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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07 [아침을 열며]‘요즘옛날’을 산다는 것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1980~1990년대 어디쯤 와 있는 건가, 놀랄 때가 많다.

집들이 간 집에서는 음료로 참기름 병에 담긴 밀크티를 내온다. 예전에 엄마가 성남 모란시장에서 방금 짠 거라며 사오시던 그 플라스틱 빨간 뚜껑의 투박한 참기름 병이다. 20대 딸은 청재킷에 짧은 청치마를 입고 “디스코 머리로 양 갈래 길게 땋아줘, 힙하게”라며 머리를 내민다. 그날 디스코 머리 사진을 올린 딸아이의 인스타그램에선 친구들이 예쁘다고 난리가 났다. 음원차트에서는 인디밴드 잔나비의 1980~90년대풍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가 빌보드 어워즈에 빛나는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와 1, 2위를 나란히 한다. 이게 뭐지, 어리둥절하다. 시대적 감성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감성이 ‘핵인싸’란 말인가.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의 유행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라거나 ‘디지털에 지친 아날로그’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최근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레트로의 열풍이 과거보다 더욱 강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옛날’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노인들의 홍대’로 불리던 서울 동묘 벼룩시장엔 주말이면 패셔니스타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핫아이템을 찾으려고 몰려든다. 젊은이가 주고객층인 편의점업계에서도 ‘경양식 치즈함박도시락’ 등 옛 입맛을 살린 신제품 경쟁이 치열하다. 레트로는 아이러니하게도 IT산업에서도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구닥’의 성공은 흥미롭다. 이 앱은 필름카메라처럼 24장을 찍고 나면 한 시간 동안 더 사진을 찍을 수가 없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려면 무려 3일을 기다려야 한다. 수십 수백장을 몇 초 만에 찍은 후 바로 저장하고 삭제해 버리는 시대에 ‘느린 불편함’의 경험을 돈 주고들 산다.

‘요즘옛날’이란 표현은 지난해 말 2019년 트렌드를 소개하며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썼던 말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핵심인 ‘레트로(복고)’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옛것에서 신선함을 느끼는 ‘요즘옛날, 뉴트로(Going New-tro)’가 소비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트로’가 과거의 재현이라면 새로운 과거, ‘뉴트로’는 과거의 새로운 해석으로 앞으로 브랜드 헤리티지와 아카이빙(archiving)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했다.

“기술의 편의성과 반비례해 자기 통제권을 잃어가며 무력감에 찌든 N포세대에게 과거에 대한 동경심은 잠시나마 힘든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80년대를 겪지 않은 1020세대가 그 시절을 동경하는 것은 장밋빛 미래가 없는 현실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팍팍한 현실 탓인지 배부른 투정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즘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유명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뉴트로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이다.”(트렌드 코리아 2019) 기성세대에겐 ‘추억’ ‘향수’로 정의될 수 있지만 젊은 세대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면서 ‘설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변에 요즘의 ‘레트로’ 혹은 ‘뉴트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봤다. “요즘 애들, 무조건 재밌고 희귀한 거 좋아하니까 유행하는 거 아닐까요”(50대 직장인), “불황기에는 원래 복고가 유행합니다”(60대 은퇴자), “마케팅의 주요 포인트이죠”(30대 마케터), “세대차가 덜 느껴져요”(40대 직장인), “그때를 한번 살아보고(경험하고) 싶은 거예요”(90년대생 학생)…. 어떤 이는 일종의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 연관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는 게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추억만을 기억하려는 기억왜곡 심리현상이 일부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여러 대답 중 가장 귀에 들어온 것은 ‘그때를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젊은이의 말이었다. 이유는 우리가 짐작하는 그대로다. 속으로는 ‘나도(우리도) 그때 참 힘들었어. 모든 게 불확실하고 얼마나 모순됐는 줄 알아. 정말 개판이었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때는 장밋빛, 청사진, 미래를 얘기하며 앞으로 나아갔으니까, 지금과는 달랐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마지막 저서인 <레트로토피아>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말하며 레트로토피아는 “분통 터질 정도로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에 내재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그 원천”이라고 했다. 유토피아를 말하지 않는 시대, 나부터 ‘요즘옛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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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