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핫하다. 지난달 10일부터 고교생들이 ‘기후를 위한 낙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유럽연합 본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학생과 어른들도 가세하여 이 시위는 매주 목요일 4주째 계속되고 있다. ‘기후를 위한 젊은이들’로 이름 붙여진 시위대답게 “우리는 기후보다 더 뜨겁다” “나의 미래를 불태우지 마라” “공룡도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학교 빼먹기? 미래를 위해 싸우기!”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후변화를 늦추자고 외친다.

지난해 12월2일부터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맥없이 끝난 뒤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일이다. 올 초 다보스포럼에 스웨덴 고교생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구온난화를 막자고 연설한 것도 독일, 스위스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기세가 한반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스카이캐슬’ 때문에.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24차 당사국총회가 개막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뤼셀 _ 로이터연합뉴스

1995년 13명이 죽고 5000여명이 부상한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사린 테러사건’에 충격을 받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하며 일간지에 기고를 하였다. ‘폐쇄회로와 개방회로’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소위 엘리트들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가담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옴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들을 폐쇄회로에 비유하였다. 입구는 있으되 출구는 없는 언더그라운드. 그곳은 완벽한 세계처럼 보인다.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라면 모든 사물의 이치는 명백하기에 교주에게 맹종한다. 그것이 평화를 주고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실재하는 세상은 개방회로의 사회다. 이곳의 세계는 불안하고 혼돈스럽다. 그러나 생각이 열려 있어서 설령 결점투성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하루키식으로 보자면 스카이캐슬의 사람들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서, 그 고교생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면 누군가 선동했더라도 시위에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갈 가까운 미래가 지구온난화로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에 절박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재기발랄한 슬로건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미 북서부의 체감온도는 영하 50도에 육박하였다. 추위 때문에 땅속 수분이 얼어 부피가 팽창하면서 마치 지진처럼 ‘충돌음’이 울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반면에 남반구 호주는 연일 48도가 넘는 폭염으로 더위를 피해 뱀들이 사람 사는 집으로 피난을 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도 차이가 거의 100도에 이른다니 상황판단 제대로 한 유럽의 고교생들이 기특하다. 한편 캐슬에 갇힌 채 어떤 재난이 닥칠지 걱정할 겨를도 없이 입시와 취업경쟁에 내몰린 우리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스카이캐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이미 거대한 폐쇄회로처럼 보인다. 지난여름의 폭염과 현재의 미세먼지, 시한폭탄 같은 플라스틱 문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 석유·석탄에 기반한 탄소경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지난달 29일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3개 사업을 발표하였다. 대부분은 철지난 토건 사업, 사회간접자본 구축 사업들이다. 지금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현존하는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때이다. 이럴 때 과연 토건 사업이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까. 차라리 환경교육 예산을 늘려 기후변화에 책임감을 갖는 세계시민을 길러내고, 환경문제 해결을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만들어내는 청년 스타트업들을 육성한다면 사회‘직접’자본이 되지 않을까. 24조원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기후변화 감수성’을 높이는 일에 쓰인다면 탄소경제의 컴컴한 폐쇄회로를 탈출할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선거연령을 대폭 낮춰 고등학생 정도라면 사회문제에 눈뜨게 하자. 세상을 바꾸는 건 청춘의 또 다른 의무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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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을 우려하는 연구 결과 두 편이 19일 공개됐다. 하나는 미국 하와이대 등 국제연구진이 기후변화 전문 학술지인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발표한 것으로 지금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세기 말 일부 연안 지역에는 최대 6가지의 재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경우 홍수, 해양의 화학물질 오염, 온도 상승, 해수면 상승 등 4가지의 중대 재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또 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인 ‘네이처’에 남극 대륙 빙하의 녹는 속도가 10여년 정도 늦춰지겠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재난 등 부정적 영향은 더욱 클 수 있다고 했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시민의 일상생활에까지 파고든 지 오래다. 재난 수준인 미세먼지도 지구온난화 탓이 크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는 대기의 흐름이 원활하면 바람에 흩어진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상공의 강한 제트기류의 흐름이 끊기고 대기가 정체되면서 미세먼지 농도를 높여 피해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여름 한국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폭염이 나타났다. 이것도 온난화에 따른 제트기류의 변동 때문이라고 한다.

전 지구적인 온난화 추세보다 한반도 온난화가 더 급속하게 진행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지구의 평균기온이 20세기 이후 112년간 0.89도 상승했지만 한국은 1912년부터 2010년까지 89년간 약 1.7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의 해수면 상승속도도 지구 평균치보다 빨랐다.

하지만 정부의 온난화 대책은 ‘남의 집 불구경’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가하다. 지난여름 기후변화 분석기관인 기후행동추적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매우 불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너무 낮고 방법도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감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자원절약이나 재활용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시민의 활동도 활발하다고 할 수 없다. 온난화를 포함한 기후변화는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재앙 경고를 결코 흘려듣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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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된 경향신문 ‘생태계가 바뀐다’ 기획의 마지막 기사는 ‘2050년의 기상예보’였다. 최고기온이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아열대 지방처럼 예측 못할 비가 쏟아지기도 하며, 따뜻해진 바닷물 대신 인공동굴에 들어가는 것으로 피서를 하고, 스키를 타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2050년의 기후 풍경을 보여주었다. 지난여름의 폭염을 겪은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래였다.

