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 주요 화두는 ‘청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졸자의 절반 이상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대부분인 현실이 15년 이상 지속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찾는 데 11개월 정도 소요된다. 1년 이상 장기 미취업 청년도 22만명이 넘는다. 이 시간 동안 청년들은 생계와 취업 그리고 자기 삶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일자리를 상실했거나 일 경험이 없는 청년은 실업급여와 같은 소득지원도 받지 못한다. 그사이 신용불량, 건강이상, 사회단절 같은 문제들이 깊어지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정부정책으로 등장한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한 시기였다. 2003년 ‘청년실업 종합대책’ 발표 때부터다. 약 15년이 흐른 지금까지 정부정책은 고용 문제 중심이었다. 2004년 제정된 ‘청년실업해소 특별법’과 2023년까지 연장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또한 고용과 실업에 초점을 둔 법률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2018·3·15)도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10여곳의 지자체에서 시작한 청년수당이 ‘청년구직활동지원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월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소비자연맹 등 진보, 보수, 중립성향 단체와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100여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의 청년정책은 어떤가. 미취업 청년들에게 정부는 40여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이행기 청년 노동시장의 특성이나 삶의 조건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취준생, 자발적 이직, 불안정 고용, 니트(NEET)까지 매우 다양한 위치에 있는 것이 청년이다. 실제로 2019년 서울지역 2000명의 청년들에게 ‘개인의 행복한 삶의 중요도’를 물었더니 다양한 가치관과 상상력이 확인된다. 이를테면 ‘인간관계를 통한 안정감’이나 ‘건강한 정치문화와 시민으로서의 참여’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 사회로부터 얻는 안정’이 5위 안에 들었다. 이는 청년들의 가치관이 경제적 가치와 휴식과 문화 이외에도 다양하게 확장되어가는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당·정·청은 청년대책을 발표했다. 국회에서 ‘청년기본법’을 추진하고, 총리실 산하에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청와대는 ‘청년정책관실’을 신설한다고 한다. 앞으로 245개 지자체에 청년 관련 행정조직이 만들어지고 지역에서 청년 욕구에 부합한 정책이 마련될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가 청년정책 제도화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다만 과거 정부가 발표한 청년정책들이 왜 실패했는지부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의 수많은 보고서들이 왜 청년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앞으로 청년의 삶에 다가가는 정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 과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청년정책은 청년 당사자들이 정책을 발굴·제안·결정하고 이에 대한 예산 편성과 집행까지 설계할 수 있도록 정책과정이 혁신적으로 변화해야 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다. 아마도 정책방향과 제도는 유럽연합(EU)에서 2013년부터 권고한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가 참고할 만하다. 청년보장제는 청년의 삶과 여정에 초점을 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정책이다. 물론 정책운영 모델은 서울시의 청년청, 청년의회, 청년정책네트워크, 지원조직 사례 등을 통해 보다 더 진전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 3월 서울시 ‘청년시민회의’ 모임이 열린다기에 찾아가 봤다. 40개 분야별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1000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이 그들을 한곳에 모이도록 했을까.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일까. 국제노동기구(ILO)는 청년의 즉각적인 구직활동을 강제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취지는 국가가 개인적 배경과 관련 없이 모든 청년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으로서의 청년. 이제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사회 주체로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에 중앙과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가 답을 할 때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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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낼 때면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하다는 비아냥을 듣곤 했다. 그렇다 해도 ‘투정부리지 말라’ ‘잘하면 어련히 알아서 뽑을 텐데 무얼 불평하느냐’ ‘좀 더 노력해보고 그런 소리 하라’는 등 듣기는 싫어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들이었다. 공정한 절차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개인의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줄 테고 그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 것 또한 분명했다. 청년실업률 9.9%, 평균 취업 준비기간 1년, 첫 직장 재직기간 15개월이라는 지표가 우리네 삶의 고단함을 증명할 때에도 사회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한 청년이란 딱지만큼은 떼고 싶었다. 적어도 그 과정이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공기관 1190곳 중 946곳이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 80%에 달하는 수치다. 강원랜드의 합격자 전원이 부정 청탁을 통해 입사했고, 한식진흥원에서는 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이를 특별 채용하기도 했다. 4500여명이 지원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는 2299등인 지원자가 36등으로 합격했다. 심지어 가스안전공사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하기도 했다. 금융권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하나은행에서는 소위 말하는 SKY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고 합격권에 있던 7명의 응시자들을 떨어뜨렸다. 국민은행은 추천인과 요청 사항을 정리한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청년은 더 이상 노력할 수 없다.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았다. 청년에게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초월 스펙이 부족했기에 취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초월 스펙은 SKY대학 출신이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었고, 금수저였다. 이렇게 학벌주의와 성차별, 지연과 혈연이라는 연고주의의 민낯이 가장 솔직하고도 추악하게 드러났을 때에도 청년은 스스로를 탓하고 검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일자리 하나 물어다줄 인맥 하나 없는 부모님을 만난 내가 잘못이며 잠도 덜 자고 밥도 덜 먹어가며 공부해서 SKY대학에 진학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취업 실패의 원인은 갈수록 개인화되고 내밀해진다. 이것이 채용비리 사건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물증이 없다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은 자신의 무능을 반복적으로 탓하고 학습하기에 이른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엄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나, 불합리하게 떨어진 서류 지원자와 점수 조작으로 인해 합격권에서 굴러 떨어진 응시자를 구제할 수 없다면 이 피해를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

