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전 대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1.28 [아침을 열며]어느 유랑극단의 슬픔
  2. 2018.06.18 [아침을 열며]과대망상과 자아도취

자유한국당의 전당대회 레이스를 보면서 퇴락해가는 유랑극단의 쇼가 생각났다. 낡은 레퍼토리, 출연진의 꼰대 같은 태도, 유행보다 10년은 뒤진 듯한 스타일…. 골수팬을 제외하면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공연 때마다 극장에는 적막이 흐른다. 지루함을 못 이긴 일부 관객들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다. 본전 생각이 나는 듯 억지로 고개를 들지만, 오래 버티진 못한다. 등돌린 팬들을 되찾고, 젊은 관객층을 끌어오겠다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쇼는 이렇게 흥행실패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인가.   

오랜 궁리 끝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아니다. 한국당 안상수 의원에게 아이디어를 빚졌다. 안 의원은 23일 당권주자 중 첫 출마선언을 한다면서 국회에서 격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허이짜!” 기합과 함께 그의 주먹은 ‘좌파정권’ ‘계파정치’ ‘대권주자 비켜!’라고 쓰인 널빤지를 반으로 갈랐다. 화려한 파란색 양복 차림에 비장한 표정의 그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차력사’가 떠올랐다. 전성기가 지난 지 오래됐지만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짜내는 ‘웃픈’ 차력사.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과 2·27전당대회 당권 예비주자들이 24일 국회에서 개최된 전국지방의원 여성협의회 발대식에서 손을 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그러고보니 퇴락한 유랑극단 이미지는 한국당 전대와 썩 들어맞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또 어떤가. 지난 6월 지방선거 공연 흥행참패 원흉으로 지목됐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다시 무대에 올랐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독설, 가죽점퍼로 골수 관객 눈살도 찌푸리게 했던 흑역사는 잊었다. “막말 프레임으로 온갖 음해를 받아가며 남북, 북·미 위장평화쇼의 와중에서 28프로(%) 정당까지 만들어 자유한국당을 겨우 살려놓았다”고 외쳤지만 박수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냉담한 반응에 속이 탄 듯 그는 연신 콜라를 들이켠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퇴물 코미디언의 모습이 겹쳐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세월을 되돌리진 못했다. 짧게 깎은 머리, 댄디한 옷차림은 잘나가던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반응이 썰렁하다. 대권에 눈먼 그가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시장직을 내던진 것이 몰락의 시작이라고 골수 관객들은 생각한다.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듯 그는 “핵개발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촉발해야 한다”고 우렁차게 외친다. 비핵화 협상 와중에 핵개발이라니…. ‘핵 포기하지 마라. 적대적 공생관계로 살자’고 북한에 요청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한때 ‘보수개혁 아이콘’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아우라를 벗고, 예능 프로에서 망가지는 흘러간 스타 같다고나 할까.

드디어 등장한 메인 게스트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박수소리가 커졌다. 전임 박근혜 단장 시절 총무를 본 덕분에 극단 업무에 익숙한 데다, 막말의 홍준표 전 대표와 비교되는 정돈된 언사로 무대에 오를 만한 호소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일찍부터 받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많은 분과 만나 소통하고 함께 일할 각오로 정치권에 들어오게 됐다”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심을 요리조리 피한 원론적 발언이 계속되면서 분위기는 빠르게 식어간다.

그러자 황 전 총리가 던진 필살기. “통합진보당 해산한 사람이 누굽니꽈~.” 아뿔싸, 음이 이탈했다. 관심을 끌기 위해 ‘정치 결사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근본 원칙을 어겼다고 동네방네 떠든 꼴이다. 일부 관객들은 “기다렸던 말”이라고 열광했지만, 또 다른 관객들은 “저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면서 고개를 흔든다. 그에게 심금을 울릴 트로트를 기대했건만 중저음의 목소리는 아직까지 자장가에 걸맞은 듯하다. 그는 망해가는 쇼의 구세주가 아니었다.