공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법한 미래의 날씨를 제시했다는 이 기사에서는 각종 미래 예측에 그동안 단골로 등장하던 인공지능 기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하는 인공지능 기상캐스터가 폭염 소식을 전하고, 손목에 찬 스마트칩에서 요즘의 재난문자 비슷한 메시지를 가상 영상으로 띄우는 게 전부다. 오히려 에어컨 대신 ‘패시브쿨링 컨디셔너’를 사용해서 만드는 ‘마이크로 기후’가 미래 첨단기술처럼 들린다. 2050년쯤이면 세상을 놀랍도록 멋지고 편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던 인공지능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제 할 일을 부여받지 못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두 차례 폭염을 겪었다고 해서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각종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지 않으면서 30여년 후 미래를 예측하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대신하여 미래 예측의 중심에 등장한 것은 폭염에 시달리는 ‘인공지구’다. 인공지구는 인간이 만든 지구,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망친 지구를 뜻한다. 인간이 지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구가 인간을 만들었다고 해야겠지만, 지금 지구의 모습에 인간의 발자국이 너무 크고 깊게 남아 있기에 “인간이 지구를 새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긴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시대’, 즉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할 만하다. 인공지구란 바로 그 인간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지구의 처지를 일컫는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 모두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거나 변모한 존재들이지만 우리는 양쪽에 대하여 사뭇 다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인공지능을 보면서 경이와 두려움을 고백하는 데 익숙하지만, 인공지구에 대해서는 이것이 우리 손으로 빚어낸 결과임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공지능은 막 성장을 시작하고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먼 훗날 이것이 불러올 변화를 상상하면서 미리 호들갑을 떤다. 반면 인공지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무심하다.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을 향해 달려들면서 인공지구로부터는 도망치고 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은 우리가 만든 지능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모른다면서 우리가 망친 지구를 버리고 화성으로 옮겨 가자고 한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에 대한 관심과 행동의 심각한 불균형은 학계와 정부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세상 모든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이 있다는 생각은 식상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가령 유발 하라리가 쓰는 ‘사피엔스’의 역사와 미래 서사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근대 기술을 통해 자기 외부의 세계를 정복한 사피엔스에게 남은 목표는 자기 자신의 영생과 행복이며 그 새로운 탐구 혹은 정복의 핵심에 인공지능이 있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거울처럼 손에 들고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로 향한다. 하라리도 ‘생태학적 위기’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의 역사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공지구보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산업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정부의 정책도 인공지구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향한다. 인공지능은 돈이 되고 인공지구는 돈이 되지 않는다. 무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앞에서 인공지구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공지구는 쉽게 정책의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떻게든 산업으로 만들어야 겨우 관심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인공지구의 한 현상인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공기산업’이라는 참신한 개념과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기산업은 새 제품을 내놓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를 양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과 대책은 인공지구를 인공지능과 비슷한 방식, 즉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대하고 있고, 따라서 인공지구의 근본적 문제들을 직시하지 못한다.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구원받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영생을 얻거나, 인공지능을 통해 사피엔스를 넘어선 존재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도망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간을 공격하고 정복하려 드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인공지구에서 먹지 못하고 숨 쉬지 못하게 되어 사라질 것이다. 폭염 끝에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운명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구에 달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 몸 주위에 스마트하게 ‘마이크로 기후’를 만들어 버틴다고 해도 인공지구의 힘 앞에서 무력할 것이다.

만능 해결사 같은 인공지능에 한계를 부여하는 것은 인공지구이다. 인공지능의 가능성도 인공지구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더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2100년에도 인간은 인공지능과 결합해서 신이 되지 못한 채, 여전히 인공지구의 땅과 대기 속에서 발버둥치고 살면서 이런저런 일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인류세의 인간은 인간이 만든 지능과 인간이 만든 지구라는 조건 사이에서 살게 되었다. 

인공지능과 인공지구를 함께 고민하는 작업은 그동안 인공지능으로 가득 차 있던 미래 예측과 미래 정책에 인공지구를 더 많이 등장시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인공지구에 대해서도 얘기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현실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폭염과 다음 미세먼지가 올 때까지 인공지구는 잊고 다시 인공지능에 몰두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전치형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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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채소,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여름 폭염과 가뭄, 태풍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으로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잎채소는 가뭄에 녹아내린 데 이어 폭우로 물에 잠기면서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시금치 가격은 예년의 3배 이상 큰 폭으로 올라 한 단에 1만원을 호가한다. 배추와 상추도 1.5배 이상 올랐다. 다락같이 오른 식재료 가격에 삼겹살 전문식당들은 아예 상추를 내놓지 않거나 추가제공을 제한한다는 말도 들린다. 채소뿐만 아니라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도 비바람에 떨어져 출하물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고온에 가축폐사가 속출하면서 오름세였던 축산물 가격이 예년 수준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3일 충북 영동의 사과 농장에 폭우와 태풍으로 사과들이 떨어져 썩어가고 있다. 권도현 기자

기상이변으로 농민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 과수, 채소 재배 농가는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올해 농사를 망쳤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사과는 집중호우로 낙과 피해에 이어 갈라지는 현상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앞으로도 비가 더 온다고 한다. 피해가 아직도 끝난 게 아닐 수 있다. 농산물 출하량 감소는 자영업자와 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먹거리 물가의 급등에 식재료비가 오르면서 요식업 자영업자는 애가 타들어간다. 음식값을 올릴 수도 없는 처지에 식재료 가격의 상승은 수익감소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위 탓에 손님이 대폭 감소한 전통시장은 생활물가까지 오르자 손님이 더 줄었다며 아우성이다. 일반 가계는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실질적인 구매력이 떨어져 “장보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물건을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놀라서 내려놓았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정부는 3일 추석 성수품을 예년보다 1주일 앞당겨 이번주부터 공급하기로 했다. 농산물의 공급을 평균 1.4배 늘리고, 명태·오징어·갈치·조기 등 해산물도 방출규모를 확대했다. 판촉행사도 적극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선 안된다. 가계의 체감물가는 정부 생각을 넘어서 있다. 상추 가격이 너무 오르자 “상추에 삼겹살을 싸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온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팍팍해진 서민들에게 물가불안마저 안겨서는 안될 것이다. 피해 농가에 대한 대책도 중요하다. 아울러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긴급수입을 해서라도 물가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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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참 무덥고 비도 많이 내렸다.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날씨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더워서 어디 살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 더위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4년 여름 나는 군대에서 일병을 달고 있었는데 그해도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내부반이 서쪽 건물 벽에 붙어 있어 지는 해의 열을 받아 밤새 후끈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들 혀를 내둘렀지만 그걸 가지고 기후변화를 운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여름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머리는 이 더위를 지구온난화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는 지난 십수 년간 조금씩 확실하게 진행되어 이제 피부로 인지할 수준까지 됐다는 이야기다. 내년에도 이런 더위가 올 확률이 매우 높다. 겨울은 어떤가.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북극의 한풍이 한반도를 덮었던 지난겨울의 상황이 올해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름엔 지독하게 덥고 겨울엔 지독하게 춥다. 사계절이 완만하게 서로 바뀌며 순환하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난 8월 20일 기준으로 전국 저수지의 저수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충남에서 가장 낮은 저수율을 보인 공주시 중흥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해왔다. 기후가 바뀌면 거기에 맞게 적응하면 된다. 군대에 제빙기를 넣어주고, 양봉하는 사람은 벌통 주변에 나무를 수십 주 더 심어 온도를 낮춰준다. 게릴라성 폭우와 폭염이 몰아치는 여름에는 야외에서 하는 행사를 대폭 줄여야 하고, 더위로부터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취약계층을 잘 살펴야 한다. 과일이나 농작물도 기후 변화에 맞게 바꿔서 심거나 물과 온도를 조절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에어컨 업체는 생산량을 늘리면 되고 정부는 전기료를 깎아주면 되고 정치인은 더위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명한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면 아마존 밀림이 붕괴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쓰는 산소 중 상당히 많은 양을 생산하는 이 거대 삼림이 황폐화되면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가 250PPM이나 추가로 배출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이산화탄소의 막이 좀 더 두꺼워져서 온도가 1.5도 상승하게 된다. 이는 곧 지구 온도를 4도나 상승시키는 일로 이어지고 이 단계에 접어들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소와 메탄이 우후죽순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더 늘어나 곧 5도 상승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바다 심해에 저장되어 있는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대기 중으로 나와 6도 상승에 이르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이런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지구의 온도 상승은 2도 상승이 마지노선이라는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그 이상이 되면 임계점을 벗어나 인간의 손으로 막을 수 없는 연쇄반응이 시작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금성이 떠오른다. 요즘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금성은 사실 지옥성이다. 금성을 감싼 두꺼운 가스층으로 인해 온실효과가 극단적으로 진행돼 내부 온도가 무려 500도를 넘는다고 한다. 지구가 이런 환경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 여름보다 무려 5~6도나 더 덥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북극에서 절대, 네버, 앱솔루틀리 녹을 일이 없다는 코어 빙하에 금이 쩍 하고 갔다는 뉴스도 보도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기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당신은 너무 야속한 사람이다.