일자리위원회가 백날 들여다보는 청년실업률에 청년고용의 해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이미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와 성차별, 연고주의에 따른 불법 채용이고 열악한 업무환경을 방치하는 조직의 무능이다.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다시 응답하라.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그리고 결과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오로지 ‘노력’ 하나로 적자생존하는 청년들의 공정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겠다고 말이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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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청년, 취업

▲ 파렴치한·철딱서니들이 멘토로 군림
청년 앞엔 비정규직·알바만 기다려
지금의 시대는 처절한 계급시대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책을 꼽는다면 단연 <아프니까 청춘이다>일 것이다. ‘청년의 지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 청년에게 할 첫 번째 말은 ‘미안하다’여야 한다. 좀 더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바꾸자, 나도 함께하겠다’여야 한다.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게다가 저자 김난도는 이른바 소비 트렌드의 권위자로서 매년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고급호텔에 사장들을 모아놓고 올해의 장사거리에 관한 세미나와 특강을 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행태 자체를 비난할 건 없겠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동시에 소비는커녕 생존 자체가 암담한 청년들에게 그런 설레발을 친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어찌됐든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했고 제 책을 300만부 넘게 팔아치웠다.

다행스러운 건 청년들이 더는 그런 유의 설레발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혜민이라는 중은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자기 중심이 없어서라느니 따위 이야기를 했다가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큰돈을 벌고 유력한 문화자본가가 되었는데 이 또한 김난도의 것 못지않게 기막힌 책이다. 저야 미국 대학의 교수에 중이니 삶의 번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멈추고 정리하면 되겠지만, 멈추고 싶어도 도무지 멈출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할 말인가. 총각네 야채가게 사장 이영석은 몇 해 전 낸 책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에 적은 ‘일을 가르쳐주는데 내가 돈을 받아야지 왜 주는가’ 따위의 내용이 새삼스레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언급한 세 책들이 근래 출판시장에서 가장 약진했다 평가받는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이 사회를 한때 휘어잡은 어떤 정신적 파행을 드러낸다.

어찌됐든 광장에 세워져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모자랄 파렴치한과 철딱서니들이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하며 그 얇은 지갑을 터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들의 의식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 착취로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한 건 물론, 조기숙씨는 갑질하는 고객 앞에서 무릎 꿇은 주차 알바 청년이 청년답지 못하다고 했다가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변화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더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추고 분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열거한 멘토들이 파렴치함을 넘어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부도덕한 사기행각으로 치부한 걸 넘어 청년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체제의 충직한 주구 노릇을 해왔고 그들의 영예와 안락은 그 대가였던 셈이다.


멘토 사기꾼들의 활약이 여의치 않아진 상황을 대체하는 신종 사기는 ‘세대론’이다.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을 비롯, 현재 청년들의 현실을 장년세대와 대비하면서 마치 장년세대가 알맹이를 다 빼먹어 버렸기 때문에 청년세대엔 쭉정이만 남았다는 식의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과잉생산에 의해 불황과 공황을 반복하는 자본주의 본연의 생리를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청년 현실은 세대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더욱 극악해진 한국 자본주의의 반영일 뿐이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여년 동안 민주정권, 보수정권을 막론한 한국 경제정책의 뼈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살고 일자리도 창출되어 다 잘살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실제로 만들어낸 현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다. 정규직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중심 틀로 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순으로 조직력이 약한 노동 부문과 세대로 내려갈수록 모순을 강화했고 결국 노동의 출발점에 선 청년들 앞엔 비정규직과 알바만 기다리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현실은 기업의 두목들, 즉 몇몇 대기업 총수들이 정치도 법도 언론도 지배하는 사회의 왕이 된 것이다. 사회가 그 왕들의 의중에 의해 운영되면서 한국은 더욱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되고 있고 다시 그 극단에 청년들이 서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청년들은 전체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모두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오해다. 한국 사회의 부의 편중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에 이르렀고 사회복지 공공부문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한국의 한 해 예산은 350조원가량인데 최상위계층 1500명이 300조원의 자산을 독점하고 무리없이 세습한다.

대다수의 청년이 88만원 세대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극소수의 청년은 88억원 세대이며 심지어 그 일부는 888억원 세대다. 88만원 세대 청년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의 직격탄을 맞은 청년들이고 88억원 세대 청년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수혜를 입은 청년들이다. 현재 한국은 소수의 88억원 세대 청년들의 건재를 위해 대다수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살아야만 하는 사회다. 청년 문제의 진실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 철저하고 처절한 계급적 참상이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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