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당과 야 3당이 합의한)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제도”라며 “이는 절대적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을 30초만 뒤져봐도 확인되는 가짜뉴스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이 채택하고 있다. 소수의견을 반영하고 사표를 줄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가 최근 흐름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보수언론들도 의석 수 증가를 통해 이를 간접 비판할 뿐 비례대표 확대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한다. 이 제도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고 좌파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 그 자체다. 이는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 2월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금 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 정치권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제도가 어떻게 좌파연합을 위한 것인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선거 연령을 18세로 한 살 더 낮추자는 논의는 더 말하면 입만 아프다. 한국당은 정치적 식견이 부족한 고3생들이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데 듣기 민망하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투표 가능 연령이 19세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일본은 이미 3년 전, 그것도 20세에서 한꺼번에 두 살이나 낮췄다. 아무 문제 없었다. 

한국당이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근거가 하필 ‘선거제도 법정주의’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헌법 41조 ③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에 관한 각종 사항을 법률로 정함으로써 게리맨더링 같은 부조리를 막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규정의 취지는 외면하고 ‘선거제도는 법으로 정한다’는 데만 눈이 멀어 있다. 법을 제·개정할 권한이 오롯이 국회에 있다는 점을 악용해 선거제도를 멋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고 있다. 모두 법정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제는 이런 폐해가 점점 더 확산·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지방의회의 양당 독식을 막기 위해 1인 선거구를 줄이고 2~4인 선거구를 늘리는 개선책이 제시됐다. 그러나 양당이 지배하는 지방의회가 이를 모두 무산시켰다. 그 결과 민주당과 한국당이 전체 의석의 90%를 차지했다. 국회의원들을 본받아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제 욕심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사실 나 원내대표식 화법으로 말하면, “선거구제 개편을 놓고 의회가 지겹도록 다투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다”. 일본이 국제적인 흐름과 고령화 추세에 맞춰 선거연령을 낮추듯 대부분 국가들은 선거제 개혁안을 별 이견 없이 수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선진국들은 헌법에 관련 규정조차 없다. 유독 한국에서 이것이 첨예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거대 양당, 그리고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개혁은 못하면서 개혁 담론만 폭발하는 한국적 상황이 선거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은 한때 선거구제 개편에 응할 테니 개헌도 함께하자고 했다. 여야 중진들은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하는 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시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법권을 남용하면서 행정권까지 넘보겠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려다 보니 자신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모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국당의 억지는 이미 시민이 위임한 선거제도 법정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 더불어민주당도 현행대로 가자는 한국당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안다. 국회의 이런 행태를 방관해서는 안된다.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앙선관위에 법률 제출권을 줄 수도 있고, 국회에 선거구제 개편을 담당하는 자문위원회를 두되 국회는 그 법안을 통과시키게만 하는 대안도 있다. 지난해 국회 개헌자문위원회 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다수 자문위원들이 호응했다. 

“누구도 자기 재판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언(法諺)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적용될 선거구제를 결정하는 것은 이 원칙에 어긋난다. 최근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 이해충돌에도 해당한다. 현행 헌법도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개헌을 할 경우, 개헌안이 제시될 당시 대통령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원이라 해도 이 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의 뜻을 무시하는 삼류 국회에 온전히 선거구제 개편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져 놓은 격이다. 헌법 1조를 새기며 진지하게 선거제도 법정주의의 보완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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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뒤늦게 내놓은 해명이라는 게 가관이다. 나 원내대표는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다”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해괴한 해명을 내놓았다. 친일 청산의 대의를 부정하고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의를 짓밟는 자신의 발언에 시민사회와 역사학계에 이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직접 규탄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자, ‘반문특위’ 궤변으로 발뺌하려는 수작이다. ‘반민특위 발언’으로 드러난 극우적 역사인식도 경악스럽지만, ‘민’을 ‘문’으로 바꾸는 말장난으로 물타기를 하려는 천박한 발상도 목불인견이다.

임우철 애국지사(101)와 독립유공자 후손 600여명은 지난 22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나 원내대표의 의원직 사퇴와 사과를 요구했다. 나 원내대표는 임 지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특위’를 반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나 원내대표는 25일에도 반문특위 주장을 거두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 화살을 돌려 자신의 뒤틀린 역사인식을 변호하려는 비겁한 회피다.

나 원내대표의 반민특위 발언은 단순 실수가 아니다. 그는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거센 비판이 쏟아진 이튿날에도 의원총회에서 “반민특위 활동이 잘돼야 했지만, 결국 국론 분열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분명 2019년 ‘반문특위’가 아니라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언급하면서 “국민을 분열시켰다”고 했다. 당시 국론을 분열시킨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민족 죄과를 숨기려 방해공작으로 반민특위를 좌초시킨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이다. 친일세력의 반동을 정당화하는 망발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토착왜구’라는 치욕적인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101세의 독립지사가 “반민특위의 숭고한 활동과 역사를 왜곡하고 독립운동가를 모욕했다”며 피맺힌 분노를 토하는 것이 2019년의 비루한 현실이다. 정녕 나 원내대표가 친일파를 비호하고 반민특위를 부정할 뜻이 아니었다면, 더는 호도하지 말고 발언을 사죄하고 독립유공자들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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