기후윤리학자인 가디너(Stephen M. Gardiner)는 기후 변화와 관련한 원인과 결과의 분산성, 행위자의 파편성, 제도의 불충분성 때문에 기후 변화를 좋은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경고한다. 기후 앞에서 인간의 도덕성은 붕괴되어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내가 참고 협조하면 그게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도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대응을 막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나는 사람들의 기후 감수성을 높여주고, 기후 판단을 도와줄 책들을 계속 펴내고자 한다. 올해 <폭염 사회>라는 책을 내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실제 판매는 기대와 달리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심각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좀 더 쇼크를 주거나 재미요소를 넣거나 하는 수밖에. 조만간 그런 책을 들고 다시 돌아오리라. 폭염의 귀환에 맞춰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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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가 열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방전됐다. 지인에게 산 이 경차는 연식에 비해 상태가 꽤 좋아서 그동안 한번도 나를 속 썩인 적이 없었다. 무선키의 버튼을 누르면 항상 멀리서부터 ‘딸깍’ 하는 경쾌한 소리로 화답하던 자동차가 어느날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라니. 혹시 이렇게 될까봐 시동을 끌 때는 언제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선까지 완전히 뽑아두었는데 말이다.

어디 누전되는 곳이 있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정비소로 끌고 갔는데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던 정비사는 차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배터리는 교체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원인일 리가 없고, 발전기 성능도 정상이었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차인데 처음 방전되고 난 후에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전력을 많이 썼으니 며칠만 세워둬도 다시 방전될 수밖에요. 에어컨 계속 트셨죠? 에어컨이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잡아 먹거든요. 게다가 블랙박스 같은 기기들도 다 켠 채 운행하셨을 테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생각해보니 그랬다.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하다보니 자동차는 주말에만 쓰는 터라 가뜩이나 충전할 수 있는 운행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에어컨은 물론이고 앞뒤로 단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휴대폰 충전까지 전력을 그렇게 많이 썼으니.

정비사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운행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어려우면 한동안은 2~3일에 한번씩 10분 동안만이라도 시동을 켜놓으시든가요. 요새 같은 날씨에 에어컨을 안 틀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전력 사용도 조금 줄이시고요.” 그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에어컨을 단 1초도 끌 수 없었다. 에어컨을 끄면 찜통이 되는 차 안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고통받은 올여름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이제 에어컨은 거부해야 하는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 필수품이 됐다는 깨달음. 올여름 전국의 평균 폭염일수는 31.2일로 1994년을 넘어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열대야는 16.7일 연속 이어졌고, 공식 최고기온이 40도를 돌파하는 등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밤에도 에어컨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든 이런 극단적인 여름 더위가 앞으로는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선풍기의 더운 바람에만 의지하다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노약자들을 생각하면, 저소득층의 정보접근권을 위해 보급된 저가형 스마트폰처럼 당장 보급형 에어컨 개발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올여름은 우리에게 교훈뿐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도 남겼다. 그것은 아마도 방전된 자동차가 나에게 던진 숙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의 배터리 용량이 한정돼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쓰는 전력 공급의 한계는 잘 실감이 되지 않는다. 수요가 느는 만큼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단지 공급을 어떻게 늘릴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만 치환된다. 그러니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탈원전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이는 갚을 수 없는 빚을 내서라도 배터리 용량이 큰 차를 사면 방전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빚을 내 지구도 더 큰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결국 원전은 미래 세대에 갚지 못할 빚만 지우는 셈이다. 게다가 폭염이 가속화되면 원전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독일과 핀란드, 스웨덴 등은 올여름 일부 원전 가동을 일시 중지했다. 폭염으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 원전의 냉각수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여름 폭염이 나에게 남겨준 숙제는 이것이다. 에어컨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에어컨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요즘 정비사의 조언에 따라 오밤중에 주차장에 내려가서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오곤 한다. 두 번이나 방전 사태를 겪고 나니 갑자기 실내등을 켜는 데 들어가는 전력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효과적인 전력 사용 포트폴리오를 짜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 대신 스마트폰 앱을 쓰면 좀 나을까. 야심차게 앞뒤로 달아놓은 블랙박스는 안전한 곳에서는 가능한 꺼둬야겠다. 데일 듯이 덥지 않다면 1시간에 5분 동안만이라도 에어컨 대신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자.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에너지는 한정돼 있는데 에어컨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전력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줄여야만 한다. 밤에도 30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 에어컨을 틀면서, 빨래를 말리기 위해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하는, 그 모든 삶의 패턴을 누리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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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더위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한 지인은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옮겨 다녀서인지 더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나온 뒤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역시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게 당연한 듯싶지만 더위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부자보다 빈자에게, 건강한 사람보다 병자와 약자에게 더 가혹한 게 더위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이 같은 위협과 직면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혼자 살았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사망자 중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빈곤하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미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시민권자보다 3배 더 높았다.   

