어려운 아픔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절망의 깊이 속에서도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영감이 됩니다”라고 말하며 연대를 다지던 그날,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들에게 입증을 요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발뺌하고 피해자의 행실과 자격을 묻고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심지어 없었던 일, 꾸며낸 일, ‘거짓말쟁이’ ‘더러운 ○○’라며 온갖 욕설과 수치심을 안겨 준 가해자들, 그리고 그 옹호자들과 힘겹게 싸워온 지난 세월을 서로 나누던 그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께서 여성들의 ‘광복’과 명예회복의 의미를 다시 확인시키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완벽히 둔갑시킨 판결문으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를 구분하며, 피해자의 행실을 의심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따지는 최악의 2차 가해로 전 세계 용감한 생존자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거리에 나섰습니다. 단순히 안희정씨 사건의 재판관들에게 항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가해행위, 편파수사, 편파판결, 편파보도를 규탄하려 모였습니다. 불법촬영·유포·소지·방조자들과 웹 하드 업체, 쾌락산업이란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여성 몸을 거래하는 자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처벌, 여자 화장실마다 뚫려 있는 ‘구멍’들의 실체 규명, 포털 사이트 댓글만 봐도 접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욕설과 비방에 대한 반성과 자제, #미투운동 이후에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는 무지하고도 공고한 남성연대체의 해산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최근 페미니즘이 왜곡되고 과격하게 변형되었다고 말씀하시지요?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다운 처우를 위해, 동등한 교육을 위해, 참정권을 위해,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동등하게 돌볼 권리와 책임을 위해, 질 좋은 공보육 시설을 위해, 재생산의 정의를 위해, 혼자든 누구와 함께하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거리에서 안전할 권리를 위해, 매 맞지 않기 위해,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특정한 집단이나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기 위해 군사훈련을 한 적도 가스실을 설치하거나 생체 실험을 하거나 집단 강간소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페미니즘 때문에 누가 일상이 두렵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다치고 강간당하고 죽었습니까. 무엇이 과격하고 위험한지요. 공정한 판단, 공정한 수사, 공정한 판결, 공정한 취재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입니다. 광복 73주년,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촛불혁명 2주년 이후에도 여성들에게 해방과 정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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