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년을 맞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2일 열렸다. 진보·개혁 지식인들의 모임인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어떻게 되었나’를 주제로 연 이 행사에서는 지난 2년의 경제정책에 냉정한 평가가 쏟아졌다. 발제자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이루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공정경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재벌개혁에는 소홀히 하면서 대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포기했다’ ‘사실상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으로 회귀했다’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강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던 재벌개혁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재벌개혁 당위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재벌중심 경제는 경쟁의 기회와 혁신의 유인이 적은 구조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도전할 기회가 줄고, 기술 탈취도 빈번히 일어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벌개혁은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정부의 개혁열차는 2년 전 출발점에서 크게 전진하지 못했다. 재벌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상법개정은 교착상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보수야당과 재계의 저항에 부딪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재벌의 사익편취를 방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도 마찬가지다. 이에 정부는 상법 개정안의 ‘우선순위 조정’, 공정거래법 ‘부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상법 개정, 공정경제의 최우선 과제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반쪽 개혁’이라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칼날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4%는 ‘재벌이 한국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 불평등을 야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은 86%에 달했다. 재벌개혁이 ‘정권 출범 초기 개혁 드라이브 기회를 놓쳤다’거나 ‘예상치 않았던 경제 부진에 발목이 잡혔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집권 3년차인 올해마저 그대로 넘어간다면 재벌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위한 방안을 찾아 전력투구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로 뒷걸음치지 않고 경제체질을 바꾸고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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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벚꽃 대선을 치르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보면서 ‘대통령이 복이 많다’고 했다. 성장률도 높아지는 데다 시민들의 높은 지지까지 있으니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수요를 일으키고, 혁신성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경제시스템도 공정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소득 증가를 수요와 공급,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늘리기’를 청와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일자리 전광판까지 세웠다.

그런 뒤 2년이 흘렀다. 기대는 빗나갔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과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혁신성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실상 ‘공회전’ 중이다. 경제성장률도 직전 정부의 성장률에 못 미친다. 전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2017년 GDP성장률이 3.1%로 가장 높았고 지난해 2.7%, 올해는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성장률 하락 시점이 같다는 점은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일자리 실적은 극히 부진하다. 30만명대 증가에서 지난해에는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인구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구 감소 영향도 있으나, 일자리 감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경제의 허리층인 30·40대와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뼈아픈 부분이다. 벚꽃이 떨어지듯 지지도도 하락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피해왔다. 지난달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 증가세가 확대되고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각종 지표나 현장의 목소리와 다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정말로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심리인 만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한번 밀리면 끝까지 공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추경예산안을 내면서 스스로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높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무엇이 문제인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어젠다를 실행할 준비가 부족했고 책임감도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행에 앞서 고용시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처방전이라 해도 약물을 과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처음 처방이 과도했다면 조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책임자였던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도 최저임금을 그렇게 많이 올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럼 누가 책임지라는 말인가.

1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열린 '2019 용인시 일자리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청와대는 독주했고 소통은 부재했다. 출범 초기 청와대와 경제부총리의 불협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어 경제수장이 바뀐 뒤에는 잡음은 없어졌으나 정부가 청와대의 실행부서가 되었다. 각 부처가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는 늦어진 데다 11개 부처는 서면보고로 대체했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지만 사라졌다. 또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기업은 좋든 싫든 대화의 상대다. 그런데 적폐라는 프레임으로 대화는 실종됐다. 간간이 ‘보여주기용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재벌개혁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와 대통령의 대화가 이뤄진 건 올해 들어서다. 대화와 소통으로 의견을 나누고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 수 있으나 그 길이 막혔다.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서 조급증에 빠졌다. 한방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게 토건사업이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해 54조7000억원, 생활SOC 사업에 48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을 돌면서 요청받은 지역개발 사업이 134조원에 이른다. 다음 세대에 짐이 될 사업들이다. 4대강 사업 22조원을 비난하던 여당이 맞는지 싶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건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홀대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4분기 빈부격차는 분기 기준으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피해를 입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두번째 벚꽃이 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사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한번 해체된 가계의 ‘경제적 부활’이 힘들다는 것은 이미 외환위기가 교훈으로 남긴 바 있다. 경제는 고상한 구호가 아니라 밥의 문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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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했던 고 정운영씨(1944~2005)를 나는 교수로 기억한다. 큰 키에 중후한 목소리, 조리 있는 말솜씨.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결혼도 못했을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유머로 답하던 여유까지. 30여년 전 강의실에서 본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한국의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던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무슨 얘기를 했을까. 요즘의 상황이 답답해 인터넷을 찾아보는데 그가 1988년 8월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이 눈에 띄었다. ‘성장, 안정, 복지…그래서?’라는 제목이다.

