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1.17 양심
  2. 2018.11.14 대체복무제가 또 다른 형벌이 되어선 안된다
  3. 2017.12.04 [기고]신임 헌법재판소장에게 부치는 편지

국방부는 국방백서에서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용어 대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를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군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이행 중이거나 이행할 사람들이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를 고려했다고 한다. 국방부의 해명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오해의 가능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주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의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이 용어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오해의 가능성’이란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문제의 미묘함을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실감했던 듯하다. 대체로 시골집들이 그랬듯이 우리 집에도 욕실이 없었다. 커다란 고무 함지가 나의 욕조였고 거기에 데운 물을 채운 뒤 몸을 담가 때를 불리면 어머니가 때수건으로 박박 밀어주곤 했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근 동안에는 즐겁지만 물이 식어 점점 차가워지고 때수건이 지난 자리가 벌겋게 달아오르면 그처럼 고역스러운 일도 없었다. 마음이 널을 뛴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2018년 11월 30일 오전 대구구치소에서 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마중 나온 가족과 포옹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날 양심적 병역거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 57명을 가석방했다. 연합뉴스

그러다 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수돗가에 나무로 틀을 짜서 부엌 벽과 맞닿은 부분을 제외한 삼면을 방수포로 가렸다. 평소에는 활짝 열려 있지만 접어 올린 방수포의 끝자락을 잡아 내리면 담장 밖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가려졌고 겨울이 되기 전까지 거기서 우리 식구는 등물을 하거나 목욕을 했다. 한여름이면 대낮에도 방수포만 내린 채 등물을 했고 그 작고 아늑하며 천장이 없는 터라 답답하지 않은 우리만의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는 즐거웠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점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시절 시골마을에서 사내아이가 알몸도 아니고 그저 웃통을 벗고 등물을 하는 것쯤이야 별일도 아니었던 터라 외려 유난을 떤다는 인상을 줄까 봐 꺼려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슬쩍 내비치며 부모님께 물었더니 보이는 우리가 수치스러워서가 아니라 우연히 벌거벗은 우리를 본 누군가가 수치스러워하지 않도록 그렇게 한다는 거였다. 나는 이 설명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오래 곱씹어 보았고 윤리의 요체 가운데 하나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수치를 아는 자는 반드시 타인이 느끼게 될 수치를 고려한다는 것. 타인이 수치를 느끼게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스스로의 수치에만 골몰한다면 윤리적이라 일컬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오해의 가능성’은 ‘오해하지 않을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신의 수치에만 몰두하게 되면 타인의 수치를 무시하게 되는 것처럼. 국방부가 ‘오해의 가능성’만큼 ‘오해하지 않을 가능성’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고려했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대신 이 용어를 두고 갈등이 생겨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모른 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복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이 만약 수치스럽다면 왜 그런지 우리는 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군복무를 수행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방부는 온갖 비리를 척결하여 사병들에게 질 좋은 식사와 보급품을 제공해야 하고 지휘관은 부하를 종처럼 부리는 게 아니라 존중해야 하며 모든 군인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 의문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수사 과정부터 투명하게 공개되어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하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병역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 감독해야 하며 부당한 청탁이 결코 통용될 수 없게 해야 한다. 마침내 군복무를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토만을 방위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까지도 보호한다는 자긍심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그들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군복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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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라고 요구하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부, 국회, 언론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대체복무제 법안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핵심 쟁점은 대체복무의 기간, 분야, 근무형태, 심사기구 등이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산 넘어 산이다.

정부는 대체복무제 시행 방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하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첫 법안에 대체복무자와 군필자·현역병과의 형평성, 국가 안보까지 한 번에 담아내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의보다는 불리함을 참지 못한다’는 정서가 앞선다면 대체복무제는 ‘또 다른 형벌’이 될 수도 있다.

영화 <핵소 고지>의 한 장면

몇 번이고 다시 봤던 영화 <핵소 고지>는 비폭력주의자인 주인공이 총을 들지 않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입대한 뒤 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부상병을 구한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국의 병역거부자 존 콘스도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와서 수많은 한국인을 의술로 살렸는데, 이는 대체복무의 일환이었다. 그는 2013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공론화도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간의 숙성 기간을 감안한다면 대체복무자가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권고하는 기간과 분야에서 빛을 발해 국가적·사회적으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노청한 | 서울서부지법 민사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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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진성 신임 헌법재판소장님.

저는 1년 전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평화주의적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20대 청년입니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다음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1심 선고 직후 저는 변호인들과 함께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재판소는 제 사건을 수년째 계류 중인 여러 사건과 함께 심리 중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본관에서 이진성 헌재소장(오른쪽)과 유남석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후 함께 차담회장으로 이동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여러 무죄 판결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지만, 사실 저는 1심 선고와 함께 구속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2심 재판도 당초에는 올해 안에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저와 변호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자, 2심 재판부가 이를 수용해 재판이 연말까지 연기된 상황입니다. 그런데 9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안이 부결되었고, 모든 계획은 절망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상급심에서 1심 판결이 유지될 경우, 저는 차디찬 감옥에 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1심 판결 직후 참여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 저보다 앞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야만 했던 수많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보았습니다. 모형 포승줄에 묶여 모형 감옥 안에 다시 들어서야만 했을 때, 침묵과 함께 텅 빈 표정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서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앞서 저와 같은 선택을 했던 분들과 똑같이, 제가 감옥에 들어가야 할 순간이 목전에 있다는 절망감은 실감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자라나 현실을 압도하곤 합니다. 그 행사에 참여했던, 저와 비슷한 시기에 병역거부를 했던 한 청년은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만났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주었고, 언제나 법정 방청석을 가득 메워준 덕분에 외로움만이 가득한 싸움은 아닙니다. 새로운 정부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와 같은 뜻을 밝힌 국가라면 전쟁, 그리고 전쟁을 위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의 신념을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평화를 지키려 했던 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모든 구성원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는 동안, 평화적인 신념을 가진 이들은 감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잘 알고 계시다시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수차례 한국 정부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행정부도, 입법부도, 사법부도 묵묵부답인 상황에서, 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이제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현재, 수많은 언론은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또다시 미뤄진다면, 매년 600여명이 예외 없이 감옥으로 향하는 비극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11년 전 감옥에 가야만 했던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법정에 서서, 2017년 홍정훈이라는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변론을 하다 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만이 우리 사회의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어야만,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루빨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조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감히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는 수백 명의 양심을 위해, 이진성 신임 헌법재판소장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홍정훈 | 참여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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