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농단’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재판 민원’을 한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이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이들의 민원을 담당 판사에게 전달하는 등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추가 기소했다. 사법농단의 실무총책 격인 임 전 차장은 이미 40여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보태진 공소사실은 단순히 ‘추가’적 사안이 아니다. 권력분립을 명시한 헌법상 엄격하게 독립돼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가 재판을 두고 짬짜미를 한 충격적 사태다.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2015년 5월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파견 중이던 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형사재판을 받고 있던 지인 아들의 선처를 요청했다. 죄명을 강제추행미수죄에서 형량이 가벼운 공연음란죄로 바꿔주고, 벌금형을 선고해달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민원’은 임 전 차장에게 보고됐고 이후 담당 법원장을 거쳐 일선 판사에게까지 전달됐다. 재판 결과 죄명은 유지됐으나, 실형이 아닌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 의원은 “죄명 변경이나 선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역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던 전병헌 전 의원은 2015년 4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보좌관의 석방을 청탁했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에 예상 양형 관련 검토보고서를 작성토록 하고, 검토 내용을 설명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임 전 차장은 2016년 8~9월에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받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에 대해 양형 검토 문건을 작성토록 했다. 문제가 된 4인은 사건 당시 모두 현직 의원이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0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재출석하며 질문을 위해 접근하는 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심각한 사안은 서 의원의 경우다. 국회 법사위원이던 서 의원이 현직 법관을 불러 지인 관련 재판을 언급한 게 사실이라면,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설치 법안(각급 법원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서 의원이 재판 민원을 했다면 법원과의 ‘부당거래’를 자청한 것이나 매한가지다. 서 의원은 딸과 동생을 보좌진으로 채용해 논란이 되자 징계 직전 탈당했다가 복당한 전력도 있다. 이쯤 되면 주권자를 대표하는 의원직의 무게를 감당할 윤리의식이 결여된 것 아닌가.

검찰은 재판 청탁에 연루된 전·현직 의원 4인에 대해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형사적으로는 면책될지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 비뚤어진 특권의식으로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사법농단을 방조한 정치인들에 대해 단호하고 엄정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서 의원은 사법농단 척결을 외쳐온 여당의 원내수석부대표다. 민주당은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하고 서 의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혹여 감싸려 했다가는 당 전체가 역풍을 맞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른 전직 의원들도 현재 당적을 갖고 있다면 소속 정당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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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이하 법관회의)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의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탄핵 저지’ 총공세에 나섰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취지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해 제 살을 도려내겠다는 법관들의 충정을 폄훼하고 있다.

법관 탄핵 반대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탄핵은 헌법상 국회 권한이므로 법관회의가 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논리다. 법관회의는 “(사법농단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국회를 향해 직접적으로 탄핵을 요구한 것이 아니며, 의결 내용도 대법원장에게 전달했을 뿐 국회엔 보내지 않았다. 이런 의견표명이 삼권분립 위반이면, 한국당이 노골적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건 삼권분립 존중인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회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절차 개시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명확한 근거가 없고 ‘기소 전’이라는 논리다. 법관회의 의결 직후 한국당은 “법관회의는 중대한 헌법위반이라고 단정하는 합리적 논거를 제시 못하고 있다.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헌법 위반이라고 단정하는 건 위험한 발상”(윤영석 수석대변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문건과 진술만 봐도 탄핵 사유는 차고 넘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는 연루 법관들의 재판개입 행태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재판 시작 여부도 탄핵절차 개시와 무관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파면은 박 전 대통령 기소 전에 이뤄졌다.

셋째, 법관회의의 대표성을 문제 삼는 논리다. 한국당은 “법관회의가 특정 정치세력 의사를 대변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부 언론은 10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찬성이 정확히 과반(53명)인 점을 들어 대표성을 깎아내린다. 중앙일보는 관련 기사에 “탄핵 찬성 53명이 법관 2900명 양심 대표할 수 있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한 처사다. 이 논리대로라면 국회(의원 정수 300명)에서 151명의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됐을 때 ‘151명이 5000만 민의 대표할 수 있느냐’고 따져야 한다. 어떤 언론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은 없을 터다.

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왜곡과 궤변을 당장 멈춰야  한다. 사법농단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너무도 크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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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첫 피고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가 결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임 전 차장 사건을 ‘적시처리가 필요한 중요 사건’으로 지정하고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법원은 “연고관계와 업무량, 진행 중인 사건 등을 고려해 일부 재판부를 배제하고 나머지 재판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산배당했다”고 설명했다. 형사36부는 법원이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에 대비해 신설한 3개 형사합의 재판부 중 한 곳이다.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는 판사들로 구성됐다. 기존 형사합의부 중 사법농단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6개 재판부는 배당 대상에서 미리 배제했다고 한다.

