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은 스승을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1982년에 기념일로 제정된 날이다. 

나는 올해 스승의날에 여러 학생, 학부모들에게서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받았다. 직접 쓴 손편지와 카드, 작은 꽃다발을 받았고, 한참 전에 졸업한 제자들은 내가 여름마다 고생하는 것을 기억했는지 땀방지제, 손수건도 보내주었다. 

물론 이렇게 스승의날 선물을 거리낌 없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신분이 ‘강사’이기 때문이다.

보통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른 교원을 ‘교사’라고 하고, 또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주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은 선생들은 ‘강사’, 못 받은 사람들은 ‘교사’라고 구분하면 된다. 

출처_ 경향신문DB

스승의날에 선물을 받아도 되는 강사들의 유형도 무척 다양하다. 학교 밖 사설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사들과 학교에서 가르치더라도 단기 강사계약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강사라고 하는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계약직 교과 강사들과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는 상관없는 방과후 비교과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들은 사실상 또 다른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비정규직 강사들은 대학에서도 전체 강의 중 26.9%(2015년 1학기)를 담당할 정도다. 이들의 신분 또한 초·중등 강사들의 입장과 비슷하게 위태로운 상태라서 조만간 대학 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사들의 처우를 규정한 고등교육법개정안이 시행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량 해고가 진행되고 있어서 강사들을 대우해 주자는 것인지 아니면 몰아내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국어사전에서도 교사의 뜻을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에서 소정의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생의 뜻을 ‘남을 가르치는 사람,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또 다른 이름인 ‘교수’는 사람들이 일종의 계급적 의미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이나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일반적인 호칭을 ‘선생’이라고 하자는 데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들을 위한 기념일의 이름이 ‘스승의날’이다. 인하대 국문학과 김문창 교수는 ‘스승’이라는 말의 어원이 자기보다 ‘높은’ 승려를 일컫는 단어인 ‘사(스승 師)승(스님 僧)’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고, 스승의날에 축하 케이크를 자를 수는 있어도 한 조각도 먹어서는 안되는 날이라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기념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스승의날은 왜 존재하는가? 또 이날에 감사와 축하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스승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소한 이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어야 스승의날을 제대로 기념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사단체인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는 2년째 스승의날을 ‘교육의날’로 변경하자는 청원을 내고 있으니 그들에게 귀 기울여 보자. 선생님들이 쓸데없는 청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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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이 된 나의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그는 인생의 봄날을 맞이한 것처럼 아무런 고민 없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그를 향한 부모의 걱정은 계속 많아져 간다. 5월이 되고서는 5월15일에 무엇을 들려서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김영란법’ 때문에, 혹은 그 덕분에, 일정 금액 이하의 범위에서 선물을 골라야 한다고 한다. 나는 어느새 아이의 아빠이면서 그의 스승을 신경 써야 할 자리에 이르렀다.

아마 나의 부모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내가 초등학생이던, 정확히는 국민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사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반의 칠판마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글씨와 그림이 색분필로 채워졌고, 교탁에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 쌓였다. 반장의 주도로 스승의 은혜가 하늘 같다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감정이 격해져 울기도 했다.

성인 여성 교육기관인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15일 열린 스승의날 기념행사에서 만학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교사들이 무척 많다는 데 있었다. H교사는 “강남에서 일할 때는 트렁크를 열면 이런저런 선물이 많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고, S교사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 두엇을 앞으로 불러내서 “너희는 편지 한 통 쓰지 않았느냐”고 눈물이 나도록 혼내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스승의날은 교탁에 쌓인 선물과,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 보면서 학생의 이름을 호명하는 교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질책을 당하는 학생들, 그러한 야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J는 30대 젊은 교사였고 그는 자신 앞에 쌓인 선물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모님들께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세요” 하고는 서둘러 수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 학생들은 J에게서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다. 그것이 그만큼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던 것이다. 20년 전에는 H와 S의 방식이 오히려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시대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문법, 문화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시대를 학생으로서 젊은 교사로서 겪어낸 이들이 강단에 서고 있고, 덕분에 2019년의 5월15일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스승의날을 임시휴일로 지정하기도 하고, 아예 폐지하자는 당사자의 청원도 올라온다. 여기에는 교권이라는 것의 추락과 달라진 스승의 역할 등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으나, 나는 나의 세대가 쌓아올린 지금의 풍경이 이전보다는 더 마음에 든다.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내일은 스승의날입니다. 이날은 선생님들에게는 스승의 길을 걷는 사명감과 긍지로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에게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이에 저희 유치원에서는 선물, 꽃바구니 등 일체의 물건을 받지 않으니 감사의 뜻이 훼손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하고 모든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아이는 참 좋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아” 하고 말했다. 스승의날을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날’로 명시한 그 부분이 참 좋고 고마웠다.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에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대학원생의날’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그들은 “푸코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튜링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퀴리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김윤식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모든 교수들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 거창한 행사는 없더라도, 대학원생 동료, 선후배,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라고, 절박한 마음을 드러냈다.

스승의날의 주체가 ‘스승’이듯이, 이날은 유치원에서든 대학교에서든 그들이 자신의 제자들을 돌아보는 날 역시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물음표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답하는 주체적인 당사자가 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특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바람처럼, 자신 역시 언젠가는 대학원생이었던 교수들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에게 격려의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선물을 거부하고 휴교를 하는 데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맞이하게 될 스승의날은 그렇게 다시 조금은 또 다른 날로 다가갈 수 있으면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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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중학교 교사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린 글이 교사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학생들이 수업 중에 떠들고 욕설을 하는 것은 다반사요, 지도를 하려 해도 ‘학생 인권’ 운운하며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학교)교육은 다 무너졌다”면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게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1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글에 동의를 표했다.

교사의 권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은 지 오래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오히려 상해와 폭행, 모욕 등 교권침해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교권침해 사건은 2010년대 초반까지 200건대에 머물렀으나 지난해에는 501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주목할 점은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수업방해, 폭언·욕설, 폭행 등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증가도 간과할 수 없다.

출처:경향신문DB

교권침해는 교사의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교총이 최근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4%가 교원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65.6%는 교권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최근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교권침해와 무관치 않다. 지난 2월 말 명예퇴직한 교사는 601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늘었다. 교권 추락에 따른 상실감과 피로감은 교사가 교단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는 미래의 동량을 기르는 교육자다. 소명의식을 갖고 가르치는 교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퇴근 후에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 도입이 교권침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현장은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교권침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학교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권리도 학생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 교권회복과 학생인권조례가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긍지와 보람으로 일할 때 교육이 살아난다. 오늘은 스승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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