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발포 직전 헬기를 타고 광주에 내려와 회의를 주재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5·18 당시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는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때 사살 명령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간 여러 의혹은 많았지만, 5·18 집단발포 책임자로 전 전 대통령을 지목한 증언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일명 ‘편의대’라 불리며 시민행세를 했던 사복군인들이 존재했다”며 “5월20일 ‘성남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온 30~40명이 K57 광주비행장 격납고에 주둔하면서 민간인 버스를 타고 광주 시내로 침투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직접 격납고로 찾아가 제 눈으로 재차 확인했다”고도 했다. 충격적인 내용이다. 국방부는 이런 증언에 대해 “앞으로 진상규명조사위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14일 (출처:경향신문DB)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9월 특별법 시행 이후 8개월째 가동조차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월 그들이 추천한 진상조사위원 2명을 재추천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 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은 올해로 39돌을 맞지만 상당 부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 있다. 집단발포 책임자, 헬기 기총사격 여부, 계엄군 성폭행, 보안사 5·18 왜곡 및 조작 경위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엔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발견돼 계엄군에 희생된 민간인 시신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추가됐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진상조사위 구성을 외면하는 한국당은 도대체 진실 규명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18 망언’ 징계도 유야무야 상태다. 한국당은 지난 2월 “5·18은 폭동”이라고 주장한 이종명 의원을 제명키로 했지만 이를 확정하기 위한 의원총회는 이제껏 열지 않고 있다. 김순례·김진태 의원도 질질 끌다 솜방망이 징계로 마무리지었다. 국회 윤리위 차원의 징계도 윤리심사자문위 구성 문제에 막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황 대표는 지난 3일 전국 장외투쟁의 일환으로 광주를 찾았다가 시민들의 거센 항의와 물세례를 받은 바 있다. 그때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한국당은 5·18에 대해 사죄하지도 않고, 진상 규명도 무성의로 일관하고 있다. 되레 아픔을 방치하고 상처를 덧내고 있다. 이러고 무슨 낯으로 5·18 묘역을 찾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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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나왔다.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문건에는 5·18 당시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이 가운데 5월25일 광주~김해 구간에는 의약품과 수리 부속품을 운송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비고란에 ‘시체(屍體)’라고 적혀있다. 군은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시체’라고 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한다. 게다가 당시 오인 사격 등으로 사망한 군인 23명의 시신은 모두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이 때문에 5·18 당시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 등을 싣고 광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시신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의 한 비석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이 묘역에는 5·18 당시 사라진 뒤 유해를 찾지 못한 시민들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충격적인 내용이다. 사실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만에 하나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학살 증거를 숨겼다면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국가범죄가 아닐 수 없다. 해당 문건은 군이 진압 1년 뒤 여러 군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상 운송한 시신은 행방불명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당시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광주 망월동 5·18 무명열사 묘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나머지 76명의 행방불명자는 지난해까지 암매장 추정지 11곳을 발굴 조사했지만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행방불명자 확인 및 유해발굴 등은 지난해 3월 제정된 5·18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지금까지 가동조차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월 그들이 추천한 진상조사위원 2명을 재추천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 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5·18 망언’ 의원 3명에 대한 징계도 여태껏 뭉개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39년이 지나도록 상당 부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있다. 헬기 기총사격 여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보안사의 5·18 왜곡 및 조작 경위, 계엄군 성폭행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학살 은폐 의혹까지 새롭게 더해졌다.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다. 한국당은 두말없이 객관적인 진상조사위 구성과 조속한 정상가동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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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불심검문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경찰관이 붙잡아 세웠다. “어디 가니? 책가방 좀 열어봐.” 불쾌했으나 두려움이 불쾌함을 압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약한 장난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옆 동네에 전두환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옆’까지의 거리는 꽤 됐지만, 대학생들의 시위(그땐 데모라고 했다)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 동네까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대통령이 근처에 사니 치안걱정 안 해도 돼 좋다는 소리도,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대통령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불편해진다는 소리도 들렸다. 전두환이 사는 곳은 어디쯤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멀고 아득한 느낌이어서 어릴 적 그의 이미지는 마치 전래동화에 나오는 상상 속의 괴물 같았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사람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때맞춰 어린아이나 곡식을 바치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을 내린다는 전설 속의 괴물.