“우산 장수와 나막신 장수에게 각기 딸을 시집보낸 부모가 가지는 걱정, 그것은 경제정책의 입안자들이 지닌 고민의 내용을 아주 잘 설명해 준다. 우산과 나막신을 파는 데 고루 이로운 날씨가 없듯이, 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 두루 유익한 경제정책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좋고, 노동자도 좋은 정책이 있으면 세상에 다툼이 없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십수년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파이를 키워야 한다”였고,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낙수효과)이었다. 요지는 ‘대기업이 잘되면 노동자까지 혜택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대기업이 많이 성장했고, 파이가 커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헬조선’이란 말은 일상어가 됐다. 그 영향으로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폈다. 낙수효과 대신 분수효과를 노린 정책이다. 공약대로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다.

보수의 불만이 엄청나다. 기승전-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모양새다. 최근 고용 사정이 나빠지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1% 인상되면 고용이 0.05%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3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0.7명 순증시키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이 제조업과 도소매업에서 고용을 감소시켰지만 전 산업 고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25~65세 일자리 21만개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만 강조한다. 경기변동이 고용에 미친 영향 역시 이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출처:경향신문DB

며칠 뒤면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된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5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지난달에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주택가의 한 반지하 월세방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에게는 노인기초연금 25만원 외에 받은 정부 지원금이 없었다. 한국 경제는 지난 5년 동안에도 성장했지만 이들에게는 온기가 미치지 않았다. 성장 없이 복지 없다는 주장을 배척할 수는 없지만, 무너진 낙수효과의 신화에 다시 기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정운영 교수는 칼럼에서 “이제 사회의 생산력은 같이 나누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발전했고, … 복지에 관한 한 정치 권력의 의지와 결단만이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다”며 당시 정부에 대해 ‘의지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살아 있다면 다시 ‘의지의 점검’을 당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지’ 하면 떠오르는 얘기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90세 노인 우공은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라는 말로 천제를 감동시켜 산을 옮기게 한다. 이 정권에서 안되면 다음 정권, 아니면 그다음 정권에서는 원하는 사회를 이룰 것이라며 밀고 나가면 최소한 지금보다 세상이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건은 있다. 정운영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우파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느냐. 여러분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맞는 말이다. 가진 사람들의 것을 못 가진 사람들과 나눠 갖게 만들려고 하는 최저임금 인상을,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을’인 가맹점주와 또 다른 ‘을’인 아르바이트생 사이의 싸움으로 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히 교묘하다. 이들과의 논쟁에서 실력으로 이기지 못하면 사회를 바꿀 동력을 얻을 수 없다. 다행히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보다 공부를 훨씬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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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겐 너무도 간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성공적 수립을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 승리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가파르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반대로 민주당이 이긴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트럼프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과정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 문제 때문에 세계의 우환 거리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의 복지국가 체계를 만들었던 뉴딜 이후의 근간적 사회경제 구조를 흔들면서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숱한 하층 노동자 및 실업자 계층을 양산해 냈는데, 민주당은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용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했고, 그사이 극우 포퓰리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포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중간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을 지지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의 헤르츠 아리나에서 열린 유세집회에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에스테로_AFP연합뉴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불평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그 완화를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극복해 내었다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전할 거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불평등은 단순히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체계를 갖춘 포용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증세나 부동산 보유세 강화같이 복지 확충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결정적 조처들 앞에서 늘 머뭇거리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주의 깊고 실효성 있는 실천이다. 단기적인 지지율 관리를 넘어 긴 호흡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을 생각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도 놓쳐서는 안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이라는 ‘절차주의적 공화국’이 낳은 ‘민주주의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는 진작부터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이 공정한 절차만 강조하며 정치 과정에서 모든 도덕적 지향을 몰아내려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시장논리가 들어서 지배하고 결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 걱정했다. 샌델이 볼 때 정치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애써 괄호 속에 넣어 두려고만 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에선 결국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언사들만이 대중들을 사로잡게 될 터였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미국 우선’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보면, 샌델은 오래전부터 그의 등장을 예견했던 셈이다.