곳곳에서 ‘내가 무대에 오르겠다’고 아우성쳤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무대 체질이 아닌데도 직접 마이크를 잡으려다 냉담한 주변 반응에 포기했다. 혼자 그만두기는 억울했는지 “친박 프레임과 탄핵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당 기여도 역시 낮다”며 황 전 총리에게 무대에서 내려올 것을 공개 촉구했다. 김무성 의원은 “위기가 오면 나서겠다”고 은퇴 선언을 번복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 심재철·정우택 등 존재감이 희미한 주자들은 황교안 불가론을 펴면서 ‘황교안 바람’에 묻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러니, 쇼가 잘될 리 없다. 출연자들은 빈 좌석을 메워준 강경보수층을 위해 갈수록 극단적인 발언들을 던진다. 썰렁함을 메우기 위해 급하게 편성된 ‘릴레이 단식농성’ 레퍼토리는 ‘웰빙 단식쇼’ ‘간헐적 단식쇼’라는 야유를 불렀다. 무대 밖 스태프들은 친박·비박으로 편 갈라 “저 출연진은 누가 섭외했느냐” “왜 막말을 미리 걸러내지 못했느냐”며 다툰다. 쇼의 평판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흥행 전망은 암울하다. ‘자유 유랑극단’은 언제쯤이나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용욱 정치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6·13 지방선거는 승리보다 패배가 선명하게 기록된 선거로 남을 것이다. 80%에 근접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 등을 감안하면 더불어민주당의 낙승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졌느냐’의 문제는 짚어야 한다. 정치의 영역이든, 스포츠의 세계든 ‘잘 진다’ ‘멋있게 진다’는 말이 있다. 지더라도 명분을 지킨다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나 대안보수를 자처한 바른미래당은 그러지 못했다. ‘한국당과 손잡느니 정계은퇴하겠다’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가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했던 것이나,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막말로 자기 당에서도 외면받은 일은 야권 패배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훗날 이번 선거는 둘의 추락으로 더 기억될지 모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방송3사의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처지를 너무 몰랐다. 빈털터리 집안의 가장이면서도 ‘거부’라도 되는 양 큰소리를 쳤다. 불리한 여론조사를 두고는 “지지율 조작” “선거가 끝나면 여론조사 기관을 폐쇄하겠다”고 했다. 현실부정은 과대망상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한국당은 갈수록 고립되는데, 민심이 돌아오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곳간이 비었는데도, 하늘에서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가장이 몽상에 빠지면서 어려운 집구석은 더 흉흉해졌다. 정권과 “싸우는 법을 안다”고 하더니, 식구들과 다퉜다. 배고프다고 하소연하는 식구들에게 “바퀴벌레” “암덩어리” “연탄가스” 등 막말을 퍼부었다. 힘들다는 푸념은 그에게 가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막말은 영남 지역에서 친밀감의 표시”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어이없는 해명을 한 것도,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은 ‘존중받는 가장’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됐을 터다.

대단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원했던 홍 전 대표의 바람은 선거 후에야 현실이 됐다. “그분은 보수당을 궤멸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다”는 정두언 전 의원의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당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해체”까지 언급하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홍 전 대표 덕분에 자유당 시절부터 한국 사회 주류로 행세해온 한국당은 완전히 망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못지않은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안철수 전 후보는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가장이었다. 지방선거 후 보수재편의 중심에 서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들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했다. 정치의 기본인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도 깡그리 무시하고 독단과 변칙을 반복했다. 자기만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에 반대하자, 당헌·당규까지 바꿔 밀어붙였다. ‘바른미래당은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아도취가 아니고서야 이런 무리수를 둘 수는 없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재·보궐선거에 나선 일부 후보들의 사퇴를 종용한 것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경쟁력 있는 인사를 세워야 한다’며 경선을 거친 후보들을 그만두게 하려 했다. 서울시장 선거전에 한 표라도 도움이 될 인사들을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안 전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바른미래당 광역단체장 후보의 말이다. “지도자는 자기는 죽고 남을 살려야 한다. 그 사람은 자기를 위해 남에게 죽으라고 한다.”

선거 막판 안 전 후보의 바닥은 온전히 드러났다. 한국당과 손잡으면 정계를 은퇴한다더니, 한국당 김문수 전 후보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그래놓고 “경쟁력 있는 후보에게 몰아줘야 한다”며 인위적 단일화 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전 후보를 전화로 불러내어 다짜고짜 양보를 요구해놓고, 단일화 시도가 아니라고 궤변을 던진 것이다. 설사 단일화가 됐어도 선거에 이길 수도 없었겠지만, 만에 하나 단일화 덕에 당선됐다면 또 어떻게 했을 것인가. 김 전 후보를 지지했던 수많은 태극기 부대들의 이익을 대변해 ‘박근혜 석방’을 외칠 것인가.

홍 전 대표는 사퇴했고, 안 전 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둘 다 정계은퇴를 말하지는 않았다. 홍 전 대표는 물러나면서도 “나라는 통째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나라’를 정치세력 사이에서 서로 넘길 수 있는 물건인 양 취급하는 얼토당토않은 인식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넘어간 것이 아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선택했다. 주인인 국민들이 홍 전 대표와 한국당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은 안 전 후보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용욱 정치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