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26일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2017년 말에 이은 두 번째 특사다. 전체 대상자 4378명 가운데 일반 형사범이 4242명으로 다수이며, 시국사건으로는 ‘7대 집회’ 관련자 107명이 포함됐다. 사면 여부를 두고 관심을 모았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특사는 민생·생계형 사범 위주였던 첫 특사에 비해 대상과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절제된’ 사면권 행사로 귀결됐다. 법무부는 “사회적 갈등 치유와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을 위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소에 참배한 뒤 묘비를 둘러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사드 배치,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광우병 촛불집회, 세월호 관련 사건, 쌍용차 파업 등 7대 집회 관련자들이 특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지극히 온당한 조치다.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 집행에 따라 처벌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면 대상자의 범위가 제한적인 것은 아쉽다. 제주군사기지범도민대책위원회 측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199명에 이르는데, 사면 대상(19명)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사면 대상에서 빠진 것도 보수진영의 반대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첫 특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약을 지킨 점은 바람직하다. 과거 경제활성화 등의 미명으로 재벌총수 등 경제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은전을 베푼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아 다행이다. 이전 정권에서 요식행위에 그쳤던 사면심사위원회가 실질적 기능을 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 수형자 4명은 당초 사면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검토해보자는 사면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추가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엄격하게 행사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과거 법 적용의 오류를 교정함으로써 ‘적극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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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21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추진하고 재단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으로부터 재단기금으로 받은 10억엔 중 남은 5억7000만엔의 처리에 대해서는 위안부 피해자 등의 의견을 들은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뜻을 거스른 졸속 외교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무시했으니 재단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 재단 해체에는 1990년대 일본 민간 모금 형식으로 추진된 아시아여성기금에 이어 돈을 통한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 시도가 좌절됐다는 의미도 있다. 당사자 의사를 배제한 채 금전을 이용한 위안부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두번의 실패로 확인된 것이다.

화해·치유재단의 해체가 결정된 21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362차 수요시위 참가자가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준헌 기자

화해·치유재단 설립은 일본 총리의 사과와 더불어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의 핵심조항이었다. 이제 재단 해체로 한·일 간 합의는 유명무실해졌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파기 또는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기로 한 만큼 새로운 해법을 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일본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주장을 접어야 한다. 보편적 인권과 정의에 해당하는 사안은 정부 간 합의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당면 과제는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을 어떻게 처리할지다. 외교 당국은 10억엔의 즉각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일본 측과 10억엔 처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생존 피해자와 사망 피해자의 위로 금액이 다른 것과 위로금을 받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재단 해산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던 위안부 문제 해결의 물길을 바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고 밝히는 등 재단 해산을 강력 비난했다. 일본은 그렇잖아도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해 반발해온 터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의 진심어린 사죄 거부에서 위안부 문제 합의 파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 간 약속이 파기됐다고만 주장할 게 아니라 잘못된 국가 행위를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해산이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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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화해치유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혜롭게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재단을 해산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숙소인 미국 뉴욕 파커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졸속 설립된 대표적 외교 적폐로 꼽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당시 합의는 국민적 자존심과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까지 짓밟은 굴욕적인 내용이었다. 정권교체 후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지킬 수 없으며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단은 이미 이사진 대부분이 사퇴하고 기능 중단 상태다. 존재 의미가 사라진 마당에 더 무슨 역할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애시당초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는 데서 풀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무슨 재단이 일본 정부를 대신한다는 것부터 언어도단이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부 간의 공식합의를 파기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주고 시민의 분노를 자아낸 굴욕 재단의 해산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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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사회의 동네북이고, 한국외교가 사면초가 상태라는 말은 더 이상 언론의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 저격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래 늘 내치에는 문제가 있어도 외교만은 잘한다는 식으로 평가되어왔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물론 그런 평가는 순방외교의 겉치레에 의한 가짜 이미지였다. 보수정부 9년 동안 철저한 외교무능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 입지는 계속 좁아졌다. 부시 행정부의 애완견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대 친미를 고집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일본과는 단절했으며, 진보정부 10년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폐기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주도권은커녕 소외돼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친미대북강경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변화를 약속하며 집권했던 박근혜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한 동북아 국제정치를 일차방정식의 단순 진영외교로 회귀시켰다. 여전히 대북 제재 일변도와 북한붕괴론에 집착하며, 친미 편승의 외눈박이 외교를 고수했다. 무엇보다 안보위협을 과장하면서 국내권력을 강화하는 소위 ‘갈라치기’로 국민과 국익을 위한 위민외교(爲民外交)를 외면하고 국민을 이용하는 용민외교(用民外交)로 일관했다. 특히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이 특징인 대외환경에서 다양한 외교카드를 개발·활용해야 함에도, 오히려 전작권 환수 연기, 개성공단 폐지, 사드 배치, 중국 전승절 참석,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대미 무기 구입 등의 카드도 모조리 반대급부도 없이 소진해 버렸다. 게다가 관료와 전문가들까지 주변화시키고 오직 대통령의 심기, 또는 심지어 국정농단자의 심기에 의존한 결과는 우리가 목도하듯이 심대하다.