10년쯤 뒤에 연희동의 한 밥집에서 우연히 ‘괴물’의 꼬리를 목격했다. 내가 가려던 곳의 옆 식당이 부산스러워 보였다. 전두환 일행이 왔다고 했다. 한우먹기캠페인을 돕기 위한 행보라고 입구에 있던 누군가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제서야 방금 슬쩍 보인 흰색 정장을 입은 뒷모습이 전두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식당 안에서도 사람들은 전두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보니 피부가 번쩍번쩍하네” “이 동네 오래 사니까 대통령도 보네”라는 어쩐지 기분 좋아보이는 반응과, “도둑놈, 살인자가 어딜 돌아다녀” “동네의 수치”라는 말도 들렸다. 그날 밥은 맛이 없었다. 식당 탓은 아니었다.

알고 싶지 않은 그의 근황은 여전히 불쑥불쑥 일상을 파고든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그는 2013년 검찰의 대대적인 추징금환수작전 이후에도 연희동 대저택에서 생활하고 있고, 2017년에는 무려 3권 분량의 <전두환 회고록>을 출간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회고록에서 “가면 쓴 사탄” “거짓말쟁이”라고 묘사해 2018년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기소된 그는 5년 넘게 기억상실증과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왔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치매환자라는 그가 대설주의보가 내린 강원 홍천에서 골프를 치고 심지어 스코어를 암산해 캐디의 수고를 덜어줬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왜 저렇게 살까. 아흔 살이 다 된 저 노인은 어째서 부끄러움을 모를까. 정당해산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자유한국당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박근혜 정부의 전 국무총리와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전개된 공청회를 연 국회의원들을 보며 의문이 풀렸다. 전두환은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엔 여전히 ‘전두환들’이 살고 있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으며 일부는 그들의 주장과 선동에 끌려다닌다. 혼자가 아닌 전두환은 부끄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부끄러움을 모른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법정에서 고통받은 것은 아이히만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차분한 그를 목격한 한나 아렌트(1906~1975·철학자)였던 것처럼.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는 3월11일 열리는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강제구인장을 발부했다. 그가 제발로 나올지, 끌려나올지 혹은 ‘치매암산골프’를 능가하는 어떤 기발한 이유로 법정행을 피할지는 알 수 없다.