폭염이 이어진 14일 한 관광객이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고 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에어컨 실외기 등이 합작해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적하고 초목이 많은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다. 부유층·중산층 거주 지역은 주변에 정원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초목이 열기를 식혀주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거주 지역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2017년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내 흑인은 초목보다 아스팔트·콘크리트로 뒤덮인 지역에 살 가능성이 백인보다 52% 더 높았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도 이런 가능성이 백인보다 각각 32%, 21% 컸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한다면 더위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이번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올랐던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 주민들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질식할 것 같다” “집이 오븐 같다”고 호소했다. 히잡, 부르카 등을 써야 하는 여성 무슬림들에게 더위의 고통은 배가된다. 카이로 슬럼에 사는 한 여성은 “딸에게 히잡을 두 겹만 두르거나 밝은색 히잡을 쓰라고 항상 얘기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온열질환자 중 32%는 길가, 25%는 논밭에서 쓰러졌으나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도 19%에 이르렀다. 정부는 폭염주의보 발령 등 기온이 치솟을 때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내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2014년 영국 공중보건국은 “냉방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수준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냉방 시스템의 분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더위 해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 면적 이상 넓이의 옥상 정원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옥상 정원은 주변 기온을 2~3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선 ‘쿨 루프’(시원한 지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붕에 햇빛을 반사하는 성질의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추자는 취지다. 로스앤젤레스 시당국은 아스팔트 위에 이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도시계획과 주거, 복지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 때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점의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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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의하면, 연일 계속되는 이번 폭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아메리카, 북유럽, 아프리카 등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상이변인데, 지구온난화가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고 한다. 고도 10㎞의 상층 대류권에 기압 차이로 서에서 동으로 부는 강한 바람띠(편서풍, jet stream)가 형성돼 있어 대기 순환에 기여하는데, 이 바람이 약화되어 고기압의 흐름이 정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서 상승기류가 활발해진 것도 고기압 발달에 기여했다고 한다. 호주의 한 대학 연구팀은 20개국 412개 지역에서 2031~2080년 열파(Heat Wave)로 인한 사망자를 예측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2031~2080년의  열파로 인한 사망자수는 1971~2010년 대비 4배 이상 20배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산화탄소(CO2)의 배출로 온실효과(Greenhouse Effect)가 발생하여 지구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을 지구온난화라고 불러왔는데, 최근에는 미국 과학학술지 논문에서 핫하우스 지구(Hothouse Earth)라는 개념이 소개됐다. 지구온난화가 돔(dome)이 씌워진 것 같은 현상의 임계점을 이미 넘어서서, 더 이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가 온실이 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대체로 기후변화를 인정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만 줄이면 마치 산술적으로 온실효과도 진행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미 일어난 현상이 지구의 안정된 질서를 깨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예측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이 그 실례이고, 기후변화 관측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가장 위협적인 요소로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을 경우를 든다. 빙하가 녹으면 지구 평균 해수면을 7m 이상 높이게 되고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반이 잠기고, 상하이도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태국, 메콩강 하구도 지대가 낮은 편이라 해수면 상승 시 위험하다. 폭염과 혹한, 홍수 등 극한현상은 진작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관측돼왔다. 식량과 물부족, 기후난민, 빈곤심화 등의 사태도 기후변화의 결과로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에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95개 국가들이 산업화 이전 시기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켜야 하는 공동의 의무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 후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도 상당히 제고됐지만, 이것이 단순히 에너지 공급원인 화석연료를 줄이는 것만으로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이미 나타난 사태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이다. 지구 평균기온은 2016년 현재 1.1도 올랐고 바다도 계속 더워지고 있는데 한번 더워지면 열이 잘 식지 않기 때문에 수온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본다.

그런 가운데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기후변화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산업문명이 초래한 것이어서 미국은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국가이지만, 실제로 기후변화의 피해는 미미한 편이다. 기후변화에서는 원인제공을 한 선진국 국가군과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 간의 불균형도 문제해결에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위에 속하는 책임이 큰 나라다. 지구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급변하리라는 예측을 하면서도 신속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피해를 겪기 전에는 좀처럼 문제를 실감하기 어렵고 관행대로 흘러가는 게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의 고통스러운 장기간의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보다 절실한 각성의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지구적 규모로 거대화한 물질적 성장과 혜택을 공유하기에 한 국가나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실천할 방법들이 마땅치 않고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개인으로선 속수무책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물론 개개인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을 나누면서 적합한 생활방식을 찾아 사소한 실천이라도 해나가야 한다. 이제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기후변화는 산업문명의 시작 때부터 드리워져 있던 어두운 이면이다. 이제 포화상태의 표면을 뚫고 드러나는 놀라운 진실은 우리 스스로 공동의 집 지구를 폭행하고 망가뜨려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지구를 파괴할 정도로 가공할 만한 힘을 부려본 경험이 이전에 없었기에 무분별한 과오로 인해 초래됐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 저변에는 왜곡된 문명의 관점으로 ‘이기심’이 깔려 있다. 탐욕이 인간의 속성이라 하더라도 지구와의 관계에서 배려와 신중함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이다. 인간중심주의는 대체로 두 형태로 나타난다. 과오를 알게 된 상황에서도 거짓말과 조작을 동원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경우이다. 일찍이 레이철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화학제품의 문제를 폭로했을 때부터 산업의 이익을 누리는 측에서는 항상 그런 반응을 반복해왔고, 지금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의 근저에는 과학을 발전시켜서 자연을 지배하고 그리해서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의 성찰능력에 대한 위대한 자부심이 놓여있다. 그러한 의식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동력이기도 했다. 이제 인본주의의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지점에서 다시 연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와의 관계 재정립이 이 문명의 가장 커다란 숙제이며, 이 문제와의 상호연관성 안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가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이다. 바다가 육지를 삼키고 하늘이 두꺼운 온실공간의 뚜껑으로 갇혀버려 산천초목이 죽어간다면, 밀폐된 지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으랴.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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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1988년은 역대 어느 해보다 더운 해라는 점이다. 둘째,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온실효과가 폭염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까지 지구의 5년 단위 평균기온이 1950~1980년보다 약 1.03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워싱턴을 비롯한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를 예측했다. 핸슨의 예측 결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2017년까지 실제 기온 상승폭은 0.82도였다. 4개 도시의 극단적인 날씨 일수는 오히려 핸슨의 예측을 웃돌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네이멍구 바우터우 쿠부치 사막의 조림지 대한항공 녹색생태원에서 임직원들이 황사 방지 희망 나무를 심기 위해 사막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바우터우(중국) _ 이준헌 기자

그로부터 30년. 핸슨은 자신의 바람과 달리 예측대로 가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더욱이 올해 들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최고기온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구는 더워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을 넘어섰다. 지구온난화의 심리적 저지선이라고 불리는 400PPM을 넘어선 지 3년 만이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가 인간의 손을 떠났다는 섬뜩한 전망까지 나왔다. 8개국 13개 연구기관의 학자들은 지난 6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기후변화가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면 지구가 자정작용을 멈춰 온실가스 감축 등 향후 인류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핸슨 박사도 회한을 드러냈다. 지난 6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기후변화 이야기를 대중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쓴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30년 전 핸슨의 증언을 “침울한 이정표”라고 했다. 한 과학사 연구가는 핸슨을 “비극적인 영웅”으로 묘사했다. 핸슨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린 선지자였지만 대중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핸슨은 대중과의 소통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변화 반대시위 현장에서 5번이나 체포될 정도로 과학자를 넘어 시민행동가로서의 소임도 다했다.