미국을 방문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월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정부의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주미대사관

국정공백에 이르자 그간 외교 실패의 결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중국 정부의 사드 배치 관련 제재는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은 소녀상과 관련해 적반하장의 한국 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북한은 한국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미국만을 상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과 대화 요구의 줄타기 행보다. 그리고 트럼프 신행정부는 선거 기간부터 동맹과 무역에서의 불공정성을 빌미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중 압박기조와 중국의 물러서지 않는 강한 대응으로 한국의 선택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줄어든다. 남북관계가 제로상태가 됨으로써 북한 핵 문제가 미·중의 대결구조를 부추기고, 이는 우리의 입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 윤병세 장관이 미·중 양측으로부터의 러브콜이라던 평가는 그때도 틀렸고, 지금은 더 틀렸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결격자가 쓸데없이 과욕을 부릴 때가 가장 문제인데, 현재의 권한대행 정부가 바로 그런 경우다. 지난 연말에 방위사업청장이 미국으로 가서 방위분담금 인상을 언급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국무회의 졸속 통과도 모자라서, 올해 벽두에는 김관진 안보실장이 방미해 미국의 압박이나 요구도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사드 조기배치론을 성급하게 던졌다.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지만 박근혜 정부의 외교무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탄핵정국과 촛불정국으로 인한 외교공백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이전의 외교실패가 초래한 위기상황이라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외교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섣부른 외교에 나섬으로써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교의 어려움은 대외환경의 악조건에서도 기인하지만, 그보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결과다. 외교의 힘은 협상의 기술보다 국익을 중심에 둔 합리적인 정책결정과 그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민의 힘으로부터 생기는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여기서 완전히 실패했다. 이렇게 볼 때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외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정부라는 점에서 오버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외교역량을 상황관리에만 집중하고, 이후 새로운 외교의 시도는 물론이고, 기존 외교사안의 진행도 차기 정부로 이양해야 한다. 혹시라도 반드시 진행해야 할 시급한 외교사안일 경우에는 국회와 협의해야 마땅하다. 촛불민심을 망각하고 다시 외교를 이용해 국정농단 세력의 부활을 꿈꾼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한국이 현재 처한 외교공백이 위기상황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치밀한 차선으로 가야 한다. 다른 국가들의 외교카드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한국의 입장은 가능한 한 뒤로 미뤄야 한다. 주변국의 요구와 압박이 있을 경우에는 한국의 현 상황을 역으로 정당화 수단으로 역이용하면 된다. 제발 부탁한다! 황 대행 정부 가만히 있어라! 다음 정부의 입지를 좁히는 행보를 멈추라. 카드를 숨기고 분석하고 준비하라. 행동하지 마라.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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