물론 우리 민주주의는 미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는 오랜 성리학적 전통의 영향 탓인지 미국과는 달리 오히려 정치를 온통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재단하는 도덕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도덕은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법과 공정한 절차도 너무 자주 무시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절차주의의 한계에 대한 샌델의 경고를 약간 초점을 달리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조밀하게 잘 짜인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체계를 갖추었지만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자를 제대로 걸러내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와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적들로부터 지켜내려 하며 삶의 지향 자체를 기꺼이 거기에 맞추어 내려는 시민들의 태도가 사회적 습관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살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치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개혁만큼이나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도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을 통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고 자랑하지만, 예컨대 절대 다수의 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제주도에 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수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 한국판 트럼프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교육의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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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에서 모처럼 울림이 있는 정책을 내놓았다. 여당에선 “전근대적이고 해괴망측”하다며 비아냥댔지만, 출산주도성장 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길을 언어유희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제안의 핵심은 많은 사람이 비난하듯 여성들을 출산 ATM으로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도, 제안자는 몰랐겠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에 스웨덴,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해 선별복지를 넘어 보편복지로 가자는 것이다.

[시사 2판4판]사람이 먼저다 (출처:경향신문DB)

자유한국당의 제안대로 아기를 낳으면 2000만원, 20세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매년 400만원을 지급한다면 1년에 투입되어야 할 예산은 45조원 정도이다. 큰돈처럼 보이지만, 보편복지를 시행하는 유럽 선진국이 아이 양육지원금으로 사용하는 돈에 비하면 얼마 안된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해 해마다 25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다. 프랑스에서도 그에 맞먹는 예산을 사용한다. 여기에 고등학교뿐 아니라 국공립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 투입하는 예산까지 더하면 이들 나라에서는 아이 하나가 커가는 동안 우리보다 훨씬 많은 돈을 사용하게 된다. 이에 비하면 45조원은 보편복지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지불해야 하는 통과비용 정도에 불과하다. 이 길목의 통과를 돕겠다는 것이 야당의 출산주도성장이다.

여당에서는 출산주도성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장난으로만 보는 것 같다. 말장난에 현혹돼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 터인데, 자유한국당에서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출산주도성장은 사실 소득주도성장의 각론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소득주도성장의 대항담론을 내놓았다고 의기양양해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들어가보면 소득주도성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가 둘 있는 가정에 매달 70만원 가까운 돈이 지급되면 이들 가정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고 이것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 돈을 확보하기 위해 고소득자와 지대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두면 소득분배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출산주도성장이야말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각론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여당이 야당 원내대표의 현 정부에 대한 수준 낮은 비아냥으로 가득 찬 연설 중에 튀어나온 출산주도성장을 거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여당이 야당과의 협치를 모색한다면 진정성이 의심되더라도 출산주도성장을 ‘덜컥’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아마 야당도 대통령의 큰 관심사인 판문점선언 비준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출산율은 선진산업국가가 되어 에너지소비가 크게 늘어나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 중에서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출산율이 높은 나라에 속하는데, 두 나라의 출산율이 양육수당을 많이 주기 때문에 높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이미 20년 전부터, 스웨덴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출산율이 1.9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일인당 에너지소비도 늘어나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반면에 일인당 소득은 그때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고령사회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일본도 두 나라와 차이가 없다. 30년 전에 비해 소득은 크게 늘었지만 에너지소비는 변동이 거의 없고, 출산율은 1.4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30년 전 1.7 수준이었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인당 에너지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30년 전에 비해 3배가량 늘어났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에선 아동 양육지원금을 꾸준히 늘려왔다. 그래도 출산율이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출산주도성장 정책을 펴더라도 출산율이 증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한국당의 제안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것이 보편복지를 본격적으로 열어주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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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획책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들은 국명을 ‘길리어드’라 바꾸고, 신정주의·전체주의·가부장제에 기반해 나라를 운영한다.