전두환의 비자금을 추적한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2013년, 고나무 지음)>이란 책이 나왔을 때 ‘아직’이라는 표현에 더 눈길이 갔다. 조금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꺼내 본 그 책에선 ‘살아있는’이라는 부분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됐다. 전두환은 지금 살아있는가. 저런 삶도 삶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오래전 이웃의 한 사람으로 그에게 이른 조의(弔意)를 표한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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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뒤늦게 사과와 함께 ‘5·18 망언’ 3인방을 당 윤리위에 회부해 뒷북 징계 수순에 들어갔지만, 사과의 진정성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과연 반헌법적 망언의 무게에 걸맞은 강력한 징계를 결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인 데다 당사자들의 적반하장 행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5·18 망언을 쏟아낸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은 사죄는커녕 ‘허위 유공자’ ‘북한군 개입’을 들먹이며 망발을 이어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규정한 이 의원은 ‘북한군 개입 검증’과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조건으로 의원직 사퇴를 운위했다. 5·18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매도했던 김순례 의원은 ‘사과문’이란 걸 내면서 “허위 유공자를 걸러내야 한다”고 또다시 희생자들을 욕보였다. ‘5·18청문회’를 주선한 김진태 의원는 “진의가 왜곡됐다”면서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듭 주장했다. 사과 같지 않은 사과 모양새를 취하면서 북한군 개입설과 유공자 명단 공개를 거론, 5·18민주화운동을 끝까지 폄훼하려는 망동이다. 어느 한구석 반성의 기미조차 찾을 수 없는 파렴치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가운데)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을 모독하는 이런 만행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준엄한 단죄가 수반되어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조사 결과, 5·18 망언을 한 세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찬성하는 여론이 64.3%로 압도적이었다. 한국당이 오매불망하는 대구·경북에서도 제명 찬성이 57.6%에 달했다. 앞서 260개 보수단체들이 “반국가적 행위”라고 규탄할 만큼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옹호한 이들의 행각은 진보, 보수를 떠나 용납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당은 13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도 당사로 몰려가 ‘징계 반대’ 시위를 벌인 태극기부대 등 극렬층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터이다. 김병준 위원장은 이들의 5·18 망언이 ‘헌법적 가치와 법치주의 존중’을 규정한 당 강령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책임도 크다. 출당 등 중징계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만에 하나 물타기식 솜방망이 징계에 머물 경우 분노한 민심은 한국당을 직격하게 될 것이다. 여야 4당은 지난 12일 세 의원의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의원직 제명’ 추진을 천명했다. 광주영령 앞에 무릎 꿇고 속죄하기는커녕, 아직도 궤변으로 5·18 폄훼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들에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신분은 가당치 않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추방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왜곡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제2, 제3의 준동을 막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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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인권유린과 발포 책임자, 집단 학살 등을 밝히기 위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이제야 가동하게 됐다. ‘5·18진상규명특별법’이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9월14일부터 시행됐지만, 자유한국당이 자기 몫 위원 3명의 추천을 미루면서 넉 달이나 출범이 지연됐다. 법원에서도 허위사실로 판명난, 허무맹랑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극우 논객 지만원씨 추천 논란 때문에 그랬다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한국당이 애초 진상규명 의지가 있기나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이 뒤늦게 추천한 위원에도 극우세력의 주장을 대변해온 인사들이 주로 포함돼 우려스럽다. ‘월간조선’ 기자 출신으로 현재 도서출판 ‘자유전선’ 대표인 이동욱씨는 1996년 월간조선 4월호에 ‘검증, 광주사태 관련 10대 오보·과장’이란 제목으로 검찰의 5·18민주화운동 재수사 결과 관련 언론보도가 과장·왜곡됐다고 주장, 5·18 관련 단체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받았다. 차기환 변호사는 계엄군에 희생된 시민을 ‘시위대의 칼빈 소총에 맞아 죽은’ 사람으로 가짜 선동질을 해온 인물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에서 위원으로 활동했으나 “고의로 조사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세월호 유족들은 그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까지 했었다. 이런 극우 인사들이 ‘5·18 진실’을 밝히는 대의에 충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 때처럼 사사건건 진행을 방해하고 정쟁으로 몰아갈 저의라면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규명을 필요로 하는 진상이 수두룩하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성고문 문제가 38년이 흘러서야 공론화된 것에서 보듯, 아직도 가려진 진실이 많다. 진상조사위의 규명 대상에는 1980년 5월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보안사의 5·18 왜곡·조작, 최초 발포 책임자, 헬기사격 명령자, 집단 학살·암매장 등이 올라 있다. 이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북한군 개입설’ 등 광주정신을 유린하는 터무니없는 선동과 궤변도 뿌리 뽑을 수 있다.