2012년 봄에는 ‘내가 기후변화에 대해 반드시 외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TED 강연을 했다. NASA에서 은퇴하기 1년 전에 한 이 강연 동영상은 130여만명이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빨리 예측하고 알리고자 했던 핸슨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응해온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문제다. 그가 회한의 소회를 밝힌 이유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TED 강연 동영상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할아버지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그가 손주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결국 그를 ‘기후변화 전도사’로 나서게 한 건 미래세대에게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구를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핸슨의 역사적인 증언으로부터 한 세대가 지났다. 기후변화는 거대담론이다.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는다. 핸슨 같은 선지자의 경고보다 에어컨 전기료 폭탄 문제에 우선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핸슨은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이다. 그래서 당신이 있었기에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아직도 대처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 핸슨은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기 전날 밤,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면서 다음날 날릴 멋진 문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그 말을 깜빡 잊어버렸다. 청문회 뒤 기자회견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다.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온실효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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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한반도에 불어닥친 유례없는 폭염은 많은 서민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올해만 유독 불거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최근 5년 동안 매년 한반도 사상 최고기온이 경신되고 있고 최악의 더위는 여름철 늘 있는 대책 없는 단골뉴스가 되는 등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러한 기온 상승은 기후학자들이 우려하는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여름철 며칠만 피하면 괜찮은 것이 아닌 다수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름 내내 지속되는 자연재해가 된 것이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8일 경북 영주시 문수면 승문1리 한 수박밭에 강한 햇볕으로 껍질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상한 수박들이 줄지어 버려져 있다. 이 수박밭에서는 수확하려던 6000여개 중 80~90%가 버려졌다. 이준헌 기자

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내는 대응은 임기응변의 세금 투입 일색으로, 주변 전체를 생각한다면 폭염을 더욱 심화시키는 대책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근본적 대책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 더위가 지나면 내년 여름까지 잊히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기실 전 지구적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에 정부가 내놓는 대안이 당장 살기 힘든 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재난의 원인을 지구적 산업화에 따른 온난화라 치부해 버리면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으며 순순히 더 길어지고 더 세지는 여름철 재앙을 앞으로도 이렇게 무방비로 견디는 것만 남게 된다. 한반도 기온 상승이 지구 평균에 비추어 두 배 이상 빠른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도 문제를 대외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당장 원전을 더 가동시켜 전기를 싸게 쓰자는 대책을 일부 기득권에서 주장하고 있지만, 원전이 광범위한 해수면의 온도 상승 유발원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더위에 지친 서민에게 전기료 절감과 같은 달콤한 대책으로 비치지는 못하겠지만, 한반도 기온 상승의 속도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절실히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논의는 우리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히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지구적 기온 상승의 원인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과도한 배출이다. 이 근본 원인에 대한 대책은 첫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며, 둘째는 배출된 온실가스를 더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간단해 보이는 이 대책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난상황에서 무조건 더위를 참으며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말이나, 일반화된 소비 행태의 급진적 전환 요구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대책의 시작은 기온 상승을 유발하는 화석에너지원 및 원전의 빠른 전환과 함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 흡수를 위한 대안은 숲의 면적과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목은 탄소를 흡수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에 물을 뿌리는 효과와 동일하게 수분을 증발시켜 대기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이중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녹지정책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위한다는 최우선 명분과는 달리 탄소 흡수 기능을 훼손하는 데 지속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왔다. 숲가꾸기 사업이 그것인데, 최근 10년간 약 2조2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한 사업의 대부분은 간벌과 가지치기로 숲의 탄소저장 총량과 연간 탄소흡수량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아울러 지금의 기온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한반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나무가 살아갈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겨울철 온도 상승이 주된 원인인 소나무재선충병 방재를 명목으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참나무와 낙엽활엽수 숲으로의 안정적 전환을 방해하는 데 쏟은 세금이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폭염의 대책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각 분야에서 폭염을 가중시키는 데 들이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높은 효과를 보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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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록적인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져 솟아오르는가 하면 베란다에 내다놓은 달걀이 부화되어 병아리가 태어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대처하라”고 했다. 지자체와 정부 기관들도 폭염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예전처럼 “무더위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극복하자!”고 외치기가 무색하다. 정부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일상적인 생활 속 시민 안전을 외치기 전에 산업현장에 대한 긴급점검을 주문하고 싶다. 특히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단지, 유해성 물질 제조공장, 건설현장, 조선소 등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는 위험한 국가 기간산업 단지들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노후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위험한 파이프 배관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자칫 한 도시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또한 폭염에 대한 지자체의 대책과 정부 대책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산업현장에서는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폭염이 지속된 5일 한강 물총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난지한강시민공원 물놀이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에 가장 곤혹스러운 업종은 수주산업인 조선소 및 건설현장들이다. 정해진 기일이 있으므로 속도전 공사 관행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일용직 형태다 보니 일을 못하면 생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계속되는 폭염에 대한 정부 대책 발표에 현장들이 생색내기식으로 급조한 그늘막 휴게실은 근무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단속 및 점검 대비용일 뿐이다. 이마저도 협소한 소규모 공사현장들은 꿈같은 얘기다. 공사장 지하층은 휴게실 대신 각종 자재들로 꽉 채워져 있다. 철판을 많이 사용하는 조선소 및 밀폐공간 작업장,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많은 건설현장,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공사장은 평균 기온이 5~10도 더 높다. 여기에 더 힘든 노동 강도가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규칙 등)을 보면 휴식 및 휴게 시설 설치, 소금과 음료수 등의 비치 등을 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24조).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처벌과 단속 실적은 전무하다.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가 현실화되게 하기 위한 세부적인 강행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공사금액별, 작업인원별 휴게공간 설치 규정 등 세세한 기준들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하청에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이다. 최근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보면 무더운 낮시간에 1~2시간 더 휴게시간을 보장해 주는 대신 연장근무를 강요하는가 하면, 오전 근무만 시키고 오후엔 귀가 조치를 한다. 물론 일당은 반나절치만 지급한다. 그나마 일부 노조가 있는 현장들은 조출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모두가 휴게시간 없이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급 휴게시간 보장은 꿈같은 얘기다.

보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공사 발주 단계에서 사업주의 악천후에 대한 보건조치를 명시하여 설계가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 둘째,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산업안전에 대한 근로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각 공사비별, 출력인원별 충분한 휴게시설 면적 등 세부지침이 나와야 한다. 넷째, 산업현장은 노동 강도가 더 높으므로 기상청 폭염경보 기준을 분리 적용해야 한다. 참고로 29도만 넘어가도 휴게시간을 30분 더 보장하는 대형 조선소도 있다. 다섯째, 폭염도 자연재난이라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폭염, 한파, 미세먼지 등 산업안전 측면에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정부와 사업주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인력도 자산이다.

<박종국  경실련 시민안전 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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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30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도 수만명의 조문객이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 직장인 등 다양한 시민들이 줄지어 선 풍경은 그가 얼마나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추모 열기는 전국의 36곳 분향소를 넘어 베이징, 로스앤젤레스 등 해외 한인사회에도 이어졌다. 손편지·방명록·포스트잇·홈페이지를 통한 추모 메시지가 넘쳐나고, 정의당에는 당원 가입과 후원금 납부가 급증했다고 한다.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26일 추모의 글을 적은 종이를 장례식장 입구에 붙이고 있다. 김영민 기자

고인을 애도한 5일 동안 시민들은 정치인 노회찬의 삶과 꿈을 되새기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빈소와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혼자만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다” “노회찬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왔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20대 용접공 시절부터 진보정당의 원내대표를 지내기까지 30여년 동안 곁눈질 한번 없이 약자를 대변했다.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자와 서민 보호 등 진보적 가치에 충실한 법안들을 발의하는 데 힘을 쏟았고 정치개혁에 앞장섰다. 7년간 그는 법률안 945건 등 1029건의 의안을 발의했다. 호주제 폐지, 장애인 차별금지, 대체복무, 개인정보보호, 고교 무상교육 등 굵직한 진보적 의제들이 그의 손을 거쳐 현실이 됐다. 여성·장애인·비정규직 차별을 깨는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한 시민은 “그때 왜 힘이 돼주지 못했나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했다.

