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7.16 아무도 이방인이 아니다
  2. 2018.11.26 [시선]서방예의지국

어느 날 거리를 걷는데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 비를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갖고 있던 머플러를 머리에 둘렀다. 한참을 가는데 옆을 지나가던 차 한대가 속도를 줄이더니 청년 둘셋이 창문을 열고 나를 향해 제스처를 섞어가며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빗속에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지나가며 외친 말이지만 혐오 발언이 분명했다.

10년 전 이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오롯이 ‘이방인’이 되는 순간에 느낀 공포 때문이다. 소리를 지른 이들은 현지인, 나는 유학생, 그러니까 이주자였다. 소리를 지른 이들은 남성, 나는 여성이었다. 소리를 지른 이들의 종교는 알 수 없으나, 나는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보일 만한 복장이었다. 

당시 유학을 하던 곳은 몇 년 전 벌어진 큰 테러로 특정 종교나 인종을 향한 분노와 거부감이 큰 상태였다. 그렇다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행해진 밑도 끝도 없는 공격이 제대로 설명되진 않는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이 공포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여성이자 이주자이자 동남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한 여성이 남편에게 폭행당했다는 뉴스를 보자 그때가 생각났다. 남편이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맞을 만한 행동을 했다” 등의 이유로 부인을 폭행했다는 것은, ‘다름’을 이유로 폭력이 행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이 여성을 향해 ‘폭행 유도’, ‘의도적 촬영’이라거나 ‘유부남과 교제한 내연녀’ 등의 비판이 쏟아지며 ‘폭행 피해자’라는 본질이 흐려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을 통한 이주를 선택한 여성들의 경우 제도적으로 배우자인 남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국적 취득 전 체류 연장을 위해선 남편의 동행이 요구되는 등 사실상 ‘신원보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급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이주여성은 버티고 참아낸다. 양육권 문제도 걸려 있다. 이번에 폭행을 당한 여성은 베트남 언론에 “이혼한 뒤 아이의 양육권을 갖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부에선 이주여성들이 ‘국적 취득을 위해 접근한다’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노동현장의 여성 이주노동자도 폭력에 취약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에선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 가사도우미들이 고용주에 의해 살해되거나 표백제를 강제로 먹는 등의 수난을 겪은 일이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성폭력에도 노출돼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 가운데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1.7%였고, 피해 상황에서도 ‘말로 대응하거나 그냥 참았다’고 한 경우가 40%에 달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인종차별적 시선이 차별과 폭행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2009년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을 향해 “냄새나는 XX”라고 했던 남성이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죄 유죄를 선고받은 경우도 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폭행 사례가 알려지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성명에서 “한국 사회에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이주여성에 대한 성·인종 차별적인 인식이 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는 정우성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의 책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에 더한 글에서 이 같은 모순을 ‘GDP 인종주의’라고 표현했다. “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글로벌 패밀리’이고 비백인과 결합한 가족은 ‘다문화가정’”이라는 대목은 곱씹어봄 직하다.

‘선’ 하나를 넘으면 누구나 이방인이 된다.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기에 아무도 ‘이방인’일 수 없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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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로 이민을 와서 큰아이는 한국에서와 같은 4학년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청각장애아 특수반이 있는 학교였다. 그 반에는 토론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아이들이 6~7명 있었고, 교사로는 담임과 부담임 두 분이 계셨다. 선생님들은 청각장애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수업을 진행했다. 특정 과목에서 학습 능력이 향상되었다 싶으면 아이들을 비장애아 교실로 보냈다. 우리 아이는 수학을 시작으로 메인 스트림에서 공부하는 과목을 차츰 늘려나갔다. 고교에 가서는 모든 과목을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공부도 공부지만, 이 시스템은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장애아와 비장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하고 또 서로에게 익숙해지도록 하는 데 더없이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특수학교를 따로 만들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 사이에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접하게 하다 보니 비장애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와 같은 ‘다름’을 유별나게 여기지 않는다. 새로 이민을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과 이민자는 때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몸이나 언어가 불편한 사람일 따름이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교육을 줄기차게 받다 보니, 장애인이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따위의 감정이 스며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인천 한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진 10대 중학생을 추락 직전 집단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는 중학생 A군 등 4명이 16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자 인천시 남동구 남동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가 학교에 간 지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담임 선생님이 아이 편에 편지를 보내왔다.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우리더러 학교에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다음날 바로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아이의 나쁜 버릇에 대해 이야기했다. 귓속말하기와 소리 지르기.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옆사람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며,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버릇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어도 고쳐지지 않으니 급기야 부모를 부른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엄하게 하는지, 우리는 크게 야단을 맞는 학생처럼 눈물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아이에게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제는 안 그래요”를 되뇌었다. 그런 ‘가정교육’을 1년쯤 지속했을 것이다. 아이는 버릇을 고쳤다.

두 아이를 토론토의 학교에 보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학교는 공동체(사회) 생활이 요구하는 매너와 예의 교육을 어릴 적부터 정교하고 철저하게 시킨다. 마치 ‘서방예의지국’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예의 교육을 공부보다 더 중요시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마다 이방인 20만~30만명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의 나라이다 보니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매너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이다. 귓속말하기 같은 작은 버릇 하나를 두고도 부모를 호출할 정도이니,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 같은 것은 당연히 범죄 수준으로 다스린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이른바 ‘다문화 가정’의 중학생 아이가 집단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 끝에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참담한 뉴스를 보았다. 인구절벽에 맞닥뜨린 한국은 싫든 좋든 이민자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올해로 200만명을 넘어섰다니 하는 말이다. 중학생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어린 당사자들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학교고 언론이고 부모고 어른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해서 벌어진 일이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도 ‘우리’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한 바 없으니, 이런 문제는 필연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사회는 ‘다름’을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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