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이란 무엇인가. 나로 인해 무언가가 변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비건 지향 생활을 지속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지구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치사율 100%로, 돼지에게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감염된 돼지는 고열로 온몸의 혈관이 파열돼 고통스럽게 죽는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파주와 연천 일대의 돼지들에게서 감염이 확인되었다. 22일 기준으로 돼지 1만5333마리가 살처분돼 땅속에 매몰되었다. 감염된 돼지들뿐 아니라 감염되지 않은 돼지들도 모조리 함께 죽였다.

23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이 나온 경기 김포시 통진읍의 한 양돈농장 앞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방역 작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대규모 살처분은 아주 신속히 이뤄졌다. 전염병 확산을 확실히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한꺼번에 모아 가스사시킨 뒤 땅에 묻는 방식이었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질식시키는 가스사 역시 매우 고통스러우므로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가스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의식이 있는 채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도 있었다. 사실상 생매장으로 죽인 경우다. 의식이 있는 돼지를 생매장하는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에 위배된다. 그러나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속성을 우선시하다 보면 가사 상태에 있는지, 완전히 죽었는지, 그런 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집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돼지는 나의 반려 고양이 탐이보다도 지능이 높다. 탐이만큼이나 온갖 감각을 풍부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편안해하거나 기대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생생한 감정이 그들에게도 있다. 의식이 있는 채로 포클레인 집게에 온몸을 붙잡힌 뒤 커다란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돼지의 얼굴에는 어마어마한 공포가 서려있다.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란 힘겨운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수많은 돼지들이 치명적인 병에 걸리는 근본적인 이유다. 가축전염병 창궐은 인류가 가축을 키우는 방식과 몹시 유관하다. 조류독감과 구제역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식 축산은 동물의 아주 기본적인 면역력조차 파괴한다. 고기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좁고 열악한 사육장에 감금해서 키우고, 이빨과 꼬리를 자르고 거세한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히며 고작 6개월을 살게 한 뒤 도살장에서 죽인다. 그리고 그만큼을 또 태어나게 한다. 이 모든 지옥 같은 일이 우리의 입맛을 위해 벌어진다. 아주 거대한 시스템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전 세계 축산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조금 드러냈을 뿐이다. 동물해방물결은 지난 19일 논평에서 “살처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만을 위한 조치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반복되는 살처분 과정은 인간에게도 몹시 치명적이다. 살처분 작업자 4명 중 3명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이들에 대한 사후 심리치료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그의 저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동물에 대해 잊어버린 것을,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잊어간다. 동물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에게 반응하는 능력까지도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와 동물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야기만큼이나 오래 묵은 전쟁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에도 이보다 더 일방적인 전쟁은 없었다.”

책임감의 영어 단어 ‘responsibility’는 ‘response’와 ‘ability’의 합성어다. ‘반응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1만여마리 돼지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인간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것에 안심하거나 삼겹살 값이 오르는 것을 염려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응답이다. 이 응답은 현재의 돼지들뿐 아니라 미래의 돼지들에게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돼지들과 우리는 같은 세계에 속해있고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반응을 해야 한다. 고기를 덜 먹음으로써, 안 먹음으로써, 가축을 덜 잔인하게 키움으로써, 최대한 고통 없이 죽임으로써 우리가 변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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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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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경기 파주시의 한 양돈농가에서 어미돼지 5마리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정밀 검사를 해보니 아프리카돼지열병 양성으로 확진됐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확진 즉시 위기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곧이어 전염병 발생 농장과 이 농장 주인이 소유 중인 또 다른 2개 농장의 돼지 3950마리를 살처분했다. 이와 함께 전국 돼지농장, 도축장, 사료공장 등을 대상으로 전국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내렸다. 전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비상조치에 나선 것이다.

당국이 최고 수준의 대응에 나선 이유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될 경우 재난 수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에서 살처분 정책에 의존한다. 만에 하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면 대량 살처분은 물론 돼지고기 가격 폭등은 불문가지다. 우리는 구제역으로 돼지 348만마리가 살처분된 2010~2011년에도 40% 이상의 돼지고기 가격 인상을 경험한 바 있다. 전염 확산을 막는 방법 외의 대책은 없다.  

17일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양돈농장에서 귤삭기들이 야간작업을 하며 살처분 매립 준비를 하고 있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질병은 바이러스성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등 치명적이나 아직 예방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전염되지는 않는다. 이상훈 기자

안타까운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예고됐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중국에서 발생해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를 휩쓸었다. 급기야 지난 5월에는 북한의 자강도에서 발병한 사실이 확인됐다. 자강도는 북한의 북쪽 지역이지만 북한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남북 간 접경지대를 통한 전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당국에서는 관계부처 합동담화문 발표(4월), 북한 접경지역 방역상황 점검(5월), 축산물 무신고 반입 시 과태료 인상(6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양돈농가 상대 방역교육은 주먹구구식이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구멍이 많았다. 여행객이 휴대한 돈육가공식품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기도 했다. 당국의 예방활동은 보여주기식에 그쳤고 시민들의 협조도 부족했다. 차단방역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전염병 예방은 초동대처가 성패를 좌우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는 데는 초기 48시간이 ‘골든타임’이다. 방역이 뚫리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선 감염경로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축산농가와 도축장에서 방역행동요령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가적인 재난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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