그의 죽음은 비통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중한 과제를 남겼다. 정치인 노회찬이 추구했던 정치는 권력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 가치의 정치였다. 시민들은 그를 잃고 나서야 그가 추구했던 진보적 가치가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고인은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던져 진보와 정의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 부조리하고 몰염치한 행태가 만연한 사회에서 건강한 정치인이 먼저 떠난 것은 상실이 크다. 그러나 노회찬의 열정과 꿈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건 산 자의 책무다. 이제는 고인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해야 할 때다. 그것이 ‘노회찬 정신’을 부활시키고 상심을 승화하는 길이다. 27일은 고인의 발인이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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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쇼핑센터의 거대한 주차장에서 빈 공간을 찾기는 어려웠다.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하고 진입하려는데 근처의 주차요원이 방해가 됐다. 손짓을 해도 알아듣지 못해 창문을 내리고 목청을 높이자 그가 내 차 쪽으로 다가왔는데 모습이 심상찮았다. 20대 안팎으로 보이는 청년의 다리는 풀린 듯 휘청거렸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으며 눈동자마저 풀린 듯했다.

차문을 열고 발을 내디딘 순간, 훅 덮쳐오는 뜨겁고 매캐한 열기. 나는 그의 약간 얼빠진 모습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매장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빨라졌지만 발길을 되돌려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고, 또한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는가만, 그냥 못 본 체하며 지나가기가 힘들어서였다.      

“2시간 일하고 1시간 쉬어요.”

꽁꽁 얼린 생수병을 셔츠 안쪽으로 넣어 문지르고 있던 그 알바 주차요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한다”는 두 마디를 한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몸만 탈진했겠는가. 어쩌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헬조선 청년의 현실을 뼈저리게 확인하고 그의 꿈마저 불에 데이지 않았을까 싶어 나 또한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폭염이 이어진 24일 오후 경북 영천 신녕초등학교에 설치된 온도계가 40도를 넘어서고 있다. 대구기상지청은 오후 3시 27분 영천 신녕면 기온이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으로 40.3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살인적인 폭염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밤이 돼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하니 어찌 견딜까 두렵다. 누구도 폭염을 피해갈 순 없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더위는 불평등한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태풍과 폭염 등 기후변화로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큰 피해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겪는다.

어릴 적 기억에 물난리가 꼭 못사는 동네만 골라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의아했는데 이후 자연 재난 또한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됐다. 웬만한 태풍에도 견고하게 지은 도시의 고급 아파트는 잘 견딘다. 하지만 가난한 동네의 얼기설기 지은 집은 부서지기 십상이다. 물난리나 지진 등을 당하면 대피하기 어려운 노약자나 장애인 등이 더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대낮에 길거리를 걸어보면 뙤약볕도 강렬하지만 자동차와 에어컨 실외기의 밤낮없이 내뿜는 열기가 도시 전체를 거대한 찜통지옥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열기는 에어컨을 틀 수도, 자동차를 굴릴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에 가혹하게 덧씌워진다. 실내 주차장의 주차요원뿐이랴. 길거리 공사인부, 폐지 수집 노인,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지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청소노동자, 판자촌 거주민들은 자연보다 인간이 내뿜는 해악에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폭염경보나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면 매 시간 10~15분의 휴식을 제공하라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산업현장에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인부들은 ‘그림의 떡’일 뿐,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다수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장서서 동네에 ‘무더위 쉼터’를 마련하고 가정방문과 안부전화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폭염에 방치된 취약계층을 촘촘히 보살피기에는 곳곳에 구멍이 뚫린 듯하다. 

미 컬럼비아대학 지구환경과학부 존 머터 교수는 폭염과 같은 재난이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하지 않으려면 소위 ‘파인먼의 경계(Feynman line)’에 설 것을 권한다. 저명한 핵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이 신학의 영역을 오갔던 것처럼,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도 자연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도 함께 접근할 때 재난의 불평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대자연의 변덕이 부린 폭염은 그 자체로는 자연적이지만 그 폭염을 견뎌내는 것은 순전히 사회적 문제다. 올 폭염으로 벌써 1000명 이상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폭염은 사계절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며, 폭염의 결과로 불평등이 더 악화되는 인권의 문제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폭염과 자연재난이 지속적으로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리라는 것은 예견되는 일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관리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폭염 위기관리나 피해보상 근거 등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이며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재난의 불평등이란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이 더 혹독한 폭염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폭염은 이제 국가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다. 폭염과 같은 자연재해가 인간을 덮칠수록, 우리 곁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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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의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소환되는 1994년에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근시간은 오전 7시였는데, 퇴근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은 굉장히 다양하고 많았지만 한 단어로 요약하면 심부름이었다. 나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늘도 없는 시내 한복판에 내리꽂히던 하얗고 뜨거운 햇빛이 기억난다. 그래도 더웠던 기억은 없다. 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일은 처음이었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서 모든 것이 연습 같았다. 나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나를 본 사람마다 정말 좋은 회사에 들어갈 거라고, 못 들어가면 우리라도 소개시켜줄 거라고 장담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취업 전문 강좌도 들으러 다녔다. 퇴근도 휴일도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시간을 얻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갔다. 밥을 먹을 시간이 모자라서 강의실 옆에 있는 매점에서 뜨거운 라면 한 그릇을 급하게 사 먹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면발을 호르르 삼킬 때마다 애써 외면했던 피로가 비로소 온몸에 퍼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를 되밟아 회사로 들어가면서 나는 한 번도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우면 더울수록 오히려 전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 더위 별거 아니고, 내 앞에 찾아올 미래가 뭐든 다 맞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손 선풍기로 더위 식히는 노인 온도계가 32도를 가리킨 23일 오후 서울 시내에서 한 노인이 손 선풍기를 들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은 노약자들, 특히 홀로 사는 빈곤층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이다. 연합뉴스

그래서 내게 가장 더웠던 여름은 2000년이다. 설 지나고 며칠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끝내 식물인간이 된 해이다. 종합병원에서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여름이 올 무렵 한방병원으로 옮겼다. 그 몇 달 동안 엄마가 혼자 아빠를 지켰다. 지치고 예민해진 엄마는 우리는 물론 의료진과도 싸웠다. 의사는 엄마가 화를 내면 꼭 보호자를 호출했다. 그때마다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는데, 하루는 호출을 받고 불려 가는 길에 엄마를 봤다. 조금 전까지 의사가 놓은 침을 다 안 뽑아서 환자 몸에 남았다고 성질을 부렸다던 엄마가 노란 양은냄비 하나를 들고 가파른 언덕을 걷고 있었다. 그 언덕을 넘어 300~400m 떨어진 곳에 대형 설렁탕집이 있었다. 의식이 없으니 씹지도 못해 주사기로 음식을 공급하는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기력 달리면 못 일어난다고 그 집에서 종종 고기 국물을 사다가 아빠에게 먹였다. 엄마가 걸어가는 길은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이었다. 양은냄비에 부딪힌 햇살이 통통 튀어올랐다. 그 빛에 눈이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고 그 맞은편에서 천천히 같이 걸었다. 엄마라도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싸우러 가는 길이었다. 아니, 싸우고 돌아오던 길이었나. 그 길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덥기만 무척 더웠다. 살면서 그렇게 더웠던 날이 없다.