38년이 지나서야 진상조사위를 꾸렸다는 것 자체가 참담한 일이다. 미진한 수사권 등으로 한계가 없지 않지만 최대 3년의 시간이 주어진 만큼 이번에야말로 묻혀진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 ‘5월 광주’의 정의가 바로 서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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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재판에 나오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구인영장이 발부됐다. 광주지법은 지난 7일 열린 재판에 전씨가 건강 상태를 이유로 불출석하자 다음 공판기일을 3월11일로 지정하고 그날까지 유효한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다음 공판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강제로라도 법정에 세우겠다는 뜻이다. 전씨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재판을 회피해온 만큼 당연한 조치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한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지난해 5월 기소됐다. 이후 전씨 측은 재판 연기를 신청하고 관할 법원을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등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지난해 8월 첫 재판에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독감과 고열로 외출이 어렵다’며 나오지 않았다.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출석해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기소된 지 8개월이 넘도록 법정에 나오지 않는 전씨의 행태는 법치를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에 도전하는 오만한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7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2차 공판이 열리는 시간에 태극기 부대등 보수인사들이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부근 골목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전씨는 5·18 당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내란의 수괴다. 비록 사면되었다고는 하지만 대법원이 최종 확정한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광주의 영령 앞에 무릎 꿇어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회고록에서 스스로를 “광주사태의 제물”로 칭하며 5·18을 능멸했다. 본인의 망동으로도 부족했는지 부인 이순자씨까지 최근 “남편은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언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조 신부가 증언한 헬기 사격이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되는 등 속속 진실이 드러나는데도 역사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스스로 걸어나오든, 강제로 끌려나오든 전씨는 3월11일 광주지법 재판정에 설 수밖에 없게 됐다. 88세의 고령을 감안할 때 역사와 시민 앞에 속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본다.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속죄의 출발점이다. 법정에서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조 신부 유족과 광주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기 바란다. 만약 다음 재판에도 출석을 거부한다면 법원은 구인영장을 집행해 법의 엄중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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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이 5·18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조작·왜곡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 의혹 등을 조사 중인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85년 구성된 ‘80위원회’ 등을 통해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그 진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5·18 당시 출동한 군인이 1981년 작성한 ‘체험 수기’에는 “계엄군이 ‘무릎 쏴’ 자세로 집단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있지만, 19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 수기에는 이런 내용이 누락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특조위가 발굴한 1985년 6월5일 관계장관 대책회의 자료를 보면 당시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운영됐다.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위원장을 맡고 청와대와 내무부·법무부·국방부·문공부·치안본부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이 위원회는 산하에 ‘80위원회’를 두고 5·18 관련 백서 발간 업무를 진행했는데,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2국장이 이를 맡았다고 한다. 80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과 백서의 유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시 안기부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복인 장세동, 총리가 직전 안기부장이던 노신영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어떤 일을 꾸몄을지 짐작이 간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그간 “무장한 시민들이 먼저 총을 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거짓으로 드러났다.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한 바 있다. 집단발포 이전 5월21일 오전 8시쯤 전남 나주 반남지서에서 카빈총 3정과 실탄 270발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치안본부의 전남도경 감찰기록을 보면 발포 전에 무기를 빼앗긴 경찰관서는 없었다. 신군부가 오전 8시 총과 실탄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한 반남지서에서는 오후 5시40분 카빈총 35정을 빼앗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건 발생 37년이 지났다. 폭도로 불렸던 시민들은 누명을 벗었고, 그들이 묻힌 망월동 공동 묘지는 국립민주묘지가 됐다. 그러나 학살자들은 5·18을 여전히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헬기 사격, 전투기 대기, 집단 암매장 등의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5·18 진상규명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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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이재의, 전용호가 5·18광주민주화운동 상황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넘어넘어)를 읽다가 눈물을 쏟았다. <넘어넘어>는 1985년 출판되자마자 판매금지됐으나 당시 시민·학생들이 몰래 복사해서 돌려 읽던 ‘지하의 베스트셀러’였다. 얼마 전 개정판이 나온 것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 중학생과 고등학생들까지 계엄군에 희생당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그냥 철딱서니 없이 구경만 하는 학생이었다. 이후 역사의 공간에 있던 5·18이 다시 ‘현재’로 소환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죄책감이다.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쳐 오랫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이미지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수치심은 ‘능력 없음’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뭔가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절망하고 자책한다. 죄책감은 ‘용기 없음’에 대한 것이다.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 현장과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움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동료와 역사에 대한 빚진 마음이 남을 수 있다. 이건 부채감이 된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황석영도 5·18에 부채감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월 광주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의 민주화운동에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강력하게 진압했던 것은 공포심을 조장하여 시위를 포기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현장에서 가공할 폭력성을 목격한 시민들은 경악했다. 진압봉으로 머리를 후려갈기고 말리는 노인까지 구타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영문도 모른 채 공수부대에 폭행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다친 시민을 병원으로 싣고가는 택시운전사가 “사람이 죽어가는데 병원으로 먼저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차 유리를 깨고 개머리판과 진압봉으로 기사를 폭행했다.

‘30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알몸으로 붙잡혀 기합을 받고 있었다. (중략) 이들이 조금이라도 구령을 따라 하지 않거나 동작을 느리게 할 경우 몽둥이가 가차 없이 날아갔다. 특히 여성들의 곤욕스러움은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넘어넘어)

최정운 교수에 따르면 ‘광주는 폭력극장’이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당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오월의 사회과학)이었다.