이곳에선 책이 사라진다. 화장품, 대중영화, 개성 있는 의상같이 쾌락을 주는 물건들도 찾을 수 없다. 공개처형이 부활해 가톨릭, 퀘이커 등 ‘이교도’의 시신이 거리에 내걸린다. 인간은 오직 신의 뜻, 혹은 신의 뜻이라고 가장된 국가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 길리어드에서 특히 영향받은 건 여성들의 삶이다. 길리어드는 주변국들과의 오랜 전쟁, 환경 오염 등의 영향으로 출산율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 길리어드에는 소수의 남성 ‘사령관’과 그들의 아내가 있다. 아내는 대부분 불임이기에, 조금이라도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은 사령관의 집에 ‘시녀’로 배속된다. 시녀는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을 잊은 채 ‘오브프레드’(‘프레드’의), ‘오브글렌’(‘글렌’의)처럼 사령관의 성(姓)을 이름으로 받고, 사령관의 아이를 임신할 의무를 지닌다. 물론 이 섹스엔 조금의 쾌락도 개입되어선 안된다. 사령관과 시녀의 섹스는 지금껏 그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기괴하다. 아내가 침대 머리맡에 사지를 벌린 채 자리하면 시녀는 그 다리 사이에 눕는다. 아내는 시녀의 두 손을 잡아, 두 여자가 하나임을 보여준다. 두 여자 모두 옷을 차려입었고, 시녀는 속옷만 벗은 상태다. 사령관은 시녀의 하반신 쪽에 자리해 할 일을 한다. 세 번의 기간 내에 임신하지 못하면, 시녀는 다른 시녀로 대체된다.

오랫동안 서가에 꽂아두고 잊고 있던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1985년작 SF <시녀 이야기>를 마침내 읽은 건 하나의 단어, 하나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단어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언급한 ‘출산주도성장’이다. 출산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대안으로,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2000만원, 성년까지 1억원의 수당을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각종 복지 수당을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던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바꿔 의아하고, ‘돈 주면 애 낳을 것’이라는 발상이 당황스럽다. 

이미지는 현실 세계에 나타난 ‘시녀’와 관련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의 의상을 입은 여성 시위대가 세계 곳곳에 출현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속 시녀 의상 그대로, 빨간 외투에 하얀 두건을 썼다. ‘시녀 시위대’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앞에 나타났고, 영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했다. 아일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선 낙태권 관련 시위에 등장했다. 시녀들은 때로 정치인과 법률가들이 자리 잡은 의회의 방청석에 나타나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소설 속에 묘사된 대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침묵했으나, 검은 양복의 남성들 사이에 채도 높은 빨간 의상만으로도 눈에 띄었다. 여성 문제, 특히 낙태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 ‘시녀 복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지난달 5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텔레비전 시리즈 ‘시녀 이야기’ 속 ‘시녀’ 복장을 한 시위대가 낙태권에 찬성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소설 <시녀 이야기> 속 아이 낳을 수 있는 여성은 ‘다리 둘 달린 자궁’이자 ‘아기를 담는 그릇’ 취급을 받고, 아이 낳을 수 없는 여성들은 ‘비여성’이라 불린다. 가임 여성은 워낙 적어 귀하게 여겨지지만, 그들은 인간이기에 귀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귀하다. 여성의 출산 능력은 여성 개인의 행복이나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된다. 일찌감치 애트우드는 ‘애 낳아서 애국하자’는 주장이 횡행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상상하고 경고했다. 33년이 지나 들려온 ‘출산주도성장’이란 해괴한 어휘엔 <시녀 이야기> 풍의 끔찍한 세계관이 깔려 있다. 김성태 의원의 제안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 애써 이해한다 하더라도, ‘출산주도성장’이란 발상에는 그 어떤 여성도 국가경쟁력이나 경제성장을 생각하며 아이를 낳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상식이 빠져 있다.