너무 덥고, 너무 뜨거워서 급기야 가슴에 체기 같은 게 올라왔다. 더위를 먹은 거라고 했다. 더위를 먹는 게 그런 거라는 걸 그날 알았다. 그리고 또 그날 나는 알았다. 더위는 불행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재앙이라는 것을. 추위가 그러하듯 지독한 더위도 체험이나 경험이 아니라 누적된 절망,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포기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들에게 더위는, 그리고 추위는 계절이 지나가면 비로소 벗어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2018년의 더위는 온도계에 기록된 수치로도 이미 해마다 소환되던 1994년의 더위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온도계에 기록된 수치만 그 더위를 넘어선 것일까. 해결되지 않는 실업과 증가하는 가계부채, 난무하는 혐오의 언어들은 어느 정도의 수치일까. 이제는 우리의 슬픔이 된 진보정치인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를 타고 하루를 시작하는 노동자들에게, 또 한 번 동료의 죽음을 맞이한 대한문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여름일까. 수은주도 기록적인데 절망마저 더 기록적인 여름은 아니어야 할 텐데, 슬프고 두려운 폭염주의보를 이미 너무 많이 듣고 말았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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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과 같이 많이 쓰이는 것이 ‘가을볕(밭)에는 딸을 내보내고 봄볕(밭)에는 며느리 내보낸다’입니다. 이미 결혼한 며느리는 흉하게 타든 말든 괜찮지만 장차 시집갈 자기 딸은 얼굴 곱게 타야 하니까요. 이렇듯 같은 딸이라도 자기 딸을 더 챙기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안 갑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가 됩니다. 아들 주느라 온전한 배는 못 줘도 그나마 썩은 부위 도려내면 먹어볼 거 많은 건 딸 줍니다. 하지만 밤 썩은 건 아휴, 먹잘 게 없습니다. 이런 입 챙김에서 손 챙김으로 넘어가면 ‘죽 설거지는 딸 주고 비빔 설거지는 며느리 준다’로, 수고로움에도 차별이 공공연하게 드러납니다.

식구(食口)란 한솥밥 먹는 사이를 말합니다. 며느리도 식구일까요? 아닌 듯합니다. 우리 집안은 며느리도 한 식구라고 흐뭇하게 화목을 내비치는 시아버지, 너는 며느리 안 같고 딸 같다며 오히려 며느리 시집살이 힘들다 농담하는 시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절대 그럴 분 아니시라고 장담하는 남편 사이에서 며느리는 ‘그저 웃지요’ 표정 짓고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미디어로 향합니다. 대나무숲에는 이미 수많은 익명의 며느리들이 모여 ‘시월드’를 하해(河海)와 같이 성토하고 있습니다.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도 싫다며 ‘시’로 시작되는 이들에게 받은 상처와 설움에 신물을 올리고 눈물을 흘립니다.

현명치 못한 사람은 자신은 모르고 며느리만 알게끔 제 자식을 아낍니다. 때론 ‘여름 불은 며느리가 때게 하고 겨울 불은 딸이 때게 한다’처럼 노골적으로 편애하기도 합니다. 연일 폭염입니다. 가스불 앞 땀 줄줄이 끔찍해 남편 찔러 외식하자 하라니, 집밥 놔두고 무슨 외식이냐고 아가, 어서 국솥에 물 올리랍니다. 자기 아들 돈은 아깝고 남의 아까운 딸 불 고생은 미처 모릅니다. ‘시’자 중심의 시댁, ‘시’가 관여하는 결혼관계에서 남의 딸은 식모지 식구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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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을 배경으로 글을 쓸 일이 있어서 당시 신문을 살펴보았다. 굳이 오래된 기사를 읽어 기억을 환기시키지 않더라도 1994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있는 한 해이다. 그해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대만과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떨어져 수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었고, 성수대교 붕괴와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가 있었고, 지존파 사건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팝 가수 커트코베인이 유명을 달리했고, 자살골을 넣은 콜롬비아 축구선수가 12발의 총격을 당해 죽었다. 1994년은 또한 역사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남겼다. 그때만 하더라도 좀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에어컨을 설치하고 사는 게 그리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관측소가 생긴 이래로 매일같이 최고기온의 기록을 갈아치우던 그해 여름, 노약자들이 더위를 못 이기고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속출했다.

출처:경향신문DB

사건 사고는 지나가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사건 사고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폭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감당이 안되는 속수무책의 일이었을 것이다. 1994년의 폭염을 직접 겪지는 못했다. 그해에 나는 해외에 있었고, 그것도 남반구의 나라에 있었다. 7, 8월이 한겨울인 그 나라에서 교민 소식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 소식과 폭염 소식을 읽곤 했다.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해외에서 사는 교포들은 국내 신문을 구독하는 것보다 생활정보지에 실린 단신들로 소식을 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일주일인가 2주일에 한 번씩 무료로 배포되던 소식지에는 매번 경악스러운 기사들이 실렸다. 소식지의 단신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간략하기 그지없는 것이라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해 덜 충격적이었는지, 아니면 혼자 상상해야 하는 빈틈이 너무 많아서 더 충격적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기사를 보면서는 믿을 수 없었고, 지존파 기사를 볼 때는 정보지에서 만들어낸 과장 기사일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폭염이 이어진 18일 서울 경복궁을 관람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채, 양산, 선풍기 등을 이용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은 기사보다 전화로 더 자주 접했다. 부럽다는 말을 그때처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겨울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해 정보지로만 접했던 기사들을 오래된 신문을 통해 다시 살펴보면서 그해의 폭염이 새삼스러워졌다. 7, 8월에는 살인더위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가장 많이 보였다. 온열질환이 급증하고, 가축은 폐사하고, 가로수도 죽고, 어느 기관의 중앙전산망은 작동을 멈춰버렸다는 기사들이다. 흥미로운 기사도 보인다. 그해 7, 8월에 범죄율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범죄자들까지 더위를 못 이겨 잠시 범죄를 쉬었다는 뜻이다. 통계가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율이 떨어진 것은 통계적으로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게 더워서 그런 거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더운 나머지 얻게 된 결론이었을 듯싶다.

그해에 구속된 영생교 교주는 자기가 감옥에 있는 탓에 나라가 그렇게 더운 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감옥에 있으니 하나님하고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위에 잠깐 헛웃음이라도 웃게 하는 기사였을 것이다. 어이없어 웃고나서 기분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는 기사도 없지 않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27일 프로야구 선수 박철순은 최고령 완봉승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나는 박철순 선수의 팬이었다. 정보지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기사를 그해에 보았다면 아마도 먼 나라에서나마 한껏 함성을 질렀을 것이다. 아무리 더워도 시즌은 계속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세우고, 그 아름다운 기록으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더워도 삶은 계속된다.