광주시민들도 처음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공포심은 동료 시민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데 보고만 있었다는 수치심에 의해 약화됐고, 이 수치심은 인간으로서 참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분노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졌다. 학원의 셔터문을 내려 겨우 빠져나올 수 있게 해놓고 기어나오는 학원생들을 진압봉으로 내리치던 모습을 보던 YWCA 신협 직원 박용준은 그때부터 시위에 가담했다. 그는 5월27일 새벽 YWCA에서 진압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건설자재 사업을 하던 박남선(26)은 공수대원이 여고생의 가슴을 대검으로 희롱하는 것을 목격했다. 항의하는 할머니를 군홧발로 걷어차는 걸 보고 항쟁에 뛰어들었고, 나중에는 시민군 상황실장까지 맡았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이렇게 시민들의 항쟁으로 바뀌었다.

공포심과 수치심을 넘어서는 것은 생명과 맞바꿀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공포심을 딛고 일어서니 연대감이 작동했다. 주부들은 주먹밥을 해 시민군에게 나눠줬고, 헌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양말 수십 켤레를 가지고 와서 (사망한) 시민의 맨발에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신겨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녀는 입관할 때 물을 떠다가 직접 시신의 얼굴들을 정성스레 씻어주기도 했다.’(넘어넘어)

사람들은 역사의 길목, 아니 삶의 모퉁이에서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 부채감 사이를 맴돌면서 고민한다. 어떤 이는 부채감을 느끼고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어떤 이는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다가 화살을 상대방을 향해 돌리기도 한다. 최근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됐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5·18이 영화나 책으로 자꾸 소환되는 것은 “부끄럽지는 않은가?”라는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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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15개 교육청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동안 광주시교육청의 ‘5·18 교육’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인천과 경북을 제외한 15개 시·도 교육감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개최, 5·18 계기교육 지원, 5·18 체험학습, 광주 오월민주강사단 교육, 학생 희생자 추모사업 등을 펴기로 했다. 이들은 또 4·19혁명, 제주 4·3사건, 부마항쟁, 대구 2·28사건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대한 보조교재도 만들기로 했다. 초·중·고교생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각 지역 교육청이 시대정신을 받들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추모사를 하다 눈물을 흘린 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동안 5·18 교육은 일부 교육청이나 전교조 중심의 교사들이 계기교육 차원에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5·18 즈음만 되면 일선 교육 현장은 이를 둘러싼 갈등에 휘말려왔다. 무엇보다도 입맛에 따라 5·18을 폄훼·왜곡·축소해온 보수정권 탓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국정 역사교과서 밀어붙이기에 나서면서 국가 스스로가 갈등의 주체가 됐다. 지난 1월 공개된 중·고등 역사, 한국사 교과서는 검정교과서에 비해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기술하고 진상을 축소·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 이상 5·18 교육을 둘러싼 소모전은 사라져야 한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 시민들의 투쟁은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뿌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면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제2호 업무지시를 내려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들이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은 문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읽고 있기 때문이다.

5·18 교육은 민주시민 양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은 쓸모가 없다. 15개 시·도 교육청의 이번 조치는 향후 교육의 자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아울러 인천과 경북 교육청도 빠른 시일 안에 5·18 교육에 동참하길 바란다. 교육에 지역차별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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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5·18에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를 잃은 딸과 눈물의 포옹을 했다. 5·18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거명하며 “그들의 헌신을 기리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가슴속에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분노와 슬픔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맞는 심경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합창단이 부르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해마다 5·18 기념식은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진보·보수를 떠나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씨, 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투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시원(始原)이었다. 광주는 민주의 가치와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다. 문 대통령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5·18민주화운동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완전한 진상규명도 다짐했다. 5·18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것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일 뿐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데도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 국가기관의 조직적 왜곡과 날조 등으로 5·18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은폐돼 있다. 지금껏 발포 명령자가 누군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 찬가’라는 따위의 황당한 허위 주장이 난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마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의 제물”이라며 마음껏 5·18을 능멸했다. 늦었지만 국회와 정치권이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5·18이 박제된 과거가 아님을 웅변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37번째 맞은 행사지만 이날 기념식은 특별했다. 5·18정신을 온전히 승계한 민주정부만이 국민의 생명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민주정부였다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로 인해 국민도 잃고 권력도 잃었다. 국가가 존재 이유를 잊으면 비극이 발생한다. 5·18은 항상 그 교훈을 일깨운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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