가녀리고 존귀한 생명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즐겁고 보람있다. 부모의 단점과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와 함께 한 삶을 보내는 것은 우주의 순환을 체험하는 것처럼 경이로운 일이다. 젊은 여성과 남성들이 이 기쁨을 포기하지 않도록,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라의 일이다. 냉소적으로 말해, 젊은이들이 생명체의 근본 목적인 출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크다고 할 수 있나.

붉은 복장의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낙태권 찬성론자는 말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 선물이지만,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이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온전히 부모의 선택과 기쁨을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국가는 빠져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달라.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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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는 등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의 고용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불황이 서비스업으로까지 번지는 경기적 요인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원인에 맞춰 당장의 추락한 고용지표를 회복시킬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용 여건을 개선할 중장기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2018 서울국제트래블마트 관광산업 취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 호텔을 찾은 구직자가 12일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는 3000명으로 지난 7월 5000명에 이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실업자는 1년 전보다 13만4000명 늘어난 113만3000명으로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36만4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청년(15~29세) 실업률도 10.0%로 8월 기준으로 1999년(10.7%) 이후 가장 높다. 무엇보다 도·소매업 취업자가 12만3000명 감소하는 등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불황으로 내수가 줄면서 서비스업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생 고용 등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드러난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날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당·청과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에둘러 표현해 오던 김 부총리가 속도조절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이미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바꿀 수 없고 최저임금 결정 제도의 개선 등을 예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부총리의 언급에 대해 “소득주도성장의 각론에 대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며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악화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저임금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 정책에서도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인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선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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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노동자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대한 일부 소상공인들의 우려에 보수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지난달 29일 광화문광장에서 소상공인단체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소상공인연합회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최저시급 1만원을 주장하는 노동자는 소상공인의 적이 아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본질을 외면하고 해법을 잘못 짚었다. 소상공인 생존권이 위태해진 근본적인 원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로 인한 소득격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60% 수준이다. 외환위기 시절 77% 수준에서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심각하다.

그 원인의 단초는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 소상공인 1만여명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 국민대회’를 열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규탄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당시 정부는 대기업의 수출 주도를 장려했고 대기업에 온갖 특혜를 주었다. 대기업은 고용인원을 감축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을’의 입장인 비정규직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도 뛰어들었다. 비정규직의 자영업 진출은 이때부터 가속화되었다. 또한 ‘을’들인 자영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적 양극화의 소외된 울타리에 남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30대 재벌 대기업 자산 유보금은 70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늘어난 유보금이 176조원을 넘는다. 서민들의 가계부채 또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은 자산 보유액이 늘고 있지만 골목상권까지 잠식하고 있다.

1996년 유통시장 전면 개방 후 대형마트, 백화점, 프리미엄 아웃렛, 복합쇼핑몰 등 대규모 점포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심지어 떡볶이 매장까지 체인화했다. 이로 인해 소상공인, 골목상권은 초토화됐다. 뿐만 아니라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권리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현실에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과도한 체인점 수수료로 인해 소상공 영세자영업자들은 초주검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소상공인 생존 문제는 시급 1만원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온갖 특혜로 자산을 축적한 ‘갑’인 재벌 대기업이 시장경제 침탈과 불공정거래 등으로 ‘을’들인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구조에 원인이 있다. 소상공인과 비정규직은 같은 ‘을’들로 동전의 양면이며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진심으로 서민, 소상공인,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보수정당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여야를 넘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맞물려 돌아갈 수 있도록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정재안 | 소상공자영업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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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오갈지라도 이견 자체를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관료들 간 갈등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문 정부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이 빚어지면서 한국경제의 한 리스크 요인이 돼 왔다. ‘늘공’(늘 공무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어공’(어쩌다 공무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얘기다.