1994년에만 폭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해에 하도 사상 최고, 유사 이래, 그런 제목의 기사들이 많아서 사람들의 기억에 더 많이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해에 벌어졌던 재앙과 같은 사건들이 또 기억에 남아 그 폭염과 얽히게 되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는 뉴스 기사는 검색하기가 편리해서 날짜와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 결과들이 컴퓨터 모니터에 주루룩 뜬다. 그해 여름을 기간으로 설정하고 검색어로 ‘훈훈한’ ‘감동’ 그런 제목을 입력해보았다. 올해도 이렇게 더우니, 잠깐 읽는 글이라도 뭔가 좀 시원한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안타깝게도 훈훈하고 감동적인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워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멈췄다고 말하는 것처럼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도 잠시 멈췄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이라는 게 기사화될 일이 아니어서뿐일 것이다. 그런 일들은 그냥 소소하게,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손뼉치고 환호할 일만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저 잠깐 미소짓고, 선선한 바람을 맞은 듯이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는 일들은 그냥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택배, 친절한 에어컨 수리기사님, 평양냉면의 차가운 육수 맛, 그 냉면을 같이 먹던 남북 정상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배꼽인사를 하는 옆집 아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 옛날 빙수, 겨울에 가족과 함께 갔었던 추운 여행지에서의 추억, 기타 등등.

1994년 7월15일자 경향신문에는 동물 가족들의 여름나기에 관한 기사가 보인다. 북극곰은 6월이 되면 털갈이를 해서 여름을 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비한다고 해서 더위를 모두 피할 수 있는 건 아닐 터이다. 보통은 냉수욕으로 체온을 식혀 더위를 견디지만, 그렇게 해서도 안될 때는 견디지 못하고 트위스트 춤을 추게 된단다. 좋고 신나서 추는 춤이 아니다. 사람들 눈에는 춤으로 보여도 그게 실은 몸부림이라는 뜻이다.

진작부터 시작된 폭염이 올해는 한 달 이상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각오부터 단단히 해야 할 일이다. 불쾌한 일들이 있으면 솜털을 벗어내듯이 벗어내고, 몸부림을 칠 정도로 더울 때는 소소한 기쁨들을 생각해볼 일이다.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차라리 트위스트라도 춰볼 일이다. 그래서 오늘 일어날 좋은 일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택배가 오기로 되어 있다. 그 초인종 소리, 아주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질 게 틀림없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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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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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생각하기도 못하게 만드는, 지독한 더위다. 하루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폭력적인 더위에 일종의 피서이다. 왜냐하면 많이 알려져 있듯 그의 소설은 지극히 ‘쿨’하기 때문이다. 선풍기 앞에 누워 몇 권의 하루키 소설을 훑어보면서 나는 그 쿨함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가령 이런 것이 아닐까.

첫째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4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에 이른 남자는 파국의 원인을 따지지 않고 혹은 바람난 아내에게도 ‘그녀의 일’이라고 덮어버린다. 또는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로부터 갑작스러운 절교를 당했는데도 그 이유를 캐묻지 않고 16년이 지난 뒤에야 진실을 찾아나선다. 합리와 논리, 진실이 아닌 비합리와 모순투성이의 세계를 수용하는 것이 몸을 차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의 다음과 같은 말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민음사 제공

또 하루키 인물의 욕망은 끈적거리지 않는다. 가령 <4월 어느 햇빛 좋은 날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소설이 100%의 여자를 만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소설은 4월 어느 햇빛 좋은 날에 우연히 100%의 여자를 알아보고 잠시 행복해하다가 보내는 일이 전부이다. 어떤 뜨거운 열정도 스토킹도 없다. 하루키의 인물에게 욕망의 대상은 풍경으로 머물기 쉽다. 와타나베의 금언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국면이다. 그래서 하루키의 남자들은 대체로 젠틀하고 우아하다. 욕망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쉽사리 증오나 혐오, 그리고 폭력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자뿐 아니라 돈, 명예 같은 것에도 해당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고립과 단절을 추구하고 ‘개인’이 되는 것의 필연적 운명과 장점에 대해 설파한다. 그들은 대개 홀로 책과 음악을 탐닉하고, 타인과의 교류를 싫어하며 온전히 ‘자신’이 되고자 한다. 무리가 아닌 개인이 되었을 때, 인간은 순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셋째, 그의 소설에 의하면 세상은 ‘사막’ 같은 곳이다. <상실의 시대>를 비롯한 연애소설에서 하루키의 남자들은 대개 실연과 이별, 죽음을 겪고 허무와 상실감을 겪는다. 그 상처를 견디는 방법은 “어떤 진보도 또 어떤 변화도 결국은 붕괴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신이 나서 무(無)를 향해 가려는 인간들’을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 쿨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넷째, 그 연장선상에서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가령 또 다른 달을 품고 있는 세계라든가 세계의 끝에서 만나는 무의식의 세계, 고양이와 얘기를 나누는 환상의 세계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하루키의 소설을 판타지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판타지 소설은 본능적 욕망을 실현하고 해소하는 대중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하루키의 비현실은 초월적 현실 같은 곳이고, 오히려 현실적 욕망과 법칙이 승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 세상’과 유사한 곳이다.

다섯째, 초월적 세계를 품고 있는 하루키의 소설에는 대체로 일체의 집착과 마음을 놓아버린 금욕적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얼음 사나이>의 주인공 얼음사나이는 그 극단의 메타포라 할 수 있는데, ‘빙산같이 고독한’ 이 남자는 모든 과거를 얼음 속에 동결시켜 봉인한 채 단지 응시할 뿐 풀어헤치지 않으며 부단히 현재를 과거화시키는 인물이다. 그 동결 속에 마음과 온기는 물론, 일체의 비극적 역사도 망각된다.

여섯째, 하루키 소설은 읽고 나면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오가는 어떤 희미한 기미들과 여러 개의 플롯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잊어버리는’ 해체적 독법에 적합하다. 또한 강렬한 주제의식이나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가 없기 때문에 읽기에 덜 피로하고 의미규명에 대한 강박을 가지지 않아도 좋다.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뉴스에 나오는 세상사가 구질구질하고 한심해 보인다. 정치꾼들에 대한 환멸은 더 깊어지고 토론과 정쟁도 쓸데없는 일처럼 생각된다. 국가와 민족 운운하는 것에도 냉소적이 되며, 심지어 사드(THAAD)니 올림픽 메달 획득이니 하는 난리에도 심드렁해진다. 그러니 폭염에 하루키를 읽는 것만 한 피서는 없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하루키 소설이 왠지 현대판 종교서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음, 그런데 지금 하루키 문학을 비판하는 거냐고? 글쎄, 그것도 가을이 되면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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