15일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피해자단체 연대모임 시민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법농단 특별법 등을 요구하는 노숙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법원이 나름의 고육지책을 쓴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셀프 재판부’를 구성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누구든 자신의 사건에 관해 판관(判官)이 될 수 없다’는 법언(法諺)을 떠올려보라. 바로 얼마 전까지 법관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던 전직 고위법관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임 전 차장보다 더 고위직에 있던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도 같은 법정에 불려올 가능성이 크다. 담당 재판부가 법원행정처·대법원에 근무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폭적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신규 재판부 증설 자체도 법원이 선제적으로 계획했던 조치는 아니다. 국회에서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급조한 대안이다.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의 출발부터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향후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공정성 시비를 불식해야 할 것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긴 단죄의 시작이다. 다른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이어질 터이고, 최종 확정판결이 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당연히 사법 신뢰 회복의 책임은 개별 사건 담당 재판부에만 있지 않다. 대법원은 최종심에 이르기까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들을 강구하고 공표해야 한다. 법원 구성원들은 자신의 오류를 덮기보다 직면하고, 제 살을 도려내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줄줄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는 식의 ‘제 식구 감싸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다.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독립 침해가 위헌적 행위였음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들의 호소를 모두가 경청하기 바란다. 사법농단 재판은 역사와 시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의 실현의 과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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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재판 1심을 맡게 될 서울중앙지법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소를 앞두고 형사합의 재판부 3곳을 늘리기로 했다. 사건이 배당될 수 있는 재판부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신설된 3개 형사합의부의 법관 9명은 모두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다. 기존 13개 형사합의부 재판장 가운데 6명(46%)이 사법농단 관련자들과 함께 근무했거나 참고인·피해자 신분인 것과 대비된다. 결국 형사합의부 3곳 증설은 국회와 재야법조계·시민사회의 ‘특별재판부’ 도입 압박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낸 의견서에서 “특별재판부는 헌법상 근거가 없고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우리는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독립적·중립적 법관에게 심리를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재판부가 위헌적이라는 법원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 기소 이전 특별재판부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법원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고 본다. 1심 재판부 몇 군데 늘리는 정도로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우선 서울중앙지법 차원에서 사법농단 사건 배당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제척·기피·회피 사유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법원행정처·대법원 근무 경력이 없는 법관으로 재판부를 늘려놨으니 법원을 믿어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출신 학교·사법연수원 기수 등의 인연을 매개로 촘촘한 연고관계를 형성하는 법관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 문제는 서울중앙지법에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임 전 차장을 필두로 전직 대법관들은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줄줄이 기소될 가능성이 짙다. 사상 초유의 사건이고 피고인이 법률가인 만큼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2심은 물론 3심까지 가게 될 공산이 크다. 마땅히 대법원 차원에서 사법농단 재판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사)을 하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법원과 법관에 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데, 대법원장은 팔짱만 끼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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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6일 경향신문 1면.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저지하라고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를 압박하다가 해당 판사가 위법한 지시라며 거부하자 일선 법원으로 인사 조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대법원 고위층이 직접 개입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의 묵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양승태 사법농단’의 서막을 알린 기사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다. 경향신문에 그의 실명이 등장한 지 1년 7개월여 만이다. 한겨레의 ‘최순실 실명 보도’로 박근혜 국정농단이 수면 위에 떠오른 시점이 2016년 9월 2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건 2017년 3월 31일이다.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을 거쳐 감옥에 가는 데 6개월 걸렸다. 전직 차관급 법관을 구치소 보내는 데는 세 배 이상 소요됐다. 법원의 조직보호 논리와 본능은 그만큼 강고하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임 전 차장의 ‘공범’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조만간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설 것이다. 구속 기소든 불구속 기소든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한국 사법은 정상화의 길로 접어들까? 양 전 대법원장의 책임을 묻는 일은 필요조건일 수 있으되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음 사례들을 보라.