앞서 청와대 개편에서 자리를 지킨 장 실장에 이어 8·30 개각에서 김 부총리가 유임되면서 둘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모양새다. 그럼에도 충돌지점을 찾아내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두 사람을 ‘김&장 갈등’의 프레임에 가둬놓으려는 세력이 엄존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회동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사실 문 정부 출범 초부터 두 사람 간 갈등은 예고된 측면이 있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취임사에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세 개의 축이 필요하다며 사람중심투자,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언급했다. J노믹스의 3대 축 가운데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는 포함시켰지만 소득주도성장 대신 사람중심투자를 내세웠다.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에게 주문했다. 소득주도성장이 가져올 경제적 논란을 예감하고 좀 더 포괄적 개념인 사람중심투자를 꺼낸 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발언은 온도차를 드러냈고, 경제주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됐다. 소득분배와 고용 악화를 계기로 최근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수정·보완을 암시했고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으니 갈등이 더 커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당초 김 부총리는 개혁의 충실한 집행자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건 문 정부의 개혁 밑그림을 장 실장이 짜고 김 부총리는 집행자로 역할이 나뉠 것이란 분석이었다. 김 부총리가 현 정부와 특별한 연줄이 없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의 근거였다. 실제 김 부총리를 건너뛰고 여당과 청와대 중심으로 세제개편안 등 주요 경제정책이 결정되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아마 이는 김 부총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의 갈등 이면에는 김 부총리의 사고와 스타일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장 실장의 책임도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으로는 장 실장이 김 부총리의 개혁성과 추진력에 만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호적인 진보진영에서는 김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 방어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최저임금 인상만 아니면 경제가 풀릴 것처럼 야당이 말하는데, 경제부처가 부화뇌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둘의 갈등을 증폭시킨 외부세력의 책임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소득분배·고용 악화→최저임금 탓→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정책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흔들기→장하성과 김동연 갈라치기→장하성 교체 요구’로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김 부총리가 자유한국당의 비호를 받고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소득주도성장이 반기업정책의 상징처럼 돼버린 것도 두 사람의 갈등이 낳은 안타까운 장면이다.

둘의 갈등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상외로 갈등의 골이 더 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관가에서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금이 가 있다는 말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시장에서도 상당부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서민, 영세상인, 비정규직, 청년들이 많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걸 막고 포용적 사회로 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둘이 빛 샐 틈 없는 공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찰떡 공조를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 김 부총리는 개혁성향을 좀 더 강화하고, 장 실장은 보다 실용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을 읽고 왔다며 한국경제에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서진이 써준 원고를 물리치고 본인이 직접 준비했다고 했다. 이런 그가 소득주도성장의 강력한 집행자로 나선들 이상할 게 없다. 현재 소득주도성장을 어려움에 처한 한국경제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참 나쁜 프레임이 횡행하고 있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 실장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개혁의 굳은 심지를 유지하되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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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8일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폭 증액했던 2009년(1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확장적인 예산안이다. ‘슈퍼예산’을 통해 고용 악화, 소득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의 악순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의 역동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경기가 주저앉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출처:경향신문 DB)

이번 예산안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재정집행의 청사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용과 분배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랄 수 있다. 특히 ‘일자리·복지 예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부문에 예산을 집중 배정했다. 예컨대 일자리 예산을 올해(19조2000억원)보다 22.0% 늘려 사상 최대인 23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를 투입해 취약계층 일자리, 사회서비스·공무원 일자리를 100만개 이상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업급여 확대 및 기간 연장, 전직 훈련, 신중년 재취업을 위한 예산도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일자리와 복지 예산을 합하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35%에 달할 정도다.

혁신성장 관련 예산도 확대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14.3% 늘었고, 연구·개발 예산도 증액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었다. 궁극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예산도 일자리 예산이다. 일자리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이번 예산안의 방점을 둔 것이다.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응급 처방으로 보이는 예산도 일부 눈에 띈다. 특히 일자리 예산을 지속 가능한 사업에 투입하는 건지 살펴봐야 한다. 청년고용을 위한 내일채움공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은 단기대책일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등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혁신성장을 위한 투자의 경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투자 대비 효용성에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혈세 낭비가 없도록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과감한 보완이 필요하다.

재정확대는 역동성이 떨어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부는 고용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 세수여건이 양호하고 국가부채비율도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나라의 곳간을 푸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경제가 활력을 찾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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