#1. “사실관계는 인정한다. 하지만 징계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 받을 사안은 아니다.”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펼친 방어논리다. 통상 구속 기로에 놓인 피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된다. 잘못했다며 싹싹 빌고, 눈물을 보이는 일도 다반사다. 임 전 차장 측은 달랐다. 검찰을 향해 “재판의 구조를 이해 못한다”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2. “밤샘조사 결과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말자.”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밤샘조사를 받고 귀가한 직후 법원 내부망과 페이스북에 이런 취지의 글을 올렸다. 밤샘조사는 피의자 인권 차원에서 지적할 만한 사안이다. 강 부장판사가 과거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굳이 사법농단 수사 중에 재론해야 했을까. 조사받은 임 전 차장은 법원 동료이자 고교·대학 동문 관계이기도 하다.

#3.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근거 없는 것임을 밝힌다. 대법관들 모두가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다.”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입장문을 냈다. 사법농단의 핵심 피의자인 고영한 당시 대법관도 포함됐다. 그들은 ‘근거 없음’을 뒷받침하는 어떤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 ‘우리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선포했다. 법률가가 아니라 제사장(祭司長) 같았다.

고위 법관들의 법철학과 정의감은 선택적이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들만의 울타리에 둘러싸인 사법 패밀리를 ‘불멸의 신성(神聖)가족’이라 명명한 바 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펴낸 <사법개혁을 생각한다>에서 법원의 무오류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통렬히 비판한다. “법원 판결은 대부분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판결도 있다. 하지만 분쟁은 법원에서 최종 해결되어야 하므로 모든 판결에 강제력이 부여된다. (강제력이 부여된다는 이유로) 법관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법원의 무오류주의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법원은 오판을 범할 수 있는 평범한 판사들로 구성돼 있고, 과거사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실제 오판을 양산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노비 출신 미군 유진 초이는 조선 최고 명문가 애기씨 고애신에게 물었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법원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법관들에게 물을 수 있겠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법원에는 누가 있는 거요? 시민은 있는 거요? 약자는 있는 거요?” 추가로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법원에 오류는 없는 거요?” 그들은 머뭇거릴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법원은 ‘법관의, 법관에 의한, 법관을 위한’ 법원이다. 오류 따위는 없는 청정한 법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을 구치소에 보낸다고 사법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수치심을 모르는 ‘리틀 양승태’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이 더 이상 법의 성채 속에 또아리 틀고 앉아 주권자를 소외시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자. 주권자가 사법행정에 보다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면밀하게 감시할 길은 없는가? 대법원장·대법관·법원장을 임명하는 과정에 시민 의사를 보다 명확하게 반영할 길은 없는가?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당장 판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법관·법원공무원·시민 대표 등으로 사법행정 감시기구를 구성하는 일은 가능하다. 재판 측면에서는 배심제·참심제 확대 등을 통해 시민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

사법농단을 부끄러워하고 ‘좋은 재판’을 꿈꾸는 법관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그들만이라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법관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틀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비판을 경청하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겠습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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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 수사 4개월여 만에 첫 구속자가 나왔다. 지난 27일 수감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임 전 차장은 재판거래, 법관 사찰, 검찰·헌법재판소 기밀유출 등 대부분의 사법농단 의혹 사안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인사다. 구속영장에 기재된 개별 범죄사실만 30개 항목에 이른다.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조차 90%가량 기각해오던 법원이 임 전 차장 구속수사를 허용한 것은 의미가 크다. 사법농단이 도덕적·윤리적 사안을 넘어 실정법 위반 행위임을 법원에서 인정했다는 뜻이 된다.

임 전 차장 측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징계 대상이 될지는 모르나, 형사처벌 받을 일은 아니다”라는 방어논리를 폈다고 한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 경과 등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임 전 차장이 관여한 사법농단이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행위일 뿐 아니라 ‘범죄’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다음날인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이송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사법농단의 ‘실무총책’이 구속된 만큼, 이제 관심은 그 윗선으로 쏠린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영장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을 공범으로 적시한 바 있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몸통’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압수수색 시도가 좌절되면서 상당수 증거가 인멸됐을 가능성이 크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도 “부당한 구속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일체 협조할 수 없다”고 밝힌 터다. 하지만 차관급 법관 한 사람 선에서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사법농단이 자행됐다면 누가 믿겠는가. 검찰이 실체적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법원이 임 전 차장 구속수사를 허용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는 모양이다. 잇단 압수수색영장 기각에 이어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마저 기각할 경우,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도입을 저지할 명분이 사라진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했다는 설이 그 하나다. 임 전 차장 선에서 ‘꼬리 자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 모든 정치적 해석이 억측이기를 바란다. 법원이 사실과 증거 앞에 겸허할 때 사법신뢰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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